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도박에 판돈 걸듯 대통령직을 함부로 걸고 나서곤 한다. 그는 집권한지 불과 석달반만에 대통령직을 걸기 시작했다. 그는 사회 이익집단들이 “전부 힘으로 하려고 하니… 대통령직을 못해먹겠다는 위기감이 든다”고 했다. 헌법 66조에 명시된 대로 대통령은 ‘국가의 계속성과 헌법을 수호할 책무’를 지게 되어있다. 그래서 노대통령은 일부 국민들이 국헌을 문란케 할 때는 단호히 대처해야 한다. 하지만 그는 그대신 “대통령직을 못해먹겠다”고 토해냈다. 친목계 계주나 할 말이었다. 대통령으로서 헌법에 명시된 책무를 가볍게 여긴 무책임한 말이 아닐 수 없다. 그런가하면 노대통령은 그로부터 7개월만에 17대 대선 불법자금과 관련해 또 대통령직을 걸었다. 그는 “우리가 쓴 불법자금 규모가 한나라당 불법자금의 10분의 1을 넘으면 (대통령)직을 걸고 정계서 은퇴할 용의가 있다”고 선언했다. 검찰의 수사 결과가 발표되었다. 이회창 캠프는 823억2,000만원, 노무현측은 113억8,700만원으로 각기 드러났다. 노캠프의 불법자금이 분명히 한나라당 것의 10분의 1을 훨신 넘긴 것이다. 노대통령이 정계를 떠날 차례였다. 그러나 그는 대통령직을 은퇴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사과 한 마디 하지 않았다.그로부터 1년 4개월여만인 지난 7월말 노대통령은 또 다시 대통령직을 걸고 나섰다. 그는 한나라당이 자신의 대연정(大聯政)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은 정권을 내놓고”라고 했다. 한나라당에 “내각제 수준의 권력을 이양”해 줄터이니 그대가로 한나라당은 ‘지역주의 정치’를 ‘제도적으로 해소하기 위한 선거구제도’ 개혁에 손을 들어주면 된다는 것이었다. 노대통령은 ‘지역주의 극복’이 ‘정치생애를 건 목표이자 대통령이 된 이유’라면서 연정을 제안했다. 하지만 지난 6월 청와대측이 소개한 그의 정치목표는 달랐다. 그가 정치를 하게 된 것은 ‘분노 때문’이었고 지금도 그의 정치과제는 ‘분노와 증오를 해소하는 것’이라고 밝혔다는데서 그렇다. 그의 정치과제는 불과 한달만에 ‘분노와 증오 해소’에서 ‘지역주의 해소’로 바뀌었다. 어떤 것이 진짜인지 종잡을 수 없게 하고 그의 말에 무게를 둘 수 없게 한다. 노대통령의 권력 이양 제의를 믿을 사람은 드물다. 그는 1년여 전에도 대통령직을 은퇴하겠다고 약속해놓고 지키지 않았는가 하면, 대통령 못해먹겠다고 함부로 말했었기 때문이다. 그밖에도 한국의 대통령 중심제는 프랑스와 같이 이원집정부제가 아니라는데서 내각을 야당에 맡길 경우 권력구조를 혼란으로 몰아넣을 수밖에 없다. 노정권과 한나라당이 이념적으로 타협할 수 없는 상극관계에 있음을 상기하면 더 더욱 두 말할 필요도 없다.노대통령의 대연정과 권력 이양 발상은 집권세력에 대해 끓어오르는 국민들의 분노와 불신을 야당에 전가하기 위한 것으로 의심케 한다. 위기 탈출용, 그것이다. 그의 난데없는 대연정 제의는 얼마전 탄핵 위기로 내몰린 글로리아 마카파갈 아로요 필리핀 대통령이 위기 탈출용으로 ‘내각제 개헌’을 엉뚱하게 들고 나선것을 상기케 한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나라를 구하는 길은 연정이 아니라 도탄에 빠진 민생부터 살려내는 것”이라며 일축해버렸다. 박대표의 일축은 대통령직 은퇴 약속을 지키지 않은 노대통령의 지난날 허언과 대연정 제의의 저의를 의심한데 연유한 것으로 보인다. 노대통령은 “못해 먹겠다.” “은퇴 하겠다.” “이양 하겠다.” “대연정 하자” 등의 외마디로 ‘도탄에 빠진’ 국민들을 더욱 피로케 해서는 안된다. 그럴바에야 차라리 자신의 말대로 정말 ‘은퇴’하는 편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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