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87년 초. 거제도 대우중공업 현장 출장을 위해 김포공항으로 향하던 김우일 그룹구조조정본부장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김우중 회장이 강원도 문막에 위치한 이수세라믹 공장에서 긴급 임원회의를 소집했다는 것이다. 김 본부장은 이수세라믹과 관련된 모든 자료를 들고 급히 문막으로 향했다. “당시만 해도 이수세라믹은 그룹의 골칫거리였어요. 적자가 매년 30억원씩 나왔습니다. 때문에 회장님도 이수세라믹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었습니다.”임원회의를 소집한 시간은 오전 6시. 김 본부장이 이수세라믹에 도착하자 이미 20여명의 임원들이 도착해 있었다. 잠시 후 김 회장의 차가 정문으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그런데 김 회장이 평소 앉던 자리에는 처음보는 인물이 앉아 있었다. 김 본부장은 나중에서야 이 인물이 김용옥 교수(당시 고려대학교 교수)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김 교수는 일반인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유명 스님이 동행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김 교수는 머리를 삭발한 채 한복을 차려 입은 모습이었다) 나중에서야 김 회장과 동석한 인물이 도올 김용옥 교수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김용옥 교수에 대한 김 회장의 태도는 시종일관 깍듯했다. 그는 “그룹 총수가 상석을 양보하고 옆자리에 앉을 정도면 말 다한 것 아니겠냐”면서 “차에서 내릴 때도 김 전 회장은 ‘김 교수님 들어가시죠’라며 예의를 갖췄다”고 말했다.간단한 자료 보고를 받은 김 회장은 즉시 임원들을 회의실로 모이게 했다. 이 자리에도 김용옥 교수가 김 회장 옆자리에 배석했다. “당시 회의는 이수세라믹의 향후 거취를 논의하는 중요한 회의였어요. 그래서 김 교수에게 ‘잠시 나가달라’면서 (김 회장을) 쳐다봤습니다. 그러자 김우중 회장도 ‘잠시 나가서 기달려달라’고 하더군요. 그래도 김 교수는 ‘기업의 회의모습을 자신의 철학과 대비시켜 보겠다’며 버텼습니다. 나중에는 회장님도 그러라고 하더군요.” 이날 회의는 4시간 동안 계속됐다.
이 과정에서 이수세라믹의 유상증자나 차입금 납입, 시설 개보수 일정, 생산품질 향상 전략 등 기업 기밀에 대한 논의도 이어졌다. 심지어 120억원에 달하는 자본조달 방법까지도 김 교수 앞에서 논의됐다. 물론 김 교수는 일언반구도 없이 회의 과정을 지켜봤다. “회의가 끝나고 저녁 자리에서 회장님이 의견을 묻더군요. 김 교수는 많이 놀란 눈치였습니다. ‘대기업의 경영전략 회의에 참석하기는 처음’이라면서 ‘위계질서를 지키는 듯하면서 난상토론을 진행하는 모습을 보면서 상당한 감명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회장님이 지휘봉을 들고 의사결정을 할 때는 ‘이것이 바로 철학인 것 같다’고 했어요. 지금까지는 혼자서 연구하는 게 철학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는 겁니다.”이렇게 맺어진 두 사람의 인연은 이후에도 계속됐다. 김 교수는 틈나는 대로 김 회장의 집무실에 들러 얘기를 나눴습니다. “서로의 보완점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아요. 회장님은 평소 경영을 하면서도 철학적인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철학자인 김 교수의 조언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김 교수 역시 기업정신을 통한 철학의 묘를 이끌어내는 듯했습니다.” 김 교수가 지난 91년 펴낸 책 ‘대화:김우중·김용옥 나눔’(통나무출판사)도 김 전 회장과 나눈 대화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김 교수는 이 책에서 김 회장과 해외여행을 다니면서 나눴던 얘기를 대화 형식으로 풀어나갔다. “회장님이 해외 지사 방문을 위해 출국할 때도 여러차례 김 교수가 동행한 적이 있습니다. 김 교수는 이 때 회장님과 나눈 대화를 가지고 책을 엮었는데, 당시 모든 임원들이 돌려본 적이 있습니다.”김 본부장은 김 교수가 지난 2002년 문화일보 기자 시절 김 회장과 단독으로 인터뷰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이같은 인연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당연히 안만났겠죠. 김용옥 교수였기 때문에, 그만큼 평소에 많은 교분을 쌓았기 때문에 속 얘기를 털어놓을 수 있었던 것 아니겠습니까. 그만큼 회장님의 타고난 경영 수완 이면에는 인간적인 따뜻함이 깔려있습니다.” <계속>
