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보는 눈을 키우고 나름의 가치관을 형성하던 중고등학교 시절 나는 그를 잠시 가까이 볼 기회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의 저변 성격을 웬만큼은 아는 사람 중에 속한다. 깔끔하다 못해 때로 차갑게까지 느껴지는 그의 성격은 구질 한 것을 아주 싫어했다. 아무리 아쉽고 힘들어도 구차하지 않으려 애썼다. 그런 그의 성격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대로 나타났다.
진심으로 그는 학교로 돌아가기를 원한 것 같다. 일단 정치 현실에 들어서면 물을 떠날 때 절대로 물을 더럽히지 않는 물새의 떠난 자리처럼 뒤가 깨끗할 수 없다는 판단이 없지 않았을 것이다.
끝내 주군의 지엄한 뜻을 거역하지 못해 정권의 사실상 2인자 자리에 앉혀진 자신의 모습에 그 스스로 너무 놀랐을지 모른다. 더욱 세상 이목이 한꺼번에 자신에게 쏠리는 상황이 숨이 멎는 듯 할 때가 있었을 것이다.
나는 그가 꼭 대통령 곁에 있으려면 교육과학부 장관으로 입각해서 어려운 이 나라 교육 난제를 열과 성을 다 바쳐 해결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 적 있다. 막상 대통령 실장에 발탁되자 당혹한 그는 일체의 잡음을 막고 주위 측근들의 말썽을 차단키 위해 긴급한 제가(齊家)에 들어갔다. 맨 먼저 서울 사는 동생들의 외부 연락을 차단시키고 고향인 S시에도 서점 경영하던 여동생 내외를 은둔시켰다.
이렇게 그가 주변 가족들을 과거 생활권에서 멀어지게 한데는 자신을 아는 모든 사람들을 향한 강한 경고성 메세지가 들어있었다. 누구도 자신과의 인맥을 통해 뭔가 얻어 보겠다는 생각일랑 애초에 접어라는 선뜩한 암시로 보였다. 그리고 기왕 나선 김에 열심히 한번 나라위한 포부를 펼쳐 보겠다는 불같은 의지를 드러냈다.
그런 사람이 본인의 거듭했던 사의표명과 관계없이 미국 소고기 파동의 난국 책임을 묻는 사퇴를 압박 받았다. 그 참담한 심정이 오죽 하겠는가. 그를 아끼는 한 사람으로써 착잡하기 한량없다. 얼음 밑에 온기 느껴지는 물이 흐르듯이 잘 웃지 않는 그 군(君)의 따뜻한 내면(內面)을 알기에 내 안타까움이 더하다. 업혀 들어가서 난장 맞은 형국이 너무 안쓰럽다. 대통령의 속절없음이 한탄됐다.
그러나 솔직히 한 가지 기대하는 바는 있다. 지금 그 군 을 비롯한 정권 실세들의 책임 갖는 자세가 타오르는 촛불을 끌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얼마나 좋으랴 싶은 마음이다. 그렇게 해서 촛불이 사그러 들고 나라가 좀 조용해지면 그 또한 중한 보람일 테니 말이다.
내가 그 군을 위해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은 그가 가족들까지 은둔시키고 주변과의 단절을 꾀하면서까지 오직 맑은 치국(治國)의 길을 걷고자 했던 그 진정성마저 왜곡치 말라는 것이다.
명성왕후는 처음 외롭게 궐에 들어가 자신을 왕비로 만들어준 시아버지 대원군의 권력을 뺏기 위해 갖은 모사를 다 꾸민 사람이다. 베갯머리송사로 대
원군을 몰아내고는 온 친정떨거지들을 벼슬에 앉혀 민(閔)씨 세상을 만들었다. 어떻게 그 군과 견줄 노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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