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푹’ 죽어 버리는 전략
‘푹’ 죽어 버리는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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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8-03-19 11:34
  • 승인 2008.03.19 11:34
  • 호수 725
  • 9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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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 “이렇게도 지독한 경선은 처음 봤다”는 한나라당 중진의원의 지적처럼 경선과정에서의 한나라당 지역 조직은 옛 주먹세계 ‘나와바리’ 혈투를 방불케 했던 바다. 경선이 치열하면 그만큼 경선 후폭풍과 분열의 늪이 깊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전투복을 벗어던진 박 전 대표가 “경선패배를 깨끗이 인정하며 경선 과정에서 있었던 모든 일을 잊고, 백의종군으로 정권 교체를 이루겠다”고 말해 잔잔한 감동을 줬었다. 감동의 효과는 한나라당 내분 불씨를 일거에 잠복시키는 결과를 만들었다. 사실 경선과정이 극한으로 치달은 것은 대통령 선거보다도 2008년 총선에 쏠린 관심 때문이었다. 공천권을 따내기 위한 줄서기와 충성경쟁이 도를 넘으면서 일촉즉발의 분당 위기를 보인 적이 몇 번씩 있었다.

아무리 공천문화가 달라졌다고는 해도 경선에 승리한 대통령 후보가 누가 되느냐에 따라 공천 물갈이의 양태는 확연히 달라지게 돼있다. 당연히 칼자루 쥔 쪽의 배제 논리가 작용되는 것이다. 한나라당 공천결과에 친 박근혜 세력의 침몰이 현실로 드러났다. 이런 공천 ‘살생부 시나리오’는 2007년 경선 당시부터 나돌았다.

그런 가운데 박근혜는 한나라당 고수를 선택했었다. 특히 이명박 당시 당선인과의 지난 1월 회동이 있은 후 공천 문제에 거의 언급을 자제하는 분위기였다. 물론 많은 정치적 계산이 있었을 것이다. 2004년 탄핵위기와 지방선거 때의 면도날 테러 등을 겪으면서도 당 대표로서 자신이 지켜온 당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대단할 것이다. 또한 李, 朴간 약속에 대한 신뢰도 가졌을 것이다.

얼마 전 박 전 대표가 분노와 배신을 표하여 칩거에 들어간 동안 침묵을 지키는데 관하여 아주 고단수의 ‘푹 죽어버리는 승부수’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즉 경선 과정에서 몸과 마음을 바쳐 자신을 도왔던 측근들이 줄줄이 낙마하는 모습에서 승자와 패자의 빛과 어둠을 국민이 극명하게 느끼는 효과를 박 전 대표가 기대한 것 아니냐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핵심 측근들이 거의 무난한 공천을 받아 정치생명을 보장 받은 것과 대조되는 모습이 국민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박 전 대표가 예의주시할 것이란 점에서 말이다.

이런 터에 영남지역 50:50의 공천물갈이 합의설이 터져 나온 것이다. 박 전 대표가 공천에 대한 첫 공식 폭발을 자제할 수없는 상황을 맞은 것이다. 경선 때 박 전 대표의 대변인이자 수행단장을 맡았던 한선교 의원의 탈락 등 공천보복을 힘겹게 견뎠지만 공천합의니 뭐니 하는 술수 정치는 결코 응징하겠다는 최후통첩이 가해졌었다.

이를 공포탄정도로 여겨 상황이 끝내 악화될 경우 한나라당의 분당 가능성마저 배제할 수 없다. 설사 박근혜가 ‘푹 죽어버리는 전략’을 취해서 당내 첨예한 대립을 가라앉혀도 그 후유증은 총선현장에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공천에서 탈락한 의원들의 지역 세력이 갈등을 숨기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박근혜를 전폭적으로 지지했던 민심이 꿈틀거릴 것이다.

‘개혁공천’이 금배지 경쟁의 내홍 이미지로 부각될 경우는 민심 전반이 한나라당을 떠날 수 있다. 박 전 대표가 이를 두려워해서 다시 푹 죽어버릴 공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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