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입시안은 나쁜 뉴스!”
“서울대 입시안은 나쁜 뉴스!”
  • 이석 
  • 입력 2005-07-14 09:00
  • 승인 2005.07.14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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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노무현 대통령은 당정회의에서 이같이 말했다. 그 이후 잠잠하던 서울대 입시안이 또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서울대가 입시안을 지난달 말 발표한 후 별무반응이던 당정이 갑자기 목소리를 드높였다. 서울대 입시안에 대해 ‘수용태세’를 보이던 교육부도 입시 기본안 철회를 요구하는 경고성 메시지를 보내고 시정을 거부하면 행ㆍ재정 불이익을 주겠다는 방침을 정했다. 이에 서울대 정운찬 총장은 “시정할 의사가 없다”며 맞서고 있다. 서울대 교수협의회도 “학생선발권은 대학에 주어야 한다”며 정면 대응에 나섰다. 바야흐로 현정권과 서울대가 정면 충돌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당초 정권과 서울대의 충돌은 서울대가 2008학년도부터 시행할 입시안의 내용이 골자였다.

서울대는 2008학년도부터 ‘통합형 논술고사’를 시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대의 발표 이후 주요 사립대가 대부분 논술고사 비중을 확대하거나 새로 도입하겠다는 계획을 잇따라 내놨다. 이에 대해 학부모 단체에서는 ‘본고사 부활’이라는 지적을 하고 나섰다. 당정이 문제삼은 것은 서울대의 2008학년도 입시안이 당초 내신 위주 전형을 유도하려 했던 정부의 2008학년도 대입제도 개선안과 크게 동떨어진다는 것이다. 수능 성적을 등급화하고 내신성적 산정에 상대평가제를 도입해 ‘내신 부풀리기’를 막는 동시에 대학입시에 주요 전형 자료로 삼도록 함으로써 교육을 정상화하겠다는 참여정부 교육정책에 ‘국립대’인 서울대가 찬물을 끼얹었다는 판단이다. 대통령 자문기구인 교육혁신위원회도 최근 노무현 대통령에게 제출한 보고서에서 이를 집중적으로 지적했다. 교육혁신위는 서울대 전형 계획이 새 대입제도 취지와는 거리가 먼 게 아니냐고 우려하는 내용의 보고서를 청와대에 전달했다.

열린우리당 의원들도 당정협의에서 “국립대로서 특별 지위를 가진 서울대가 정부시책과 어긋나는 정책을 내놓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서울대의 시도를 초동 진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이번 사태가 단순히 서울대의 입시안에 대한 문제만이 원인이 아니라는 게 정치권과 교육계의 분석이다. 참여정부의 근저에 자리잡고 있는 보다 본질적인 문제, 즉 특권층 분쇄전략의 차원에서 서울대를 공격하고 있다는 시각이 그것이다. 부동산문제에서 ‘강남죽이기’에 나선 것처럼 교육계에서도 서울대를 죽여야 한다는 논리가 적용되고 있다는 얘기.이 문제의 촉발점에 대해 일각에서는 최근 서울대 학생들의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한 몫을 담당하지 않았는지 의심하고 있다. 최근 서울대 김광웅 교수가 자신의 ‘현대사회와 리더십’ 강의를 수강한 서울대 학부생을 대상으로 노 대통령 취임 첫 해부터 올해까지 3년간 지지율을 조사했다. 3년간 1,086명이 참여한 이 조사에서 서울대생들은 2003년 조사에서 2002년 대선 때 노무현 당시 후보에 대해 52.6%가 지지를 보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시대에 맞는 대통령인가’란 질문에도 41.4%가 동의했다. 그러나 같은 질문에 대해 서울대생들은 지난해 32.5%가 동의했고, 올해엔 19.5%만이 지지했다. 반면 ‘그렇지 (시대에 맞는 대통령이지) 않다’는 답변은 ‘17.9%→23.7%→34.9%’로 해마다 높아졌다. 서울대생은 ‘현 정부 개혁이 더 많은 지지를 받을 것이다’라는 항목에 대해 지난해 40%가 동의했지만, 올해엔 24.8%만 동의했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현재의 정부개혁 프로그램과 추진방식을 고치지 않으면 정부와 대통령에 대한 지지는 더욱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평가했다. 또 미래 대통령은 기존 권위를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는 의견(2004년 72.8%, 2005년 68.8%)이 압도적이었다. 여성이 차기 대통령에 당선돼도 좋으냐는 질문에 작년과 올해 각각 63.9%, 65%가 동의했다. 차기 대통령의 자질 부문에서는 국제적 감각(23%)을 가장 많이 꼽았고, 경제성장(15.8%), 빈부격차해소(11.5%), 교육문제해결(11.2%) 등의 순이었다.

이같은 설문조사 내용은 언론을 통해 보도되었고, 당시 청와대에서는 이같은 조사내용에 격분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최근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에 대한 여론지지율이 급격히 하락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같은 서울대생들의 설문조사 결과는 더욱 충격적이었다. 이후 서울대에 대한 강한 불만이 누적되고 있는 와중에 노 대통령의 입시안에 대한 불만이 쏟아져 나왔고, 이를 계기로 청와대와 정부 여당의 전면적인 ‘서울대 죽이기’가 시작됐다는 분석이다.특히 현재 진행중인 이 싸움은 기본적인 논란의 초점조차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채 양측이 감정적 충돌 양상을 보이고 있다. 여당과 서울대는 ‘통합교과형 논술고사’가 “본고사다” “아니다” 하며 다투고 있지만, 애당초 ‘통합교과형…’과 ‘본고사’는 동렬에 놓고 비교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니라는 게 교육계의 분석이다.

‘본고사’는 예비고사나 자격고사 등에 대비되는 절차적인 용어이고, ‘통합교과형…’이란 시험의 출제 유형 또는 내용을 의미하는 용어일 뿐이다. 여당은 서울대의 입시안에 대해 ‘본고사’라는 논리다. 이를 허용할 경우 사교육이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다. 이는 결국 사교육비 증대로 이어질 것이고 그 결과는 국민들의 부담을 가중시킬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같은 융단폭격에 대해 정운찬 서울대 총장은 2008 대학입시에 대한 “서울대의 기본 입장은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정 총장은 먼저 “수험생들과 학부모들에게 지침을 주려고 발표한 2008년 입시안이 국민을 혼란스럽게 만들어 매우 유감이지만 모든 게 서울대의 입시정책이 정확하게 알려지지 못해 사회 일각에서 오해가 생긴 탓”이라고 말했다. 정 총장은 “대학입시는 대학 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생각에 변함 없다”고 언급, 대입 문제에 정치권 등에서 개입하는 것에 대해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그는 전날 전북 부안에서 “대학의 일은 대학에 맡겨야 하며 밖에서 이러쿵저러쿵 하는 것은 대학이나 나라발전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고 말한 바 있다. 정 총장은 “서울대의 입시정책은 학생 구성원을 다양하게 선발하기 위해 나름대로 옳은 방법을 찾은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대는 교육부가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자율적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공정한 기준을 만들었다는 것이다.특히 정 총장은 여당과 노무현 대통령의 계속된 비판발언에 대해 “서울대 총장은 대통령이 임명하는 자리지만, (정 총장은) 자리에 연연하는 사람이 아니다”며 소신을 지킬 것임을 분명히 해 양측의 전쟁은 새로운 국면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석  suk@li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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