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 여자’는 권력 핵심부를 노린다
‘돈과 여자’는 권력 핵심부를 노린다
  • 유제성 언론인 
  • 입력 2005-05-31 09:00
  • 승인 2005.05.31 09: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집권 3년차에 접어든 참여정부가 휘청거리고 있다. 두 달 넘게 여권을 흔든 ‘오일 게이트’(러시아유전 개발 의혹)에 대한 검찰의 수사 칼날이 이광재·이기명씨 등 노무현 대통령의 핵심 측근들을 향한 시점에 또다른 의혹 사건인 ‘행담도 게이트’(충남 당진 행담도 개발 의혹)가 터졌다. 정권 차원의 게이트 사건이 두 가지가 동시에 청와대를 강타하는 것도 드문 일이다. 그렇잖아도 참여정부는 올들어서만 이미 지난 1월7일 이기준 교육부총리 경질파동을 시작으로 이헌재 경제부총리, 최영도 국가인권위원장에 이어 3월말 강동석 건설교통부 장관의 사퇴에 이르기까지 혹독한 인사 파행을 겪은 터다.

그런데 과거 정권에서도 각종 게이트가 줄줄이 터지면서 ‘집권 3년차 신드롬’, 또는 ‘집권 중반기 신드롬’이 이어져 왔다는 사실은 이 시리즈의 첫 회에서 다룬 바 있다. DJ 정권의 옷로비 파문, YS 대통령 시절의 차남 현철씨 국정농단 사건 등이 모두 그랬다. 각종 ‘게이트’로 이름 붙여진 사건들을 중심으로 역대 대통령 주변의 권력형 비리 의혹이 왜 발생했고, 어떤 계기로 세상에 드러났으며, 어떻게 매듭지어졌는지를 뒷 얘기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우리는 돈과 여자가 없지 않느냐.”

최근 언론에서 김영삼·김대중 대통령 시절에 이어 현정권도 ‘집권 3년차 신드롬’에 시달리고 있다는 보도가 잇달아 나오자 노무현 대통령의 한 핵심 측근이 과거와의 차이점을 강변하면서 한 말이다. “우리도 집권 3년차를 맞아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과거의 신드롬이 ‘비리 신드롬’이었다면 우리는 ‘정책신드롬’이다. 첫 1년 동안은 로드맵을 짰고, 그 다음 1년 동안의 초기 시행 과정을 거치다보니 3년차들어 몇가지 정책적 오류가 발견되는 것 뿐이다. 그 증거로 지금 ‘게이트’라고 거론하는 일에서 청와대 사람들이 돈을 먹거나 여자와 연루된 게 있느냐.”

역대 집권 각종게이트 양산

이 참모가 말하는 ‘돈’은 DJ 시절 줄줄이 발생한 정권 비리 게이트와 YS 시절의 각종 추문에서 항상 권력 주변에 뇌물이 흘러들어갔음을 빗댄 것이다. 또 ‘여자’는 고위층 부인들이 연루된 옷로비 게이트(DJ), 내연의 여자가 등장하는 ‘장학로 부속실장 사건’(YS) 등을 지칭한 것이다. 물론, 이 참모의 말처럼 최근 발생한 게이트엔 권력이 작용했지만 적어도 청와대 사람들과 관련된 돈과 여자는 없다. 그럼에도 요즘 청와대는 벌집을 쑤셔놓은 듯 어수선하다. 지난 5월24일과 25일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머무는 춘추관은 하루종일 분주했다. 행담도 개발을 둘러싼 의혹의 불길이 청와대로 번진 데 대해 ‘연루자’들이 총력진화에 나선 까닭이다.

