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10년’과 ‘권력잃은 10년’
‘잃어버린 10년’과 ‘권력잃은 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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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7-06-20 11:51
  • 승인 2007.06.20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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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오 한나라당 원내 대표는 6월5일 국회 본회의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의미 있는 발언을 했다. 그는 김대중과 노무현 정권 10년을 “잃어버린 10년”이라고 규정했다.

그러자 이병완 노무현 대통령 전비서실장은 당일 반박하고 나섰다. 그는 지난 10년간 잃버린 것은 “한나라당의 권력 하나 밖에 없다”며 “민주주의와 남북평화, 언론자유, 경제중 무엇을 잃었느냐”고 반박했다.

김대중 전대통령도 한 마디 했다. 그는 9일 “잃어버린 10년이 아니라 50년동안 잃어버렸던 우리의 민주주의를 되찾은 10년”이라고 주장했다.

일본에도 “잃어버린 10년”이란 말이 있다. 1990년대 치솟던 부동산 거품가격이 폭락하면서 내수경기 침체로 빚어진 경기불황 10년을 말한다.

일찍이 미국 현대사에는 “잃어버린 세대(Lost Generation)”라는 말이 등장한다. “잃어버린 세대”는 세계1차대전후 생산성 극대화, 물질만능주의, 쾌락소비문화 속에 미국의 전통가치관을 잃은채 방황하며 저항하던 젊은 문화·지식인 세대를 말한다.

1920년대 “잃어버린 세대”의 공허한 마음을 채워줄 수 있었던 것은 재즈 음악이었다. 때마침 소개되기 시작한 재즈는 관능적 음율, 자발성, 부드럽게 너울치는 댄스 리듬으로 답답하고 메마르던 속을 촉촉히 적셔줄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논쟁의 대상으로 떠오른 “잃어버린 10년”은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이나 미국의 “잃어버린 세대”와는 역사적 맥락에서 전혀 다르다. 한나라당에 지난 10년은 이씨의 주장대로 권력을 잃어버린 10년임에 틀림없다. 그렇지만 전체 한국사의 맥락에서 보면, “잃어버린 10년”은 친북좌파에 의해 빼앗긴 암울했던 10년을 뜻한다.

친북좌파측은 지난 10년 동안 “남북평화”를 얻었다고 했지만, 실컷 퍼주고 고작 4900만 한국인 절멸의 “핵전쟁”위기를 몰고왔다. 좌파측이 얻었다는 “언론자유”라는 것도 친북좌파 어용 신문과 인터넷 매체들을 키워주는데 그쳤고, 비판 신문사들에는 독기서린 비방과 세무조사로 옥죄었으며, 정부 부처의 기자실들을 폐쇄하는 등 언론통제로 후퇴했다.

친북좌파는 “경제”를 얻었다고 주장하지만, 단지 지난 몇 년간 주식 시세만 세계적 주가상승에 따라 올랐을 따름이다. 경제의 성장동력을 꺼트렸고 잠재성장률을 지속적으로 둔화시켰으며 경기위축을 장기화시켰다. 치솟는 집값을 잡는다며 서민만 잡았고, 전국 가구의 가장 7명중 1명이 백수 상태이다.

김대중씨는 “50년 동안 잃어버렸던 민주주의를 되찾은 10년”이라고 주장했으나, 이 또한 억지다. 김씨의 주장은 마치 그가 50년간 잃었던 민주주의를 갑자기 되찾은 것 같이 착각케 했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47년 전 4·19 혁명부터 시작하여 우리 국민들이 여러 고비들을 넘겨가며 독재권력에 저항하면서 다듬어 온 기나긴 반세기의 작품이다. 도리어 김씨는 재임중 “제왕적 대통령”이라고 비판될 정도로 반민주적 단면을 드러냈다. 친북좌파가 되찾았다는 민주주의는 전투적 노조와 어용 단체들의 극성 시
위를 키웠고, 겉과 속 다른 반자유민주적 행태를 드러냈다.

그런데도 좌파측이 “무엇을 잃었느냐”고 반박했다니, 뻔뻔스럽기 그지 없다. “잃어버린 10년”은 국민들을 답답한 마음과 좌절로 가득차게 했고, 재즈 음악으로도 달랠 수 없는 신고(辛苦)의 10년이었다. 그런 10년은 다시 반복되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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