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문(大門) 잃은 나라
대문(大門) 잃은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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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8-02-20 10:32
  • 승인 2008.02.20 10:32
  • 호수 721
  • 9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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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자년 음력 초나흗날 밤에 우리는 6백여 년의 생명을 이어오며 나라 문화 유적의 상징적 가치를 뽐낸 ‘숭례문’을 불더미 속에 처참히 처넣고 말았다. 그 긴 세월을 온갖 외침과 포화 속에서도 살아남아 위용을 자랑해온 보람 한 점 없이 말이다.

이렇게 우리는 나라문화의 번성함과 화려함을 나타내준 ‘외양간 큰 소 한 마리’를 또 없애버리고 만 격이다. 대문(大門)은 밖으로 나가는 출구(出口)이자 안으로 들어오는 입구(入口)이다. 그러므로 동양문화에서의 대문은 안과 밖, 음과 양, 그리고 성(聖)과 속(俗)을 모두 포함 하면서 동시에 이 두 차원을 구분해 주는 장치이다.

특히 聖과 俗의 구분에서 대문의 역할이 두드러진다. 천장이 낮은 실내에 들어가면 답답하게 느껴지지만 천장이 높은 공간에 들어서면 왠지 성스러운 느낌이 든다. 서양에서는 이런 천장의 높이를 올림으로써 성스러움을 표현 하였다면, 동양은 그 높이 대신에 대문을 통해서 성스러움을 표현했다. 우리 불교 사찰에 보면 대문이 여러 개 있다.

대체로 일주문(一柱門)을 통과하고 나면 금강문(金剛門)이 있다. 그 다음에 또 하나 문이 나온다. 바로 천왕문(天王門)이다. 이런 여러 개의 문을 하나씩 통과 할 때마다 ‘속세의 때’를 벗는다는 의미가 들어있다. 말하자면 일종의 정화의식을 거치는 것으로 문을 통과할 때마다 점점 더 성스러운 공간으로 드는 의미가 숨어 있는 것이다.

유교에서는 어느 방위(方位)에다 대문을 내야 하는가를 중시했다. 이는 ‘주역’과 ‘음양오행’사상의 영향이었다. 불태워 버린 남대문을 위시해 동서남북에 있는 4개의 대문은 주역에서의 방위와 일치한다고 한다. 4대문 사이에 있었던 4개의 소문(小門)인 혜화문(惠化門), 소덕문(昭德門), 광희문(光熙門), 창의문(彰義門)은 주역의 간(艮), 곤(坤), 손(巽), 건(乾) 방(方)에 해당하며, 그 8개문의 중심지점에 토(土)의 신(信)을 상징하는 보신각(普信閣)이 자리 잡고 있는 게다.

따라서 서울은 주역 팔괘(八卦)의 중심에 있다는 의미다. 그러면 이번 남대문 소실(燒失)의 의미는 더욱 확연해진다. ‘대문(大門) 잃은 나라’, 민족 혼백의 타락인 것이다. 세종대왕은 이 민족의 구원한 미래를 위해 우리 민족의 독창적 문자인 훈민정음을 반포하고 2년 후에 남대문을 신축하여 오가는 백성들에게 위용과 믿음을 주었다. 그런데 지금 위정자들은 숭례문(남대문)을 술 마시고, 라면 끓여먹는 노숙자들의 ‘안방’으로 만들어 놓았다. ‘민족혼’의 타락이 이에 이르렀으면 이번 국치(國恥) 참사는 진작에 예비한 일이었다.

국회 문광위는 이 사건과 관련해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책임론을 제기했다. 통합민주신당측은 당선인이 서울시장 시절 ‘숭례문을 개방할 경우 낙서, 화재 등 심각한 위험을 초래할 것’이라는 지적을 무시하고 숭례문 개방을 밀어 붙이는 바람에 빚어진 참사라는 것이다. 반면 한나라당은 “이 정부가 봉화마을의 10분의 1만 문화재에 관심 뒀다면”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꼬집었다.

늘 소 잃고 난 뒤에 해온 짓이다. 외양간의 큰 소는 이미 달아나 버렸는데 외양간 빗장 거는 시비로 또 한판 팔뚝 걷어붙인 꼴이다. 톨스토이는 “가장 큰 행복은 한 해의 마지막에서 지나온 해의 처음 보다 훨씬 나아진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만큼 우리에겐 미래가 더 중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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