24일 문정인 동북아시대위원장에 이어 25일엔 정찬용 전 인사수석과 정태인·이정호 비서관 등 동북아시대위원회의 전·현비서관들이 줄줄이 이 자리에 나왔다. 낙후된 호남개발을 위한 프로젝트였다는 것이 한결같은 해명이었다. 특히 호남 출신인 정 전 수석은 특유의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로 “오히려 잘 하라고 해야 할 판에 신문사 계신 양반들이 삐딱하게 보고 있다”며 “지금도 그런 사업이 있으면 하겠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정 비서관은 “‘S프로젝트’는 전라도의 꿈”이라고 까지 했다. 이를 지켜보는 홍보수석실 참모들의 표정은 매우 긴장됐다. 김만수 대변인, 김현 춘추관장, 양정철 홍보기획비서관은 물론, 그 밑의 행정관들도 모두 현장에 나와 혹시 언론에 꼬투리를 잡힐 만한 말이 나오지 않을까 초조하게 지켜봤다. 간혹 다른 수석실의 참모들도 모습을 보였다. 그들의 입에선 악재는 겹쳐 온다는 뜻의 ‘화불단행(禍不單行)’이란 말이 절로 나왔다.

DJ 게이트 정권 오명

특히 이광재 의원의 ‘오일 게이트’ 연루 의혹과 관련해선 청와대의 ‘연세대 인맥’들이 사태 추이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가뜩이나 참여정부들어 연세대 인맥이 너무 약진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판에 동문인 이 의원의 비리 연루 사실이 밝혀질 경우 파편이 동문 전체로 튈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화불단행이란 말과 같은 뜻으로 쓰이는 ‘머피의 법칙’은 국민의 정부 청와대 사람들이 자주 되뇌인 말이었다. 그만큼 김대중 대통령 시절은 ‘게이트 백화점’이라고 할 만큼 온갖 부정부패, 비리, 독직 사건들이 정권 주변에서 터져 나왔다.

정현준 게이트, 진승현 게이트, 이용호 게이트, 최규선 게이트가 줄을 이었고, 사이 사이 크고 작은 비리 사건들이 불거졌다. 독자들의 기억에 남아 있는 국민의 정부 권력 주변의 부정부패사건들만 정리해 봐도 다음과 같다. ‘옷 로비의혹 사건’, ‘KDL 정현준 사장의 로비 의혹’, ‘MCI 코리아 진승현 대표의 불법대출 사건’, ‘G&G그룹 이용호 회장 횡령 사건’, ‘김형윤 전 국가정보원 경제단장 수뢰 사건’, ‘신광옥 전 법무차관과 김은성 전 국정원 제2차장 수뢰 사건’, ‘김대중 대통령 차남 홍업·3남 홍걸씨의 최규선 게이트 연루 혐의 구속’. 심지어 청와대 환경미화원이 과장 행세를 하며 수억원대의 뇌물을 챙긴 것도 이 때의 일이다.

그런데 당시 어느 청와대 사람이 한 말 중에 재미 있는 것이 있다. “과거 정부는 우리 보다 훨씬 더 많이 해 먹었다. 단지 그들은 옛날부터 이어져 온 ‘비리 노하우’가 있어서 잘 들키지 않은 것 뿐이다. 우리는 50년만에 정권을 교체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들키지 않고 정권을 이용해 비자금을 조성하는지 잘 모르기 때문에 자주 들키는 것이다.” 그는 또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낸 신광옥씨가 불과 수백만원 때문에 고초를 겪은 일을 상기시키며 “우리는 소리만 요란했지 금액도 과거 정권에 비하면 영(0)이 두 개 이상 빠지지 않느냐”고 ‘억울해’ 하기도 했다.

YS 현철씨 게이트 대표적

DJ는 퇴임 후에도 ‘진승현 게이트’의 뒷 얘기가 밝혀지면서 ‘숨겨진 딸’이 공개되는 등 게이트 망령이 이어지고 있다. 이처럼 DJ 시절에 각종 비리 게이트가 판을 친 것은 당시의 벤처산업 육성책과 무관하지 않다. 별 다른 기준도 없이 벤처 창업자금을 지원하다 보니, 그 돈은 곧 ‘눈먼 돈’이란 인식이 확산됐고, 권력에 조금이라도 줄을 댈 수 있는 사람들은 벤처에 뛰어들어 사업은 뒷전이고 돈놀이를 했다. 앞서 김영삼 대통령 시절에도 장학로 부속실장의 수뢰 사건을 시작으로 권력과 돈의 함수 관계를 알 수 있게 하는 추문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차남 현철씨의 전횡은 그 자체만으로 한 권의 책을 엮을 수 있을 정도라는 얘기가 정치권에 나돌았다. 그럼에도 딱히 ‘게이트’라고 부르는 사건이 없는 것은 언론 때문이다. 사실 특정 사건에 ‘게이트’란 명칭을 붙이는 것은 언론이다. 그런데 언론들이 이 용어를 즐겨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국민의 정부 들어서여서 문민정부 시절에는 ‘게이트’가 없게 된 것이다.

