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은 도박’…후계자 선택에 ‘올인’
‘권력은 도박’…후계자 선택에 ‘올인’
  • 유제성 언론인 
  • 입력 2005-06-14 09:00
  • 승인 2005.06.1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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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노무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열린우리당내 호남세력의 맏형격인 염동연 의원이 상임중앙위원직을 전격 사퇴했다. 표면적인 사퇴의 변은 “안팎의 시련에 직면한 대통령과 당의 어려움을 덜고자 하는 순수한 충정에서”였다. 그러나 정치권에선 염 의원의 당직 사퇴를 결코 ‘순수하게’ 파악하지 않는다. ‘차기’를 겨냥한 세력들 간 권력투쟁의 부산물로 보는 시각이 많은 것이다. 심지어 염 의원이 모종의 비리에 연루돼 있고, 이를 빌미로 여권 일각에서 2선퇴진을 압박했다는 얘기까지 권력 주변에서 나돈다.이처럼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가 반환점을 돌기도 전에 ‘후계구도’를 둘러싼 권력다툼이 본격화되는 징후가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특히 참여정부의 권력을 형성하는 세 축인 열린우리당-행정부-청와대가 요즘들어 부쩍 난타전을 벌이고 있다. 고영구 국정원장 후임 인선을 둘러싼 당·정·청의 힘 겨루기, 이해찬 국무총리의 ‘대통령 측근 주의보’와 이에 맞선 염동연 의원의 “경거망동하지 말라”는 경고 등 권력 주변에서 아슬아슬한 파워게임이 이어지는 것도 후계구도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현직 대통령의 임기가 절반 이상 남은 시점에 후계자를 노리는 세력들이 막후 암투를 벌이는 것은 역대 정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일찌감치 여권의 유력한 대선주자로 자리매김해야 인재가 몰려들고 자금도 풍족해지기 때문에 언제나 고지선점을 위한 알력이 있었다.청와대 사람들도 현직 대통령의 임기 중반쯤 되면 슬슬 ‘줄서기’를 시작한다. 대부분은 현직 대통령의 의중이 누구를 후계자로 염두에 두고 있는지 살펴 그쪽에 고급정보를 제공하는 등 정권 차원에서 필요한 도움을 준다.

그러나 때로는 대통령의 뜻과 상관없이 제3의 인물에게 과감하게 ‘배팅’하는 참모들도 있다. 후계자로 낙점될 가능성이 희박한 후보자를 청와대의 힘을 이용해 적극적으로 도운 뒤 만일 그 후보자가 실제로 권력을 잡으면 한몫 단단히 챙기겠다는 속셈인 것이다.이런 사례는 여권의 대선후보를 완전 자유경선으로 선출했던 김대중 대통령 시절에 많았다. 국민의 정부 중반 이후 적지않은 청와대 사람들이 낮에는 대통령 비서실에서 일하고, 밤에는 각 후보자의 비밀캠프에 모습을 나타냈다. 당시 동교동 가신 출신인 A비서관은 초기에 청와대가 밀었던 이인제 후보나 동교동계인 한화갑 후보가 아닌 김중권 후보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줄을 서는 바람에 동교동 사람들로부터 ‘배신자’ 소리를 들었다. 권노갑 고문의 몫으로 청와대에 들어가 있던 B비서관은 권 고문의 ‘지시’에 따라 밤에는 이인제 후보 캠프에 상주하다시피 했다.

현직 대통령 후계구도에 민감

그렇지만 ‘후계자’에 가장 민감할 수밖에 없는 인물은 역시 현직 대통령 자신이다. 정책의 연속성 차원 외에도 누구를 후계자로 고르냐에 따라 퇴임 후 자신의 신상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 헌정사에서 대다수의 후임 대통령이 전임 대통령을 딛고 일어서 왔던 것과 무관하지 않다. 전두환 대통령은 청년장교 시절부터 박정희 대통령의 총애를 받았지만 정권을 잡고 나서 유신정권의 실력자들을 단죄하는 등 차별화를 시도했다. 노태우 대통령은 자신에게 권좌를 물려 준 전두환 대통령을 백담사에 보냈다.

