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남한을 속이기 위한 술책으로 ‘협상’이란 제의를 많이 해 왔다. 그들 중 하나가 남북 ‘정치협상회의’이다. 북한은 1977년 평화통일 협의를 위해 “북의 사회주의 역량과 남의 민주주의 역량이 대연합해 남북의 제정당·사회단체 인사들로 구성된 남북 ‘정치협상회의’를 소집하자”고 요구했다. 이 ‘정치협상회의’ 제의에는 주한미군철수가 들어 있었다.
노 대통령의 ‘정치협상회의’는 북한의 기만적인 용어를 떠올리게 했다. 노 대통령은 ‘여야 영수회담’을 비롯해 적절한 말들이 많은데도 굳이 북한의 ‘정치협상회의’를 골라 씀으로써 그가 북한 정치 용어에 매료되어 있는 게 아닌가 의심케 했다.
노 대통령은 또 북한이 8·15 해방정국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내걸고 있는 ‘연석회의’라는 말도 받아썼다. 그는 작년 10월 “사회적 협의의 틀로서 경제계, 노동계, 시민단체, 종교계, 농민, 전문가와 정당 등이 참여하는 ‘국민대통합 연석회의’를 발족시키자”고 했다. 북한의 고유 전유물로 굳어진 ‘연석회의’단어를 상기시킨 것이다.
돌이켜 보건대 북한은 1948년 남북 통일정부 수립을 위한 ‘남북한 제정당·사회단체 연석회의’를 평양에서 개최하자고 제의했다. 여기에 김구, 김규식씨 등이 북의 속임수에 넘어가 그해 4월 ‘연석회의’에 참석했다. 그러나 북한 김일성은 통일정부 수립에 관해선 한차례 토의도 없이 오직 주한미군 철수와 이승만 박사 등에 대한 성토만 강행했을 뿐이었다.
그 후 북한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남북한 제정당·사회단체 연석회의’를 거듭 제안하곤 했다. 그런 맥락에서 ‘연석회의’는 북한이 남한 적화를 위한 통일전선전술 책동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 대통령은 그런 불온한 ‘연석회의’ 이름을 국내에 차입했다. 그가 북한의 정치용어에 매력을 느끼고 있음을 반영한 또 다른 사례가 아닌가 싶다.
노 대통령은 그밖에도 좌파적 색깔의 단어들을 자주 쓴다. 그는 서울 행정수도의 지방 이전과 관련해서도 “지배권력의 변화를 의미한다”고 밝힘으로써 지배와 피지배의 이분법적 대결 구도로 인식했다.
그는 급진주의자들이 자유민주 체제 전복 수단으로 동원하는 ‘혁명’이란 단어도 좋아한다. 그는 “혁명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고 선언함으로써 섬뜩한 느낌을 금할 수 없게 했다. 그런가하면 그는 “우리 목표는 대중민주주의”라고 주장함으로써 자유민주주의를 거부하는 게 아닌가 의심케도 하였다.
그는 북한이 내세우는 ‘자주’란 말도 잘 쓴다. ‘자주 국방’, ‘자주 외교’등이 그것들이다. ‘반미 자주’를 외쳐대는 북한의 구호를 연상케 하기에 족하다.
‘정치협상회의’, ‘연석회의’, ‘자주’, ‘대중민주주의’, ‘지배권력의 변화’, ‘혁명’ 등의 단어를 접할 때마다 노 대통령이 정치용어 선택에서 조차 북으로 기울어져 있는 게 아닌가 우려케 한다. 물론 북한과 연관된 용어 선택은 우연일 수도 있다. 하지만 노무현씨는 북한의 공산화 책동을 분쇄해야 할 대한민국 대통령이라는 데서 단어 선택에 신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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