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부 쿠데타로 하루 아침에 실각, 다른 나라를 전전하고 있는 태국 탁신 친나왓(57) 총리가 정치권의 키워드로 부상중이다. 유기준 한나라당 대변인이 이를 빗대 “(노무현 대통령은) 태국의 쿠데타를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야 한다”고 논평한 게 발단이다.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은 즉각 “군사 독재정권에 뿌리를 두고 있는 한나라당이 쿠데타의 향수에 젖어 있다”고 반격에 나섰다. 사태 수습을 위해 한나라당 지도부는 유 대변인에 주의를 주고 유 대변인 스스로도 해명에 나섰지만, ‘타산지석’ 파문은 좀처럼 누그러질 기세가 아니다. ‘탁신 총리의 통치 스타일이 노 대통령을 연상시킨다’는 유 대변인 논평의 여운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까지 나서 “참여정부도 부패한 정권 아니냐”, “탁신 총리도 말을 많이 하는 모양”이라며 유 대변인 논평을 거들고 나선 것도 타산지석 파문을 부추기고 있는 형국이다.
이미지 선거 전략 성공
그렇다면 진짜 탁신 총리와 노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은 비슷할까.
일단 성장과정과 정치적 자산에선 공통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 탁신 총리는 자수성가한 억만장자 기업가 출신이다. 비단 매매상의 아들로 태어나 경찰관으로 공직에 몸담은 이후 1987년 ‘친 코퍼레이션’을 설립해 태국 최대 정보통신기업으로 키웠다.
2001년 태국 총선에서 타이락타이당(Thai Rak Thai;타이를 사랑하는 타이)의 승리로 탁신 총리가 집권하게 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당시 태국은 실업과 물가고, 생활수준의 하락 등 경제위기로 고통을 겪고 있었다. 탁신 총리의 갑부 이미지, 민족적 대중주의 호소는 강력한 카리스마, 새로운 리더십에 대한 흥분을 불러일으켰다. 탁신 총리는 의회 과반수 의석(하원의석 500석 중 248석)을 차지하면서 강력한 단독 집권 여당 체제를 구축하기에 이른다.
‘CEO형 정치 리더십’을 바탕으로 경제를 우선하는 ‘탁시노믹스’ 정책은 탁신 총리의 또 다른 이름이다. 의료비 감면과 부채 탕감 정책은 중산층과 서민의 지지로 이어졌으며, 재집권의 발판이 됐다.
여기까지 기업인과 정치인으로서 탁신 총리의 성장 과정과 개성은 노 대통령의 그것과 분명히 다르다. 정치적 성향이 아닌 인물 중심의 태국 정치도 두 사람의 통치 스타일 비교에 걸림돌이다. 국왕의 직접적인 통제 아래 태국의 정치·경제의 외연을 규정하고 있는 군부의 존재도 단순 비교의 장애요소다.
그럼에도 재집권에 성공한 2005년 탁신 총리의 ‘선거 전략’은 지켜볼 대목이다. 뛰어난 마케팅 전략과 막대한 돈줄이 핵심. 당시 탁신 총리는 타이락타이당에 가능한 많은 정파와 정당들을 끌어 들였고, 2001년 선거에 기여했던 공약에 계속 초점을 맞춰 홍보했다. 또 미디어를 통한 홍보와 지속적인 여론조사를 통해 민심 동향을 파악했다. 마지막 전략은 ‘탁신’이라는 개인 브랜드의 부각. 자신을 브랜드화해 선거를 ‘이미지 선거’로 끌고 가는 데 성공했다.
위기를 기회로 삼다
노 대통령과 탁신 총리는 집권 전략이 유사하다. 탁월한 정치 감각을 내세워 정치 게임을 즐기는 스타일이다. ‘이미지 정치’는 탁신 총리와 노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을 대표하는 말이기도 하다.
특히 비판적인 야당과 언론과의 대립도 노 대통령과 탁신 총리의 공통분모다. 야당은 탁신 총리의 통치 스타일을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는 ‘포퓰리즘’이라고 했다. 언론은 중앙집권 강화, 마약사범 처형, 남부 무슬림 지역 소요 강제 진압 등 탁신의 밀어붙이기식 정책이 소수의 권리를 제한하고 토론과 타협을 무시하고 있다고 비판해 왔다.
탁신 개인의 브랜드화가 성공한 이유도 짚어볼 대목이다. 위기를 기회를 보고, 리더십 능력으로 전환시키는 힘이다. 탁신 총리는 2004년 남부 무슬림 지역의 소요사태와 조류 독감의 확산, 지진해일 발생과 같은 위기상황을 기회로 삼아 자신을 역경을 헤쳐 나가는 ‘위기극복의 리더십’으로 가꾸었다. 이를 기반으로 2005년 총선에서 타이락타이당은 하원의석의 4분의3이 넘는 377석을 차지했다. 2001년 총선과 비교해도 129석이나 증가한 일방적 승리. 탁신 총리는 임기 4년을 무사히 마치고 재집권한 태국의 첫 총리다.
민주당 경선 이후부터 노무현 후보는 끊임없이 비토 세력에 시달려야 했다. 노 대통령이 내세운 전략은 ‘재신임’. 정몽준 후보와의 단일화 등의 과정을 거쳤음에도 대통령에 당선된 이유는 위기에 강한 면모를 보여줬기 때문이라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당선 이후에도 측근인사들의 ‘불법 대선자금 수수’, 야당 공조에 의한 ‘탄핵’ 사태도 노 대통령의 돌파력을 넘지 못했다. 노 대통령의 위기극복은 곧 2004년 총선에서 집권여당 과반수 의석 확보로 이어졌다.
이번 태국 무혈 쿠데타에서 직접적으로 그의 발목을 잡은 것은 탁신 총리의 회사다. 올 1월 탁신 일가가 친 코퍼레이션 주식을 싱가포르 투자회사에 19억달러(약 1조8,065억원)에 불법매매하고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은 것이 국민의 분노를 샀다. 탁신은 의회 해산과 4월2일 조기 총선으로 승부수를 띄웠지만 야당의 선거 불참과 국민들의 차가운 반응으로 결국 총리직을 사임하게 됐다. 4월 사임을 발표한 뒤 한 달여 만에 총리직에 복귀했으나, 군부 쿠데타로 다시 쫓겨나는 처지가 된 것이다. 독선과 오만에 대한 타산지석이다.
이금미 nicky@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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