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한나라당은 즉각 ‘대통령이 잘못된 해석으로 국민들을 혼란케 한다’고 비판했다. ‘현재의 작통권 운영은 대통령의 군 통수권을 전혀 손상치 않으면서 우리 능력만으로는 부족한 국가 안보를 위해 혈맹인 미국과 연합방위체제를 이룬 것’이라며 ‘작통권 행사에 있어서도 한미 양측이 철저히 50:50의 동등한 역할을 맡고 있다’는 것이다. 사정이 그러함에도 노 대통령이 ‘작통권 문제가 주권과 자존심에 관계된 것’이란 이상한 비유와 해석으로 장병들과 국민을 혼란시킨다는 주장이다. 혼란이 일어나는 것은 틀림없다. 작통권 환수가 정말 주권 바로세우기의 일환인지, 중대한 국가안보의 위험인지, 이 말 들으면 이 말이 옳은 것 같고 저 말 들으면 저 말이 옳을 듯도 한 것이다. 특히 전시작통권 논란이 ‘자주파’와 ‘사대주의파’로 이분화되는 이상한 지경에까지 발전된 상황이다. 혹 전광석화 같은 이분화전술로 이반된 개혁세력을 결집시키겠다는 의도가 있었던 것이면 크게 성공작인 것 같다. 미리 계산하고 기획된 것이 아니라고 해도 보수와 개혁세력 간 새로운 대립 모티브가 형성된 것이 사실이다. 일본 ‘고이즈미’의 8·15 야스쿠니신사 참배 강행도 톡톡히 한몫을 한 셈이다. 이런 정국상황은 노 대통령의 국면주도권 확보 및 지지기반 확대의 마지막 호기일지 모른다.
그러나 정치적 전술 전략에 의해 국론이 분열되고 국민을 갈라지게 하면 뭉친 힘을 잃어버린 우리는 더욱 외세가 얕봐서 넘볼 수 있는 나라로 급전직하 될 수밖에 없다. 일본의 고이즈미가 하필이면 8·15날 다 지켜보란 듯 당당한 모습으로 1급 전범들 위패 앞에 분향 참배할 수 있었던 데는 우리 책임이 아주 없지 않다. 고이즈미는 분명 이 땅 대한민국의 심한 절름발이 자화상을 훔쳐본 것이다. 아주 만족스러운 눈으로 말이다. 만약 우리가 溫故知新의 정신으로 뭉쳐있는 현실이었다면 고이즈미가 그처럼 방자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한쪽은 보수꼴통들이 나라를 망친다고 말하고 다른 한쪽은 막가파개혁세력이 나라를 거덜낸다고 한다. 정녕 우리는 이렇게 국력을 소진시키고 말 터인가? 절름발이 자화상을 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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