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타레처럼 얽혀 있는 대북문제 해법 차원에서 ‘DJ 특사론’이 자주 거론됐던 것.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대북송금 특검을 수용하면서 노 대통령과 DJ는 한동안 보이지 않는 갈등관계를 유지했다. 노무현 정부와 정치권이 ‘DJ 특사론’에 공감하면서도 이를 실천하지 못한 배경에 두 사람의 소원한 관계가 자리잡고 있었던 셈이다.이후 DJ의 핵심 측근인 박지원 전 비서실장과 아들 김홍업씨가 잇달아 무죄를 선고 받고, ‘햇볕전도사’로 통했던 임동원 전 통일부장관이 지난해 11월 세종재단 이사장에 선임되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점차 화해·협력 무드로 돌아섰다. 특히 임 이사장이 통일·안보분야와 관련해 정부의 싱크탱크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세종재단 이사장에 선임된 배경에는 노 대통령과 DJ간의 사전교감 내지는 암묵적 합의가 내포돼 있었을 것이란 시각이 적지 않다. 노 대통령과 DJ를 중심으로 한 복잡한 정치적 이해관계도 두 사람의 관계 회복을 촉진시키는 배경이 된 것으로 풀이된다.
DJ 입장에는 자신의 최대 치적인 남북정상회담의 역사적 가치를 높이고, 대북송금 특검으로 얼룩졌던 ‘햇볕정책’을 계승·발전시키기 위해서라도 답보상태인 대북관계 해소에 기여를 해야 한다.노 대통령은 미국 부시 대통령 재선이후 남북관계에 대한 국민적 불안감을 해소해야 한다. 또 4·30 재보선 참패로 총체적 위기상황에 처한 여권에 생기를 불어넣고 정국주도권을 되찾기 위해서도 남북관계 회복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노 대통령과 정부가 2차 남북정상회담 플랜을 물밑 가동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어려운 상황과 그 맥을 같이하고 있다.그동안 여권 핵심인사들이 ‘DJ 대북특사론’을 띄우며 DJ에게 구애의 손길을 내밀었던 배경에는 노 대통령이 처한 어려운 상황론이 자리잡고 있었다.여기에 대북 관계자들은 북측이 현 정부 대북라인(정동영 통일부장관, 이종석 NSC사무차장 등) 보다 DJ정부 당시 대북라인(임동원 박지원 등)을 더 신뢰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실제로 다음달 평양에서 열리는 6·15 행사에 북측 관계자들은 남북정상회담 성사에 기여한 박지원 전 실장과 임동원 이사장을 방북단에 포함시켜 줄 것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도 정동영 통일부 장관을 수장으로 한 대표단을 참석시키고, 정치권에서는 열린우리당 문희상 의장 등 여야 의원 20여명이 방북을 계획하고 있어 민간단체까지 포함하면 이번 평양 행사에 참석하는 방북단은 대규모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DJ 특사론’도 바로 이러한 분위기와 맞물려 있다. 남북정상회담 5주년이란 상징적인 의미를 살려 DJ와 김정일 위원장과의 재회를 성사시켜야 한다는 논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물론 민화협 등 민간단체는 순수한 취지에서 정상회담 주역인 DJ의 방북을 추진하고 있지만 여권 일각에서도 ‘DJ 특사론’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이와관련 청와대의 한 고위관계자는 “아직 정부 차원에서 DJ의 방북을 공식 논의한 적은 없다”고 전제한 뒤 “민간 차원에서 추진하고 북측과 DJ가 동의한다면 정부도 반대할 이유는 없다”고 말해 DJ의 방북 가능성을 열어놨다.정치권 관계자들도 6·15기념행사는 남북 민간단체가 주축이 돼 추진하고 있는 행사인 만큼 DJ가 이번 방북단에 포함되더라도 공식적인 특사역은 맡지 않을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다만 DJ의 방북이 성사될 경우 김정일 위원장과의 재회 가능성이 높은 만큼 이 자리를 통해 노 대통령의 남북관계 해소 의지 등을 간접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형식적으로는 민간 차원의 순수한 방북이지만 실질적으로 노 대통령의 특사역 성격을 띨 것이란 분석에 무게감이 실리고 있다.한반도 긴장완화 등 전반적인 대북정책 돌파구가 절실한 노 대통령과 대북송금 특검으로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고자 하는 DJ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6월 DJ 특사론에 힘이 실리고 있는 분위기다.
홍성철 anderia10@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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