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대의명분 이라는 것
정치 대의명분 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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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8-01-30 15:10
  • 승인 2008.01.30 15:10
  • 호수 718
  • 9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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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의 공천 갈등은 증폭됐던 분당설을 확인 시키기에 이르렀었다. 박근혜 전 당대표의 최측근들 입을 통한 탈당 아닌 분당론이 열흘 전에 터졌다.

이런 상황을 강재섭 대표는 “그건 그분에 대한 상당한 모욕”이라고 표현했다. 강 대표는 “어지러운 대선 정국에서도 마디마디 훌륭한 행보를 보인 사람이 이 상황에 왜 탈당을 하느냐,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는 주장을 폈다. 결국 강재섭 대표의 말뜻은 원칙을 최고의 가치이자 덕목으로 꼽는 ‘박근혜 정치’가 절대로 정치적 대의명분에 어긋나는 짓은 하지 않을 것이란 얘기다.

소위 李, 朴 갈등이 심해져서 당이 위기를 맞을 때마다 한나라당 안팎에서는 이같은 박근혜 아킬레스건을 건드려서 곧잘 위기를 넘긴 추억이 많다. 많은 국민들 역시 박 전대표의 그 같은 점을 의식해서 한나라당의 붕괴 따위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란 예단을 쉽게 가졌었다. 위기감을 느낀 박근혜 사람들이 무슨 말을 떠들어도 박근혜는 한나라당과 이명박의 볼모 신세를 벗어날 수 없을 것이란 판단을 한 것이다.

그러나 정치행위에 있어서의 원칙, 즉 정치 대의명분이란 것도 권력 가진 쪽이 얼마든지 생산 할 수 있는 것이다. 가령 3선 이상 다선의원은 유권자들이 식상했고, 지난 선거에 낙선한 원외인사들에게는 이미 지역 유권자들의 심판이 내려진 셈이고, 하는 식의 공천개혁안을 마련해서 박근혜 사단의 목을 죈다면 어찌될까, 이를 대의 명분으로 밀어붙여 박 전 대표의 발을 묶을 수 있을 것인가.

모르긴 해도 이때 박근혜가 길길이 뛰면 원칙 없이 공천 지분을 요구하는 것으로 몰아붙일 수 있을 것이다. 신앙을 수호한다는 대의명분에 취한 기독교인들의 마녀 사냥이나 이교도 학살은 기독교 최대 덕목인 사랑을 잊은 행위였다. 그렇듯 공천개혁이란 대의명분으로 칼자루 쥔 쪽이 경선 때의 반대편에 섰던 사람들을 향해 공천 학살을 얼마든지 자행할 수 있을 것이다. 화해나 화합의 덕목을 잊은 채 말이다.

두 측근 간에 대립이 최고조인 상태에서 지난주 수요일에 李, 朴 회동이 이루어졌다. 다행히 공천에서 친이(親李), 친박(親朴)의 이롭고 해로울 것이 없다는 원칙론을 확인 했지만 대립의 불씨마저 사라지지는 않았다. 당 공천심사위 구성 등 당장의 현안이 어제까지 난항을 거듭했던 마당이다. 또 박 전대표의 밝아진 표정에 아랑곳없이 친(親) 박근혜 성향 의원들의 의구심이 여전한 터다.

‘믿음 없는 동반자’ 관계는 청산하는 편이 더 옳을 것이란 얘기까지 나온다. 박 전대표가 원칙을 생명처럼 강조하지만 그 원칙이란 것이 권력이 만든 대의명분에 함몰 될 수 있다는 논리다.

말대로 “10년 동안을 고생한 사람에게 어떻게”라고 보면 당연히 정치적 보상을 하는 것이 원칙일 것이다. 반면 ‘시대정신에 맞는 공천개혁’의 대의명분을 원칙 아니라고 할 재주 또한 없다. 이래저래 박근혜의 운신 폭이 협소한 실정이다. 운신 폭이 좁다는 것은 그만큼 선택의 여지를 침몰 당했다는 의미다.

오늘 대통령 이명박을 있게 한 국민의 선택은 결코 한나라당이 잘해서가 아니다. 노무현 정부의 실정에 따른 반사이익과 박근혜 전대표의 굽이마다 있었던 자기희생의 결단 속에 함께 이룩된 것임을 국민이 다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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