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굴 위한 역사적 진실 뒤집기인가
누굴 위한 역사적 진실 뒤집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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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4-07-21 09:00
  • 승인 2004.07.2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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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에 이어 노무현 정권에서도 집권세력의 힘을 믿고 엄연한 역사적 진실을 뒤집어 엎으려는 기도가 끊이지 않고 있어 우려된다. 제주 4·3무장폭동, 이승복 참살, KAL 858기 폭파에 대한 뒤집기와 간첩들에 대한 미화 기도가 그것들이다.김대중 정권때 설치된 국무총리 산하 ‘4·3진상규명위원회’는 1948년 4월3일 남로당 주도의 제주도 무장폭동을 단순히 ‘무장대와 토벌대간의 무력충돌’이라고 표현했다. 이 대목만 접하게되면 공산당 주도의 무장폭동촉발이 4·19혁명과 같이 민주화를 위한 무장대의 의로운 저항 정도로 헷갈리게 된다. 과연 누굴 위한 미화인지 의심치 않을 수 없다. 뒤늦게나마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가 발간 예정인 ‘6·25 전쟁사’는 4·3사건을 남로당 주도하의 ‘무장폭동’이라고 바로잡았다. 다행한 일이다. 1998년 일부 김대중 정권과 코드를 함께하고 있던 일부 방송매체와 사람들은 이승복 어린이 참살에 관해 보도한 신문기사가 꾸며낸 소설이라고 주장했다. 이승복은 1968년 10월말 울진·삼척 지역으로 침투한 북한 공비들에 의해 참혹하게 살해당한 어린이다. 120명의 무장공비들은 반항하는 주민들을 닥치는대로 23명이나 죽였고 이승복도 그들중 하나였다. 당시 이승복은 9세의 어린이로 어머니와 15세의 형, 7세의 남동생, 4세의 여동생과 함께 집에 있었다. 느닷없이 들이닥친 5명의 공비들은 아이들에게 “너는 북한이 좋으냐”고 물었고 여기에 이승복이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답변했다. 공비들은 이승복의 멱살을 잡아 입을 벌린 후 대검으로 입을 찢어 살해했다. 이어 공비들은 이승복의 어머니를 대검으로 수차례 찔러 숨지게 했고 두 동생들은 벽에 던져 죽였다. 일부 방송과 사람들은 이 끔찍한 공산 만행에 대한 신문사의 보도기사를 꾸며낸 소설이라고 매도했다. 그러나 지난 달 서울중앙지법 민사25부는 이승복이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한 것은 사실이라고 재확인해주었다. 심지어 집권여당인 열린우리당측은 북한에 의한 KAL기 공중폭파까지도 한국정부의 ‘부당한 공권력에 의한 사망·실종’으로 의심해 재조사를 할수 있도록 진상규명법을 개정하고자 한다. KAL기 폭파는 북한이 1988년 서울 올림픽을 방해하기 위해 87년 11월29일 미얀마의 안다만 상공에서 폭파한 것이고, 대법원에 의해 북한 공작원 김현희에 의한 것으로 확정판결 까지 났다. 뿐만 아니라 2002년 9월에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와의 회동에서 간접 확인시켜 주기까지 했다. 김정일은 김현희에게 북한에서 일어를 학습시킨 이은혜 라는 사람이 김현희의 진술대로 납치한 일본인이 맞다고 실토까지 했다는데서 그렇다. 이러다간 열린우리당측은 6·25남침도 북침이란 주장이 있으니 재조사하자고 덤빌게 아닌가 한심스럽기 그지없다.그밖에도 노무현 정부 산하기관인 제2기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비전향장기수들의 전향거부를 “민주화에 기여한 것”으로 규정하였다. 그런가하면 지난봄 정부 산하 단체인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거물간첩 송두율을 돈까지 대주면서 서울로 “민주화투쟁 인사”로 초청했다. 거기에 맞춰 KBS는 그를 민주화 영웅으로 미화시키고 나섰다.이제 노무현 정부는 김대중 정부때부터 ‘민주화’란 미명하에 자행되기 시작한 역사적 진실 뒤엎기 음모에 철저히 대처하지 않으면 안된다. 권위주의정권 시절 억울하게 짓밟힌 생명이나 인권은 회복되어야 한다. 그렇지만 간첩을 ‘민주화 운동가’로 미화하는 따위의 뒤집기를 방치할 때, 대한민국도 끝내 뒤집히고 만다는 사실을 직시하지 않으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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