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참여정부 내 위원회는 노 대통령 취임이후 신설된 24개 위원회를 포함, 대통령 직속 위원회 20개(행정위 4개, 자문위 16개)와 정부위원회 358개(행정위 39개, 자문위 319개) 등 모두 378개에 달한다. 헌법상 독립 위원회를 제외한 대통령 소속 위원회는 현재 23개가 있다. 2001년 11개, ‘국민의 정부’ 말기인 2002년 13개였지만, 참여정부가 들어선 2003년 18개에서 지금은 23개까지 늘어났다. 게다가 8월엔 ‘국가인적자원위원회’가 새롭게 출범할 계획이어서 대통령 직속 위원회는 계속 늘어날 전망으로 ‘위원회 공화국’이라는 말을 실감케 한다.
국정과제위, 참여정부 정책결정
참여정부에 위원회가 눈에 띄게 증가한 이유는 노 대통령의 의중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대선 승리 이후 공약을 실천하는 방안과 통치 시스템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 구체화됐다는 전언이다. 노 대통령의 핵심측근 이광재 의원은 “국정 과제를 담당할 범정부적인 위원회를 두자는 구상은 90% 이상 노 대통령의 아이디어였다”면서 ”인수위원회가 가동되기 전부터 노 대통령과 참모들은 해외 사례를 검토했고, 특히 미국 클린턴 행정부의 사례를 참고해 국정 운영 모델을 구상했다”고 말한 바 있다. ‘대통령은 장기적으로 추진할 과제를 맡고, 일상적인 현안과 업무는 총리를 비롯한 장관이 맡는다’는 노 대통령의 통치시스템은 사실상 클린턴 행정부의 모델에서 나왔다는 전언이다. 이 때문에 위원회의 위상이 다른 어느 정부보다 강화된 구조가 됐다.
특히 참여정부의 100대 과제를 추진중인 12개 국정과제자문위원회는 그 위상과 권한이 막강하다. 위원장은 장관급이며 12개 자문위원회 위원장들이 매달 운영협의회를 열고 업무를 조율하며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여러 가지 정책 건의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때 건의된 사안은 국정에 그대로 반영되는 사례가 많다. 일각에서는 참여정부의 모든 정책방향은 이곳에서 좌지우지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그 만큼 12개 국정과제자문위원회는 노 대통령과 코드가 맞는 인물로 채워져 있고 중요직책에는 후보시절 자문단, 대통령직 인수위원을 거친 측근인사들이 포진해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이정우 정책기획위원장이다. 정책기획위원회는 지난 1989년 ‘21세기 위원회’에서 출발, 1995년 정책기획위원회로 이름을 바꾸어 지금에 이른 대통령 자문기구로서 참여정부의 중장기 발전전략과 정책방향의 수립, 국정과제의 추진과 총괄조정기능을 맡고 있다.
후보시절 자문교수단 핵심요직 기용돼
12개 대통령 자문 국정과제위원회를 총괄 지휘하고 있는 그는 대통령후보시절 자문단의 핵심으로 활약하며 인수위를 거쳐 참여정부 초대 정책실장을 역임했다. 정책실장직을 물러난 이후 정책기획위원장을 맡을 정도로 노 대통령의 각별한 총애를 받고 있다. 여권의 한 핵심인사는 이 위원장을 두고 “노 대통령의 국정 구상에 가장 많은 영향을 주는 인물”이라고 평할 정도다. 정책기획위원회 조재희 국정과제비서관도 자문교수단 간사를 거쳐 인수위 기획조정분과 전문위원을 역임한 인물.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 윤성식 위원장과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성경륭 위원장도 자문교수단과 인수위를 거쳤다. 두 사람이 맡고 있는 위원회는 참여정부의 100대 국정과제 중 39개 과제를 맡고 있는 핵심위원회다.
