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부터 말하자면 4.9총선 과정의 한나라당 고전은 이명박 대통령의 압도적이었던 작년 대선 승리가 보수층의 압승이었지 이명박 후보의 압승이 아니란 점을 한나라당이 간과한 탓이다.
특히 청와대와 이재오 의원, 이방호 총장이 주도한 하향식 공천은 한나라당을 사실상의 분당사태로 몰고 갔다. 친박 탈당파의 연대로 일어난 우파 3分현상은 심각한 보수 분열사태로까지 발전됐다.
경선 방식의 공천을 거부함으로써 유권자들의 뜻이 무시된 공천은 줄서기가 가장 큰 기준이 됐음을 만천하에 드러내고 말았다. 과거 정권 인사들을 대거 기용한 것이 지난해 12.19 선거의 역사성을 배신했다는 지적도 받았다.
12.19 선거에서 이명박, 이회창 후보에게 유권자들 64%가 표를 몰아준 것은 총선에서의 좌파 소멸을 원하는 민의가 분명한 것이었다. 그런 민의를 이명박 후보의 압승으로 본 한나라당의 오만이 보수 분열을 더 한층 부추긴 꼴이다. 지난 정권을 정리해야 할 시점에서 박근혜 세력을 정리하는데 온 힘을 기울인 댓가가 곧 학연해질 전망이다.
자칫 이번 총선이 ‘이념 없는 실용’의 실체를 심판할 공산마저 있다. ‘대운하’가 이명박 대통령의 대표적인 정치적 과제임은 이 땅 삼척동자들이 다 안다. 그것이 이대통령의 얼굴이 된 셈이다. 대한민국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기필코 경제를 살려야 하고 그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한반도를 쭉 가로지르는 대운하를 건설해야 한다고 믿는 것이 잘 알려진 대통령 생각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대운하에 집착하는 것은 자신이 건설현장을 누빈 경험 때문일 것이다. 경제를 살리려면 큰 것을 건설해야 한다는 경제관의 접근 방식 말이다. 또 내 재임기간 내에 반드시 대한민국을 살려야 된다는 강박성이 ‘나 있는 동안에 뭔가 큰일을 해야겠다’는 통치 욕망과 맞닿은 측면이 진하다.
그러나 국가사업이 단기적이고 표면적인 성과에 집착하면 가시적 효과는 곧 나타나겠지만 국가 백년대계에는 재앙일지 모른다. 표면적인 성과가 덜 하더라도 장기적이고 본질적으로 문제를 해결코자 하는 통치의 리더십이 훨씬 안정적임은 역사가 주는 교훈이다. 통치 권력이 마음을 먹으면 대단한 건설 사업을 한다든가 또는 밀실 외교 등으로 얼마든지 단기간 내에 역사에 남을 일을 할 수 있다.
때문에 국민은 언제나 정권의 눈치를 살피며 때로 불안함을 보이고 노골적인 저항도 하게 된다. 이번 총선에서 야권이 일제히 ‘대운하 반대’를 부르짖은 맥락이 이와 부합한다. 한나라당이 이번 총선과정에 가장 힘들었던 대목이 잘못된 공천 빼놓고는 ‘대운하’ 논쟁이었을 것이다. 개혁이 너무 원칙적이고 교과서적이면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할 때가 물론 있다. 시간만 오래 걸리고 많은 복병을 만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영리한 과외 선생처럼 복잡한 영어문법을 일일이 가르치기보다 중간고사에 나올만한 문제들만 짚어서 가르치는 방법을 써서는 큰일 날 일이다. 그렇게 해서 학부모의 칭찬을 받을 수는 있지만 학생은 빈 쭉정이가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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