5공 권력남용 극에 달해

전두환·노태우 대통령 시절에는 ‘게이트’라 불릴 만한 권력 주변의 비리 사건이 공개된 것이 거의 없다. 그렇다고 비리가 없었던 것이 아니다. 당시 사정을 잘 아는 사람들은 청와대 비서실의 권력남용은 극에 달했다고 한다. 퇴임 후 밝혀졌지만 두 대통령 스스로가 천문학적인 비자금을 조성하던 시절이었다. 그럼에도 언론에 보도될 정도의 사회 문제가 된 사건이 드물었던 이유는 혹 비리가 발각되더라도 정권 내부에서 덮어버렸기 때문이다. 과거 청와대에 얼마나 많은 돈이 흘러넘쳤는지 엿볼 수 있는 언론인 출신 전직 비서관의 전언이 있다. “비서관 발령을 받고 처음 청와대에 들어가니 하루에도 수십명씩 인사를 오더라. 유관 정부부처 공무원도 있고, 기업인도 있었는데, 한결 같이 축하금을 들고 왔다. 다 모으면 금세 부자가 될 정도의 거금들이었다. 솔직히 욕심은 있었지만 일일이 거절했다.

그런데 어느날 일과를 마치고 사무실 정리를 하다보니 낯선 쇼핑백이 있었다. 그 속에 현금으로 1천만원이 들어 있었는데, 누군가 슬며시 놓아두고 간 것 같았다. 그런데 문제는 놓고 간 사람의 인적 사항을 알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돌려 줄 방법도 없고 해서 그냥 활동비로 사용했다. 지금도 그 돈을 놓고 간 사람을 모른다.” 우리나라에서 ‘게이트’란 용어가 정치적으로 처음 사용된 것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인 1976년 발생한 ‘코리아 게이트 사건’ 이다. 재미 로비스트인 박동선씨가 미국 의회에 거액의 로비자금을 제공한 사실이 보도되면서 한·미 간의 외교마찰사건으로 비화된 이 사건을 미국 언론에서 ‘코리아 게이트’로 불렀고 우리 언론도 그 용어를 사용했던 것이다.

권력 파워게임 논란

갖가지 게이트가 발생할 때마다 여의도의 국회의원회관과 각 정당 사무실 주변엔 연루자들의 명단과 수뢰한 액수가 담긴 ‘리스트’가 나돈다. 그런데 나중에 검찰 수사 결과 진상이 파악된 뒤 보면 리스트에 담긴 내용이 사실로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무슨 게이트가 터질 때 마다 권력 내부의 파워게임설이 함께 나돈다. 권력의 깊숙한 자리에 있지 않고는 사전에 입수할 수 없는 고급정보들이 리스트에 담겨 있기 때문에 상대방의 비리를 의도적으로 언론 등에 흘려 검찰 수사를 유도하는 경우가 없지 않았던 것이다.

유래는 ‘워터게이트’

권력 주변의 각종 비리, 의혹 사건, 추문 등을 의미하는 ‘게이트’란 용어는 1972년 6월 발생한 미국의 ‘워터게이트사건(Watergate Affair)’에서 유래했다. 당시 닉슨 대통령은 재선을 위해 비밀공작반을 워싱턴의 워터게이트 빌딩에 있는 민주당 전국위원회 본부에 침투시켜 도청장치를 설치하려다 발각돼 결국 하야했다. ‘게이트’라는 용어는 바로 이 워터게이트 빌딩에서 따온 것이다. 현정부의 게이트에서 돈과 여자가 빠지고, 비리 보다는 정책과 관련된 것이 많다고 했지만 사실 정책과 관련된 게이트가 국민 경제생활에는 더 큰 상처를 남길 수 있다. 사사로운 개인 비리 게이트야 국민들에게 허탈감을 주는 정도에 그치지만 국가 정책에 대한 의혹이 사실로 밝혀질 경우 나라경제 전체에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유제성 언론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