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은 처칠에게서 무엇을 배우려 하는가
이명박은 처칠에게서 무엇을 배우려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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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8-08-26 15:20
  • 승인 2008.08.26 15:20
  • 호수 748
  • 15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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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은 ‘우리는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 돌파의 CEO 윈스턴 처칠’로 되어있다. 처칠의 외손녀 실리아 샌디스가 할아버지의 메모, 편지, 연설문, 일화, 등을 모아 정리한 내용이다.

이 대통령이 많은 서적들중에서 유독 ‘우리는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는 책을 선택한 이유는 쉽게 짐작된다. 처칠 처럼 ‘결코 실패’하지 않고 일어서겠다는 의지의 표출로 간주된다.

이 대통령이 기왕 처칠의 성공 리더쉽을 학습하려 한다면, 적어도 다음 두 가지만은 반드시 익혀야 한다. 어떠한 적대 세력의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맞서는 의지와 흔들리지 않는 반공(反共) 신념, 그것이다.

처칠은 아돌프 히틀러의 협박에 비위 맞춰주는 유화책을 단호히 거부하였다. 그리고 실력으로 맞섰다.

그의 결연한 유화책 거부는 ‘뮌헨 협약’ 비판을 통해 상징적으로 표출되었다.

1938년 10월 영국의 총리 네빌 챔벌린은 독일의 뮌헨에서 히틀러, 프랑스의 에두아 달라디에, 이탈리아의 베니토 무솔리니, 등과 만나 ‘뮨헨 협약’에 서명했다. 이 협약을 통해 챔벌린은 히틀러의 요구대로 체코의 수데텐을 독일에 넘겨줬다. 챔벌린이 히틀러의 전쟁 협박에 굴복하고 양보한 것이었다.

챔벌린은 런던으로 돌아와 엉뚱하게도 뮌헨 협약으로 평화를 보장받고 돌아왔다고 자랑했다.

그는 다우닝가 10번지의 총리 관저 2층 창문을 열어 젖혔다. 그리고는 열렬히 환영하는 군중에게 뮌헨 으로부터 ‘이 시대의 평화’를 안고 돌아왔다고 선언하였다.

그러나 처칠은 채벌린이 ‘이 시대의 평화’를 얻고 돌아온 것이 아니라 굴종과 전쟁의 위협만 안고 돌아왔다고 반박하였다. 그는 하원 연설을 통해 챔벌린의 수데텐 양보로 히틀러 독재자에게 “다뉴브와 발틱으로 이르는 침략의 길을 터 주었다”고 비난하였다. 이어 그는 독재자에게 양보한다는 것은 양보의 “끝이 아니라 시작일 뿐”이라고 경고하였다.

처칠의 지적대로 뮌헨 양보는 양보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음이 1년후 입증되었다. 히틀러는 다음 해 또 폴란드의 단치히를 요구하고 나섰다는데서 그렇다. 단치히 요구가 거부되자 히틀러는 거침없이 2차대전을 도발하였다.

처칠의 지적대로 히틀러는 “다뉴브와 발틱으로 이르는 침략의 길”을 확보하게 되자 자신만만하게 침략전쟁에 나선 것이다. 독재자에게 비위맞춰주고 양보한다는 것은 오직 굴종과 전쟁만 자초할 뿐임을 가르쳐 준 불행한 역사 기록이다

그밖에도 처칠은 최초로 공산주의 팽창의 위협을 경고한 서방 지도자 이기도 하다. 그는 1946년 3월5일 미국의 미주리 주 풀톤 시에서 붉은 제국의 “철의 장막이 발틱해의 수데텐에서 흑해의 트리스테에 이르기 까지 덥쳤다”고 경고하였다. 이어 그는 공산 독재국가는 “공산주의 이념과 권력을 무한대로 팽창코자 획책한다”며 그에 맞설것을 역설하였다.

이명박 대통령은 한반도에서 북한 공산주의의 이념과 권력의 팽창에 직면해 있다. 그는 대내적으로는 불법·폭력 시위에 시달리고 있다. 폭력 난동자나 공산독재자에게 양보한다는 것은 양보의 “끝이 아니라 시작일 뿐”이다.

이 대통령도 처칠 처럼 폭력세력의 협박에 굴복해서는 안되고 공산주의 침투에 틈을 주어서는 안된다. 이 대통령이 처칠에게서 배워야 할 교훈은 바로 폭력세력의 협박을 거부하는 강인한 리더쉽과 반공정신, 그 두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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