김영삼 대통령은 그런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을 모두 구속시켜 버렸다. 전임 대통령 밟기 역시 YS가 가장 지독했던 셈이다. 그러나 YS는 퇴임 후 김대중 대통령에게 당한 것이 별반 없다. 오히려 사사건건 국민의 정부 정책에 시비를 걸고, 김대중 대통령을 직접 겨냥해 독설을 퍼붓곤 했다. 여기에 대해선 재미 있는 분석이 하나 있다. 상도동을 오래 출입한 한 언론인의 말이다.“YS는 권력의 속성을 꿰뚫고 있다. 만일 자신이 퇴임 후 조용히 있으면 보나마나 DJ의 청와대 참모들이 재임 시절의 비리를 파헤쳐 청문회에라도 세우려 할 것으로 생각했다. 따라서 ‘공격은 최상의 방어’란 말처럼 일부러 DJ를 공격했다. 만일 DJ 정권이 자신을 잡으려 하면 ‘비판자를 제거하려는 정치탄압’이라고 주장하기 위해서였다.” YS의 ‘DJ 씹기’는 결국 자신과 아들 현철씨를 보호하기 위한 자구책이었던 셈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어떨까.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해선 깍듯한 예우를 하고 있지만 DJ가 ‘민족적 비극’이라고 개탄한 대북 송금 특검을 통해 DJ의 분신인 박지원 전 비서실장 등을 구속시켜버렸다. 또 ‘햇볕정책’을 계승한다면서도 ‘평화번영정책’으로 바꿔 부르는 등 역시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어쨌든 현직 대통령은 후계자를 직접 낙점하거나 자유경쟁으로 후계자를 뽑아 물심양면 지원한다. 물론 자유경쟁을 시킬 때도 특정후보자를 적당한 후계자로 염두에 두고 적극 도와 주는 게 보통이다.

김근태, 정동영 후계자로 낙점

먼저 참여정부의 후계자로는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과 정동영 통일부 장관, 두 사람이 일찌감치 자천타천으로 꼽혀 경합을 벌이고 있다. 고건 전 서울시장의 영입 가능성, 이해찬 국무총리의 막판 변심 등 복잡한 변수가 많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정권 임기 시작부터 특정인들이 후계구도를 형성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2002년말 대선과정에서부터 직접 ‘후계후도’를 언급한 바 있다. 대선을 하루 앞둔 12월18일 낮, 그날 저녁 국민통합 21정몽준 대표의 공조파기 폭탄 발언을 야기한 서울 명동·종로 유세에서였다. 한 청중이 ‘다음 대통령은 정몽준’이라는 피켓을 들고 있는 것을 보고 유머삼아 “속도 위반하지 말라. 민주당에 추미애·정동영 의원 같은 인물도 있다”고 말한 것이다.

당시 노무현 후보가 추미애·정동영을 언급한 것은 마침 두 사람이 민주당 최고위원으로서, 정몽준 대표와 함께 단상에 앉아 있었기 때문에 농담조로 한 말이지 속마음은 아니었다는 것이 참여정부 사람들이 털어놓는 후일담이다.하지만 이후 정동영 의원은 언론인 출신답게 적절히 여론을 타면서 스스로를 ‘차기주자’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반면 추미애 의원은 열린우리당 창당에 참여하지 않고 민주당에 남아 홀로서기를 시도하다가 지난해 총선에서마저 낙선한 뒤 야인 생활을 하고 있다. 최근들어서는 노무현 대통령이 이해찬 총리를 후계자군의 한 사람으로 뇌리에 심기 시작했다는 말이 청와대에서도 들린다. 야당으로부터 ‘싸움닭’이란 소리를 들어가면서까지 대통령 대신 총대를 메는 헌신적인 자세를 높이 사고 있다는 전언이다.

박지원, DJ정권 후계구도 좌지우지

김대중 대통령의 후계자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박지원 전 비서실장이다. 물론 박 전 실장 자신이 후계자로 거론됐다는 것은 아니다. DJ는 재임 당시 후계구도에 대한 질문이 나올 때마다 자신은 중립이며, 경선에 의해 선출될 것이란 말만 되풀이했다. 그러나 DJ의 속마음이 없을 수 없었고, 이를 꿰뚫고 있는 박지원 실장이 후계구도를 좌지우지했다. 그런 측면에서 박지원 전 실장이 현대로부터 150억원을 받은 혐의로 2003년 6월18일 밤 서울구치소에 구속 수감되면서 조지훈의 시 ‘낙화’를 인용해 밝힌 소회는 시사하는 바가 적지않다.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 다만 한잎 차에 띄워 마시며 살겠다.” 국민의 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박 전 실장과 호흡을 같이 했던 사람들에 따르면 ‘낙화론’은 무심코 내뱉은 말이 아니다. ‘경선후보 노무현’을 ‘대선후보 노무현’으로 만들고, 나아가 ‘대통령 노무현’이 되게 하는 데 나름대로 역할을 했지만 결국에는 영어의 몸이 되고 마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한 구절이라는 해석이다.