행담도개발사업과 관련, 사표를 낸 동북아시대위원회 문정인 전 위원장과 민간위원인 이수훈 위원도 각각 자문교수단과 인수위시절부터 노 대통령과 인연을 맺어왔다. 고령화 및 미래사회위원회 김용익 위원장,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송기도 위원 등도 인수위출신이다.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 한승헌 위원장은 국민의 정부시절 감사원장을 지냈고 대통령 탄핵 재판때 변호인단에 참여했던 노 대통령과 가까운 인사다. 이밖에 노 대통령의 후보시절 자문교수단장을 맡았던 김병준 청와대 정책실장도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장 출신이다. 국정과제위원회를 맡고 있는 인사들의 면면을 보면 노 대통령이 국정과제위원회에 거는 기대를 보여준다. 실제 참여정부 국정운영의 방향은 대통령 자문 국정과제위원회들이 내놓은 각종 ‘로드맵’에서 출발했다. 공공기관 지방이전 방안이나 행정도시 건설, 사법개혁안, 교육자치제 등 최근 나온 굵직한 정책들은 모두 대통령 소속 위원회들이 내놓았다.
업무중복, 예산낭비 지적도 일어
그러나 자문위원회는 권한의 범위와 뚜렷한 법적 제어장치가 없어 월권시비 등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동북아시대위원회의 행담도 관련 월권논란이 대표적인 예다. 동북아시대위원회는 정책집행 행위에 해당하는 양해각서(MOU)를 체결했고, 문정인 전 위원장은 행담도 개발에 채권발행을 위한 추천서까지 써 줘 위원회의 권한에 대한 시비에 불을 붙였다. 일각에서는 대통령 자문위원회 난립으로 인한 부작용이 드러났다는 지적도 있다. 최근엔 업무중복과 예산의 낭비가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달 30일 한나라당 박형준 의원이 국회예산정책처에 분석 의뢰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현재 대통령 소속 27개 위원회 가운데 업무가 중복되거나 예산을 낭비할 우려가 높은 위원회가 전체의 37% 안팎인 10여 개에 이르는 것으로 밝혀졌다.
감사원도 최근 정부혁신·지방분권위와 지방이양추진위가 비슷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그러나 이정우 정책기획위원장은 지난 1일 청와대브리핑을 통해 ‘위원회가 희망’이라는 제목으로 “시도 때도 없이 위원회가 도마위에 오르고 있다”고 위원회를 둘러싼 비판에 반론을 폈다. 이 위원장은 “위원회의 학자들과 부처 관료들이 토론하고 협력하는 소통과 협치(거버넌스)의 새로운 형태의 정부 모습”이라며 “아마추어일수록 구태에 덜 물들었으니 오히려 아마추어가 희망”이라고 역설했다. 하지만 우군인 열린우리당 내에서도 ‘청와대 인적쇄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어 청와대를 곤혹스럽게 한다.
# 한나라당, “위원회를 공격하라”
동북아시대위원회의 행담도 의혹이 터지면서 한나라당이 참여정부의 각종 위원회가 ‘국정난맥의 원인’이라고 주장하며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한나라당의 박근혜 대표는 2일 상임운영위원회 회의에서 “국정난맥상의 근본원인이 각종 자문기구에 있다고 생각한다”며 “자문기구가 자문만을 해야 되는데 정책결정까지 하고 집행까지 하는 식으로 하니까 행정부처가 제 기능을 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강재섭 원내대표도 “자문위가 난립, 예산을 쓰고 있다”며 “국회에서 자문위를 규제하는 법안을 제출해 반드시 통과시키는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나라당은 구체적으로 자문위의 규제를 위한 법안까지 마련하고 임시국회에서 제출할 계획이다. 나경원 의원의 대표발의로 자문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적 근거를 담은 `정부자문위원회법`을 입법 추진키로 한 것. 나 의원은 “현재 정부 내에 설치, 운영되는 각종 자문위원회는 대부분 법적 근거가 없고 업무도 상당부분 행정기관과 중복되는 등 조직·인력 및 예산의 낭비라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면서 “자문위원회는 특히 조정위원회나 행정위원회, 독립규제위원회 등과 달리 특정 개인 또는 조직 전체에 대한 자문을 목적으로 설치된 참모기관으로 법적인 구속력이 없음에도 참여정부 들어 그 영향력이 지나치게 비대해졌다”고 지적했다.
이인철 chlee@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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