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러나는 양면성(兩面性)
물러나는 양면성(兩面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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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6-01-17 09:00
  • 승인 2006.01.1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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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지 권력을 향한 정치인의 탐욕스러움이 나라를 망치고 국민을 불행하게 만들었다는 지적에는 정치인들 스스로가 익히 공감하는 터다.그러면서도 탐욕의 덫을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이 마약에 취한 자가 스스로 약물에 중독되는 자신을 모르는 이치와 다르지 않을 게다. 더 심하게 말해 정신이상자가 조금이라도 제정신을 의심할 능력이 있으면 하등 미친 사람 취급을 당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마침 올해는 몇 달 안 있어 있을 지방선거가 현실정치 상황으로 봐서 어느 때보다 피 흘리는 접전을 예고하고 있다. 하필 이럴 때 숱한 정치 지망생들을 싸잡아 정치병 환자들로 모는 것 같아 유감천만이지만, 이 기회에 한번쯤 자신을 생각해보는 것도 일신을 위해서나 또 가족과 크게는 나라를 위해서 좋을 듯싶다.지난주에는 이원종 충북지사가 욕심 이겨낸 ‘아름다운 퇴장’을 실천해서 우리 정치권에 매우 보기 힘든 신선한 충격파를 일으켰다. 그는 ‘지사에 취임한 이후 꿈꾸고 계획했던 일들을 거의 다 이뤘고 충북지역의 현안들도 모두 해결됐다’면서 ‘적절한 시기에 명예로운 퇴장’은 또 하나의 소망이었다고 말했다.우리는 공인의 주요 덕목으로 ‘진퇴’의 때를 아는 슬기를 빼놓지 않는다. 이는 정치인의 나서고 물러날 때를 판단 못하는 독선적 리더십 폐해가 이 땅 실물정치에 미친 영향을 똑똑히 알기 때문이다. 반드시 나서야 할 때는 권력이 두려워 꼬리를 내리고 있다가 그 권력이 무너지고 나서야 자신만이 나라를 위할 수 있다는 ‘몰염치한 억지’, 또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철면피한 억지’, 대한민국의 정치현실을 오늘같이 만든 원흉적 가치임에 틀림없다.그러나 바로 이 대목에서 5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간과할 수 없는 혼돈이 있는 듯하다. 다름 아닌 정당의 공천권 행사에 따른 불안함이 큰데다 유언비어성 공격에 지쳐서 겨우 초선의 단체장들이 무책임한 퇴진을 검토하고 있는 측면정황이 감지된다. 개인적으로는 그동안 비교적 성공한 인생을 살아왔고 나중에는 향토주민들의 신임을 얻어 고을 살림살이를 통째 위임받는 영광까지 안았으니 여한이 없다는 생각을 충분히 가질만하다. 이참저참 이원종 충북지사의 아름다운 퇴진을 흉내내서 갈채를 유도해보고 싶은 충동도 생길 것이다. 그런 마음자체가 매도당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향토 사랑의 진정성 문제를 제기치 않을 수 없다. 공인의 자치단체장은 어떤 경우에도 고향을 지킬 의무가 있는 것이다. 아무래도 초선의 지난 4년은 힘들게 자치단체의 발전목표를 세우고, 방향을 잡고, 시작해 놓은 것에 불과하지 않을까 여긴다.그런데 명분의 아름다움에 취하고 일신의 편안함을 좇아 물러남을 결단하는 행위는 자칫 무책임함을 넘어 비겁한 후퇴일 수가 있다는 판단을 해야 한다. 제도가 연임을 허용하는 것은 자치행정의 지속성과를 위해서이다. 새로 뽑힌 지도자는 누구나 전임자와의 차별화를 시도할 것이 자명하다. 어쩌면 전임자의 업적을 깡그리 짓밟아 왜곡시킬지도 모른다. 최소한 사업방향이 훼손되고 목표가 수정되는 답보현상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그럼 지역발전은 늘 구호로 맴돌 공산이 크다.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전임자의 무능을 드러내서 자신이 도약하는 전기가 마련되는 전화위복은 모두가 소망하는 바다. 그러기에 선거 공인들은 더욱 제 몸이라도 함부로 제 마음대로 할 수 없는 팔자소관인 것이다.그런 그들 팔자를 재단할 수 있는 잣대는 다만 지역 유권자들이 움켜쥐고 있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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