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평화는 안 된다
침묵의 평화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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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8-07-01 09:49
  • 승인 2008.07.01 09:49
  • 호수 740
  • 9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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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정체성에 도전하는 불법시위에 엄격 대처하겠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목소리가 힘 있게 높아졌다. 대통령은 6.19 특별기자회견의 뼈저린 반성 이후 촛불현장이 급격히 축소되자 비로소 자신감을 회복한 모습이었다.

민생(民生) 촛불 열기로 국가 정체성을 불태우려는 세력이 있다는 것을 여태 모르고 있을 국민이 없다. 또 촛불로 인한 국론 분열이 얼마만큼 국력을 소진케 했는가를 깨닫지 못하는 국민도 없을 것 같다. 그러니만큼 불법에 대한 정부의 단호한 대처를 시비하는 세력이 더 이상 국민 지지를 얻을 수 없음이 명백해졌다.

더욱이 ‘정권퇴진’을 주장하는 대목에서는 오히려 역풍을 만들어 남은 촛불을 단숨에 꺼버릴 것 같은 조짐이었다. 이쯤이면 법치에 대한 정부 의지가 회복돼 강하게 탄력을 받도록 돼있다. 민주정치가 그런 것이다. 주권재민(主權在民)의 나라에서 국민이 뭉쳐서 하는 일에 요령부득인 채 법치만 내세우기가 곤란하다. 이판사판으로 국민과 한판 붙어볼 요량이 아니라면 물러서고 주춤거릴 수밖에 없는 도리다.

그래서 달포 넘도록 밤마다 광화문 일대가 무법천지가 되고 있음에도 이 땅 공권력이 발만 구를 지경이었다. 다른 것도 아닌 국민 먹을거리 문제를 국민과의 소통을 무시하고 마음대로 한 댓가를 정말 톡톡하게 치룬 셈이다. 이 대통령이 당선자시절 신년 메시지를 통해 “대한민국 선진화의 시작을 법과 질서를 지키는 것에서 시작하자, 편법과 불법은 더 이상 시도하지도 말고 용인하지도 말자”고 했던 다짐이 불과 몇 달 사이에 무색해지고 만 것이다.

이는 공권력이 스스로 존중 안하면 무시당할 수밖에 없는 사리가 분명해진 결과다. 지쳐서 쉬고 있는 경찰을 무턱대고 때려도 공권력이 맞은 경찰을 말려야 했던 실상을 부인 못한다. 또한 쇠고기 사태에 얹혀 제 밥그릇 챙기겠다고 도로를 점거해서 차를 막고, 전경버스를 흔들고, 시민에게 욕설을 해대는 상황을 통사정으로 넘겨야 했던 초라해 빠진 공권력 현실이었다.

미국과의 추가협상 타결 후 촛불열기가 수그러졌던 이유가 국민이 협상안을 수용해서가 아니라 이런 무법천지를 한탄한 것인지 모른다. 기업이 상품 선전을 목적으로 독자 많은 신문에 광고하는 행위까지 인민재판식 돌팔매를 맞는 시대가 됐다. 폭력의 발악이 일고 도저히 더 두고 볼 수 없는 이 같은 촛불 사태에 대해 대표적 진보학자들은 “6월 민주항쟁 이후 참여 민주주의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고 말한다.

물론 당초의 촛불행렬이 오염 없는 밥상문화를 위해 나선 순수한 시민들이 훨씬 다수였음을 알고 있다. 그걸 아는 까닭에 대통령이 진정을 다해 국민께 거듭 사과했다. 정부는 미국과의 추가협상에 총력을 다한 결과 소기의 목적을 달성 시켰다. 만족스럽지는 않아도 과반에 가까운 국민이 이를 수긍한 마당이다. 이만하면 장관 고시 문제로 더 국론을 헝클 일이 못된다. 특별하게 국기문란 행위가 용납 받을 명분은 이제 그 어디에도 없다.

그러나 공권력이 마치 때를 기다려 보복이라도 하듯 법망으로 덮치려들면 안 된다. 귀 아프게 울어대다가 도살 순간 돌처럼 굳어버리는 양들의 침묵을 평화로 오인 할 수 없는 일이다. 사태가 격양될수록 옥석이 구별돼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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