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들은 미국 사람들이 슬픔과 분노 속에서도 침착성과 너그러운 이해심을 보여준데 대해 감명받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5년 전 미군 장갑차 운전사고로 한국 여중생 둘이 사망했을 때, 수만명의 한국인들이 몰려다니며 “학살자 처단하라”면서 반미촛불 시위로 들끓었던 사실을 상기하면, 더욱 그렇다.
미국인들은 한결같이 “버지니아 텍 사건은 한 개인의 범죄 행위일뿐, 한국이나 한인사회의 책임이라고 보지 않는다”고 했다. “미국에서 자주 발생해 온 전형적인 캠퍼스 총격 사건”이라는 것이었다. 이 대학 학생회도 주미 한국대사관에 이메일을 보내 “한 사람의 행동이 우리 학생들과 한국민간의 장벽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한국이) 알아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사건 발표 수시간 전 조승희 부모에게 아들의 범행을 설명한 뒤 외부의 손길에 시달리지 않을 장소로 안내해 보호하고 나섰다. 어떤 미국인은 아들 때문에 조의 부모들이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느냐며 동정했다.
하지만 5년 전 주한미군 장갑차 운전사고에 대한 일부 한국인들의 반응은 험악하고 표독스러웠다. 두 여중생 사망은 “자주 볼 수 있는” 교통사고들중 하나였다. 그런데도 친북반미 세력과 그에 부화뇌동한 사람들은 그것을 고의적인 ‘학살’로 덧칠했고, ‘미군은 모두 살인마’라고 외쳐댔다. 그들은 교통사고를 반미선동과 주한미군 철수 요구로 왜곡해 갔다. 민주노총 등 일부 단체들은 “여중생 살인 미국 반대대회”를 열고 시가지 행진을 벌이기도 했다.
수만명이 반미촛불시위를 위해 몰려다녔고, 그들은 “미군은 즉각 철수하라” “미군을 한국 법정에서 사형시키자”등 섬뜩한 구호도 내뱉었다. 시위대는 성조기를 찢어 불태웠고, 찰스 캠벨 주한 미8군사령관은 그 모습을 TV로 지켜보며 눈물을 흘렸다. 일부는 방미 투쟁단을 조직해 미국 워싱턴의 백악관 앞에가서 소란을 피우기까지 했다.
또한 일부 시위자들은 초등학생이 혈서를 쓸만큼 반미 적개심을 충동질했다. 그런 선동속에 미군 장교 1명이 서울에서 한국 청년 3명에 의해 “이 땅에서 떠나라”는 욕설과 함께 폭행당하고 칼로 옆구리를 찔렸다.
두 여중생 사망은 불행한 일이었지만, 단순한 교통사고였다는 데서 법적으로 책임을 묻고 보상을 받으면 되었을 사건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미친북 세력과 일부 국민들은 단순 교통사고를 반미 촛불시위와 미군철수로 살벌하게 뒤틀어갔다.
그로부터 5년 후, 미국에서는 그 때와는 정반대의 참사가 벌어졌다. 한국인이 미국 땅에서 무려 32명이나 학살한 것이다. 미국인들이 “한국인 모두 떠나라”며 반한시위에 나서거나 한국인에게 칼부림을 할 차례가 아닌가 우려되었다. 그렇지만 미국인들은 조승희의 범죄는 “한 개인의 범죄일뿐, 한국에는 책임이 없다”며 도리어 한국인들에게 위로의 뜻도 보냈다.
미국인들의 침착한 반응을 지켜보면서 단순한 교통사고를 살기등등하게 반미 촛불시위로 악화시켜갔던 한국인들의 치졸한 작태에 수치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때 한국인들도 지금의 미국 사람들처럼 단순한 교통사고라며 반미 폭언 대신 성숙된 모습으로 임했으면 얼마나 의젓해 보
였을까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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