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 주도세력이 쇠고기 촛불시위를 일으킨 지가 이제 봄을 지나 여름 한 가운데의 석 달째 접어들었다. 듣기 좋은 꽃노래라고 해도 국민이 지칠 만하다. 반세기 가까웠던 권위주의 정권을 거치는 동안 그에 저항하는 시민운동이 영웅적 각광을 받았던 우리 역사가 고스란하다.
때문에 우리에겐 ‘시민’은 곧 저항의 주체로 인식돼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시민정신’은 국가와 대결하고 맞서는 사상으로 각인 되다시피 했다. 이런 틈새에서 시민의 이익을 지키고 대변 한다는 ‘시민단체’가 비온 뒤의 죽순처럼 가지를 뻗어 자라났다. 바야흐로 ‘시민’ 단어의 홍수시대를 연 것이다. ‘시민권력’이란 말이 생겨나서 정치권력이 영향력 있는 시민단체의 비위를 맞추며 야합하는 지경이다.
현 쇠고기 촛불사태에 대해 놀랍게도 ‘국가와 시민사회’의 대결이라는 인식이 작용한다. 도무지 누굴 위하고 뭣을 얻기 위한 ‘시민’ 이름인지 납득키 어렵다. 벌써 몇 달째 식당업을 비롯한 생계권을 침탈당하고 있는 광화문 일대 ‘시민권 사각지대’의 시민들이 제발 좀 도와 달라는 절규를 쏟아내고 있다.
여러 입만 합치면 일부시민권을 무시해서 피해를 줘도 되며 시민권의 사각지대를 만들어서 무방하다는 치외적 항목은 어디에도 없다. 또 스스로 뽑아놓은 대통령을 얼굴 화끈거리는 온갖 욕설로 모자라서 사진그림에 침을 뱉는 행위가 ‘시민’의 이름으로 허용될 근거가 어떤 시대에도 있지 않았다. 비록 절이 마음에 안 들어도 막상 절 안에 들면 스님 체면은 못 세워줘도 부처님 체면은 존중하는 법이다. 세계 속의 나라 체면이 지금 말 아니지 싶다.
오늘 같은 민주 과잉시대에 정작 화급한 일은 정권의 민주화가 아니라 시민사회의 민주화라는 생각이 간절하다. 불안과 불만에 차서 자기구제를 꿈꾸려는 세력이 광장에 뛰어들어 대의민주주의를 조롱하는 상황은 쇠고기 촛불이 꺼지고 나서도 정권의 성패뿐 아니라 나라의 성패를 우롱하려 들 것임에 틀림없다.
종교단체들도 ‘촛불’앞에서 갈라졌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에 이어 진보성향의 기독교와 불교 단체들도 잇달아 대규모 종교행사를 준비한다. 보수 성향의 성직자들이 이들을 비판하고 나서면서 종교계 내부의 보혁 갈등이 표면화 될 움직임이다. 정부는 열기가 식어가던 촛불집회가 다시 본격화 될까 봐 냉가슴이다.
종교행사 뒤 이어지는 도로점거 및 거리행진이 분명한 불법이지만 종교계 특수성 때문에 막고 나서지를 못하는 형편이다. 그나마 평화로운 진행을 고마워해야 할 판이다. 로마제국이 멸망한 원인이 여러 가지 있다. 그 가운데 ‘크리스트교’와 ‘카톨릭교’의 차이로 인해 동 서로 분열한 것이 가장 심각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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