# 김우중이 믿었던 사람들!
회사 골프 회원권까지 슬쩍했다
‘영원한 동지도, 영원한 적도 없다’김우중 전 회장은 대우그룹 회장으로 재직할 당시 1년에 절반 이상을 해외에서 보냈기 때문에 그의 인맥관계에 대해서는 그리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와 절친한 사이로 알려진 인사들도 말이 그렇지 실제로는 그리 두터운 사이가 아니었다는 게 김 전 회장의 측근들 표현이다. 서울역앞 대우빌딩 28층에 위치한 회장집무실에는 그가 국내에 체류할 때면 밀린 결재를 받기 위해 임원들이 하루종일 줄지어 기다리는 바람에 외부손님은 거의 만나기가 힘들었다. 김 전 회장은 일과가 끝난 뒤 저녁시간에 짬을 내 평소 만나고 싶은 외부인사를 만났다. 그들 중에는 정·관·재계 인사들이 많았다.
하지만 김 전 회장은 특별한 사안이 아니면 가급적 그들과의 만남은 피했다. 그러는 와중에서도 그의 사돈인 김준성 전 총리나 스승인 이용희 대우재단 이사장 등은 그가 가장 믿은 사람들이었다. 그룹내에선 김태구 전 대우자동차 회장이 가장 절친한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김 전 회장이 믿었던 사람들 중 ‘배신’을 한 경우도 없지 않다. 그가 1999년 해외로 출국한 뒤 일부 그룹내 임원들 중에는 자신의 명의로 되어 있는 회사재산인 골프장 회원권이나 부동산 등을 아예 가로채버린 경우도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김 전 회장이 귀국한다고 하자 이들중에는 가슴을 졸이는 사람도 있고, 대우계열사였다가 지금은 채권단의 손에 넘어간 A사 고위경영인 가운데는 노골적으로 김 전 회장의 귀국을 반대하는 로비를 편 사람도 있다는 소문도 있다.
# 김용옥과 김우중 만남의 또다른 얘기들
사돈 김준성 전총리가 김회장에게 도올 천거
김용옥 교수와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깊은 관계를 맺게 된 사연과 관련해 재계에는 또다른 얘기들이 있다. 김 교수를 김 전 회장에게 소개한 사람은 김 전 회장의 사돈인 김준성 전 총리라는 말도 있다. 소설까지 낼 정도로 문학에 깊은 조예를 가졌던 김 전 총리는 김우중 전 회장이 평소에도 여러 가지 자문을 받을 정도로 믿고 의지하는 사이였다. 김 전 회장의 자전적 수필집이랄 수 있는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를 펴낼 때도 김 전 총리가 발간 전에 감수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김 전 총리가 김 전 회장에게 김 교수를 추천했고, 그 후 김 전 회장과 김 교수는 절친한 사이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김 전 총리가 김용옥 교수를 알게 된 것은 김 교수의 친누나인 김옥길 전 교육부장관과의 인연 때문이라는 얘기도 있다.
김 전 총리가 관료로 재직할 당시에도 김옥길 전 장관을 영입하기 위해 몇차례 제의를 했을 만큼 친분이 두터웠다는 것이다. 항간에는 김 전 회장은 첫째 딸의 결혼식 때 김 교수를 주례로 모실 생각까지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첫 딸의 주례는 다른 사람이 맡았다. 김 교수의 나이가 젊었기 때문이라는 전언이다. 항간에는 김 전 회장의 이번 귀국에 김 교수가 큰 역할을 했다는 관측도 있다. 김 전 회장의 귀국을 위해 여론조성에도 앞장섰던 김 교수의 행보로 미뤄 그같은 추측은 낭설만은 아닌 듯싶다. 실제로 김 교수는 문화일보에서 대기자로 있을 때 베트남을 찾아가 김 전 회장과 인터뷰를 했고, 이 기사는 김 전 회장의 귀국 분위기를 조금씩 고조시키는 기폭제가 되기도 했다. 물론 김 교수가 작성한 기사 내용도 김 전 회장에 대해 우호적인 부분이 많았다.
이석 suk@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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