즉, ‘꽃’은 박 전 실장 본인을 포함해 위기에 몰린 DJ 사람들을, ‘바람’은 현정권을 의미한다고 본다. 참여정부 탄생에 국민의 정부 청와대가 음으로 양으로 많은 도움을 줬는데도 결국은 바람이 돼 꽃을 지게 하는 데 대한 비정함을 탄식하고, 그렇지만 이를 탓하지는 않겠다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는 것이다.참여정부 탄생 과정에서 핵심적 역할을 했던 여권 관계자는 박 전 실장이 대신 실행한 후계구도와 관련한 DJ의 구상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민주당 대선후보 국민경선 과정에서 ‘김심(金心)’을 읽은 박 실장이 노무현 후보를 막후 지원한 것은 정황상 분명한 사실이다. 청와대의 ‘작업’없이 경선 판도를 뒤바꾼 광주 경선 승리가 가능했겠나. 아마 김대중 대통령이나 박 실장 모두 ‘노무현만은 우리를 배신하지 않을 것’이란 믿음을 가진 것 같다. 그러나 경선 이후 노무현 후보의 지지도가 급격히 떨어지자 청와대가 나서서 후보 교체를 시도한 흔적이 있고, 그렇기 때문에 ‘꽃’이 져도 ‘바람’을 탓할 수 없게 된 것 아니겠느냐.”

YS, ‘젊은 후보론’ 실체 없어

김대중 대통령에 앞선 김영삼 대통령 시절의 후계구도를 언급할 때는 ‘깜짝 놀랄 젊은 후보론’을 빠뜨릴 수 없다. 문민정부 임기가 반환점을 돌아 후반기에 접어든 1995년 10월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과의 회견 중 ‘후계자’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활기차고 젊은 사람’, ‘깜짝 놀랄 만한 세대교체’를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이 과정에서 2선 국회의원과 노동부 장관을 거쳐 경기도지사로 있던 이인제(당시 46세)씨가 급부상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이 ‘깜짝 놀랄 젊은 후보’가 이인제 지사를 염두에 둔 것 같다는 사족을 단 덕분이기도 하지만, 이 지사 스스로 언론을 상대로 은근히 “나를 지칭한 것”이라고 치고 나간 것이 주효했다. 그는 “양김(DJ와 JP)을 겨냥한 것이면서 동시에 중진을 견제하는 의미도 담겨있을 것”이라는 등의 말로 세대교체를 기정사실화하고 그 대안으로 스스로를 지목했다.그러나 상도동 사람들의 후일담을 들어보면 그 때 김영삼 대통령은 특정인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었다.

당시 ‘차기’ 경쟁을 벌이던 김윤환 민자당 대표, 이한동 국회부의장, 최형우 의원 등 이른바 ‘트로이카’ 실세 60대 중진들을 견제하고, 세대교체를 강조하기 위한 원론적 언급이었다고 입을 모은다. 김영삼 대통령도 비슷한 시점에 가진 영남일보와의 회견에서 “시간이 많이 남아 있고 상황이 변할 것이므로 구체적인 인물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다”고 말한 바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치고 올라 갈 기회를 노리고 있던 이인제 지사와 강삼재 민자당 사무총장(당시 43세) 등 40대들이 언론플레이를 시작했고, 그 승자가 이인제 지사였다. 일부 언론에서는 강재섭 의원(당시 47세)이 YS의 직계 민주계인 이 지사나 강 총장과 달리 민정계이기는 하지만 총재비서실장으로 있으면서 YS의 눈에 들었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당시 야당인 국민회의 대변인이던 박지원씨는 “민자당 대통령후보를 누구로 지명하든 자유이나 누구는 안된다는 식으로 이야기해서는 곤란하다. 경선을 통해 결정할 일을 대통령이 나서서 후보를 지명하거나 나이 운운해서는 1인 독재정당밖에 더 되겠는가”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그 역시 앞에서 살펴 본 대로 ‘DJ 후계자 만들기’에 앞장섰다.

노태우, 후계자 낙점 못해 YS에 굴복

YS의 전임자인 노태우 대통령은 본인 임기 동안의 안정을 위해 3당통합을 단행하는 바람에 스스로 후계자를 낙점하지 못하고 YS의 오기에 굴복, 정권을 넘겼다. 전두환 대통령은 12·12 사태를 일으키면서 무언의 약조를 한대로 일찌감치 노태우 민정당 대표를 후계자로 ‘예약’해 둔 상태였다. ‘2인자’를 용인하지 않고 철저한 분할통치를 했던 박정희 대통령은 결과적으로는 청년장교 시절부터 눈여겨 봐온 전두환 대통령에게 권좌를 넘겼다. 만일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후계자로 점 찍어둔 확실한 2인자가 있었다면 그의 사후 신군부가 정권을 농단하지는 못했을 것이란 분석은 설득력이 있다.

유제성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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