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신만고 끝에 과거 급제해도 당파싸움에 끼어들어 줄 잘못서면 하루아침에 역적 누명쓰고 목이 달아났다. 애꿎은 자식 목숨에 사돈의 팔촌까지 해를 당할 수 있었다. 이렇게 밀려난 세력은 역전의 기회를 잡기위해 절치부심했다. 환국(換局)으로 불린 정권교체가 일어나면 보복의 피바람이 불 수 밖에 없었다. 이랬으니 조선 5백년 역사를 한(恨)의 역사라고 하는 것이다.
꿈에서라도 조선시대가 통합(統合)정치나 화합(和合)정치를 알았다면 우리는 보다 찬연한 역사를 장만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해방 후의 초대 이승만 정권이 친일 세력과 야합했다는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러나 일본이라면 이를 갈던 이승만 박사가 친일 지식인 그룹을 끌어들이기까지의 갈등이 이해 안 되는바 아니다. 친일 세력을 무조건 적으로 삼아서는 국가의 토대 마련이나 경영이 어렵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이를 기화로 친일파가 또 다시 득세해서 친일 행적을 공격하는 민족주의자들을 빨갱이로 모는 역사 굴절이 일어난 것이 사실이다. 입으로 ‘민주주의’ ‘반공’만 팔면 만사형통이었다. 혹 구체적 친일 행적이 드러나도 한통속들의 침묵 비호아래 묻혀 지내면 됐다. 한술 더 떠서 독립운동에 투신했던 가난한 가족들을 돕는 민족주의자로 위장변신까지 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민주공화국 한국인의 비애는 건국 60년이 지난 지금까지다. 이는 정치적 변혁기마다 개혁을 내세우는 세력이 입지 강화를 위해 내놓은 역사바로잡기의 근거가 됐다. 바로 이 전 정권에서 지배세력 교체론이 각광받고 과거사 파헤치기로 역사를 거꾸로 돌릴 수 있었던 맥락일 것이다. 그 할아버지가 동족을 팔았고 그 아버지가 민족을 속였으니 그 손자가 또 아들이 죄인이 되어 역사의 심판을 받아야하는 나라, 조상 잘못 둔 죄로 하늘보기가 떳떳치 못하여 평생 삿갓 쓰고 주유천하 했던 방랑시인 김삿갓(김병연)의 비애가 생각난다.
통합하고 화합하는 가치는 갈라지거나 분열 했을 때 겪게 될 손해와 갈등을 방지 한다는 점에 있다. 정말 강한 나라는 정치적 가치가 통합돼 국민 생각이 통합을 이룬 나라일 것이다. 또 생각이 같다는 것은 화합 한다는 의미가 된다. 때문에 우리가 살길은 먼저 국론을 통합하고 국민이 화합하는 일이다. 당장의 경제난을 해결키 위해 무리하게 서둘면 반드시 시행착오를 동반케 될 것이다.
때문에 지도자는 절대로 조급해서는 안 된다. 밀어 붙이는 ‘파워’를 발휘하기 전에 국민 개개인의 힘을 통합해서 화합할 수 있는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 과거 우리가 이룬 경제 도약 ‘한강의 기적’이 지도자의 뚝심과 강한 지도력의 산물로 설명되고 있다. 물론 그렇기는 했다. 그렇지만 그때 만약 국론이 지금같이 통합 되지를 못하고 국민이 서로 갈라져 있었다면 한국의 경제 부흥은 꿈속에서나 가능한 문제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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