가장 짧으면서도 가장 오래 기억된 링컨 연설
가장 짧으면서도 가장 오래 기억된 링컨 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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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8-10-15 09:48
  • 승인 2008.10.15 09:48
  • 호수 755
  • 15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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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11일 청와대에서 이명박 대통령 주재로 ‘그린에너지 산업 발전전략’ 보고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대기업 회장과 중소기업 대표들이 참가하였다. 각자의 발언 시간은 5분으로 제한되었다.

그런데 한 대기업의 A회장이 5분을 넘겨 몇10분이나 횡설수설하는 바람에 모두가 눈살을 찌푸렸다.

이 대통령은 A회장의 장광설에 크게 실망, 앞으로는 대기업 회장 대신 실무자가 참석토록 방침을 바꾸었다

얼마전에는 중국의 선양(瀋陽)시 당국이 회의때 관리들의 발언이 10분을 넘기면 회의진행에 지장을 초래한다는 뜻에서 발언자의 이름을 공개키로 했다. 요령부득이한 발언자에 대해선 창피를 주겠다는 으름장이다.

A회장의 지루한 발언을 접하면서 아브라함 링컨 미국 대통령의 1863년 11월19일 ‘게티스버그 연설’이 떠오른다. 그의 연설은 단 3분에 그쳤지만 135년이 지난 오늘에 이르기 까지 오랫동안 전 인류에 기억되고 있다.

링컨 대통령은 남북전쟁이 한창 치열하던 와중에서도 펜실바니아 주 게티스버그 까지 찾아가 연설하였다. 4개월전인 7월1-3일 사이 ‘게티스버그 전투’에서 전사한 군인들의 추모를 위해서였다.

나흘간에 걸친 ‘게티스버그 전투‘는 북부군 9만3000명과 남부군 7만명이 맞붙은 대 결전장이었다.

북부군 2만3003명과 남부군 2만451명의 희생자를 냈다. 링컨의 북부군은 여기서 승리함으로써 워싱턴으로 쳐들어오던 남부군을 막고 전쟁의 승기를 잡았다.

‘세머테리 힐’ 공동묘지 추모식장엔 1만5000여 관중이 모여들었다. 먼저 당대의 웅변가인 에드워드 에버레트가 추모사에 나섰다. 그는 마사추세츠 주 상원의원, 주지사, 하버드 대학 총장을 지냈다. 그의 연설은 무려 두 시간 계속되었다.

다음 링컨 차례였다. 그의 연설은 3분으로 그쳤다. 그는 연설 첫 머리에서 “우리 조상들은 이 대륙에 새로운 국가를 건설해 자유를 심었고,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대명제를 세웠다.”고 하였다.

그는 이어 남북전쟁은 자유와 평등을 지키기위한 것이라면서 다음과 같이 끝을 맺었다. “이 나라는 새로운 자유의 탄생을 보게 될 것이고 새 자유 정부는 국민의 정부, 국민에 의한 정부, 국민을 위한 정부이며 지구상으로부터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쌀쌀한 동북부의 늦 가을 날씨속에 연설을 마친 링컨은 군사보좌관인 워드 힐 래몬에게 말하였다. “이 연설은 윤기가 없는것 같네… 실패작이고 국민들이 좋아할 것 같지않아.”

며칠후 에버레트 전 주지사는 링컨에게 편지를 썼다.

그는 ‘대통령께서 2분에 걸쳐 하신 말씀의 중심 개념을 두 시간에 걸쳐 떠든 제 연설이 근처에라도 갔더라면 좋았을 것입니다.’라며 자신의 긴 연설을 후회했다.

그는 두 시간동안 연설하였지만, 누구도 그의 연설을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링컨의 3분 연설은 전 세계 인류가 오늘날에도 생생히 기억한다.

대개 연설은 길수록 내용이 부실하기 마련이다. 설교가 20분을 넘기면 죄인도 구원받기를 포기한다는 말도 있다. 연설이나 보고서는 짧아야 한다는 뜻이다.

대통령으로부터 결혼식 주례사에 이르기 까지 원하거나 원치않거나 일상적으로 많은 연설을 듣게된다. 길고 중언부언 반복되며 어려운 문투까지 끼여든 연설은 더욱 참기가 어렵다.

말은 간결해야 하고 알아듣기 쉬워야 하며 사상과 혼이 담겨야 한다. 2시간에 걸친 에버레트의 지루한 연설이나 대기업 A회장의 횡설수설을 상기하면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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