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1995년 4월 한국 ‘정치는 4류’ 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의 경제는 2류, 행정은 3류, 정치는 4류다”라고 단언했다. 그로부터 9년 후인 2004년 1월 박용성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한국 정치를 3류라고 했다. 그는 한국 정치는 “떼법이 일반화된 3류 정치”라는 것이었다. 적어도 대기업 기업주들의 정치분야 평가에 따르면, 9년만에 한국 정치 수준은 1단계 올라간 셈이다.그렇지만 요즘 돌아가는 정치의 모습은 도리어 4류에서 5류로 뒷걸음질친 느낌을 금할 수 없게 한다. ‘좌파 코드’에 ‘반미친북’이 설치는 바람에 국가의 존망까지 걱정하게 되는 급한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는데서 그렇다. 거기에 더해 이 나라 대통령은 법을 어기고 막말하며 막가다가 사상 유례없이 국회에 의해 탄핵소추 당하는 등 5류를 연출했다. 총리라는 사람도 막가다가 참다못한 국민들의 분노속에 쫓겨나 5류로 낙인 찍혔다. 대한민국 정치가 4류에서 5류로 추락했음을 드러낸 추한 모습들이었다.더욱 불미스러운 사실은 정치를 3∼4류라고 질책한 대기업 경영주들이 자신들도 3∼4류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이다. 물론 경제력 수준이 그 동안 2류에서 1류로 도약한 것은 분명하다. 반도체·조선·철강·자동차 등에서는 세계 선두를 달리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 디스플레이, 디지털 가전제품 등의 분야에선 세계 ‘초1류 기업’으로 성장했다. 삼성 그룹의 2004년 총 매출액은 필리핀의 국내총생산(GDP) 보다 많았다.그러나 대기업 경영주들의 기업윤리 의식은 경제발전 만큼 선진화되지 못하고 아직도 3∼4류로 뒤처져 있다. 그들이 기업주로서 법을 어기고 기업윤리를 유린하고 있어 후진적 행태를 드러내고 있기 까닭이다.우선 정치를 4류라고 꾸짖었던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부터가 기업인으로서 깨끗하지 못하고 구린 구석을 드러냈다. 그는 아들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편법을 동원했다는 논란속에 국민들의 호된 지탄을 받아야 했다. 어느 야당 의원은 당시 미국에 체류중이었던 이회장을 체포 키 위해 “체포조를 미국에 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이회장은 사법당국의 조여드는 조사와 국민들의 질책속에 사죄하는 뜻으로 8,000억원을 사회에 환원하기로 했다. 벌금을 문 셈이었다. 삼성측 경영진은 “지난 날의 잘못된 관행에 대해 반성”한다고 머리 숙여 빌었다. 박용성 두산그룹 전회장의 경우도 그렇다. 박회장은 한국의 정치는 3류라고 나무랐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형이 폭로한 분식회계와 비자금 조성 혐의로 사법 당국의 벌을 받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작년 11월 대한상공회의소 회장과 두산그룹 회장직 등을 모두 내놓고 법의 심판을 기다려야 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자기 자신부터가 3류에 불과하다는 것을 나타낸 어두운 몰골이었다.얼마 전에는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이 구속되었다. 그도 아들 경영권 승계를 위한 편법 동원과 비자금 조성 등의 혐의를 받고 있다. 더욱 문제는 편법에 의한 경영권 승계와 비자금 조성에 관한한 큰 기업치고 안하는데가 있겠느냐는 세론이다. 삼성도 혼난 적이 있다.지금 대한민국은 4류 정치와 4류 기업주 윤리의식으로 흔들리고 있다. 아직 이 땅에 태극기는 휘날리고 있으며 수출도 잘 되고는 있지만, 왠지 나라 전체가 불안하다. 4류를 벗어나 1류가 되려면 더 얼마를 기다려야 할는지, 그저 답답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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