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성즉패’(極盛則敗)라는 단어가 있다. 사람이 너무 극성을 부리면 얼마 가지 못해 패가망신하고 만다는 뜻이다. 이 말은 이해찬 국무총리를 떠올리게 한다. 총리 자리에 앉아 그토록 극성을 부리더니 망신을 면치 못한다는 것이 그것이다.이총리는 3·1절 행사와 철도파업이 겹친 날에 부산으로 내려가 골프를 즐겼다. 그것도 함께 골프한 사람들 중에는 과거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한 기업인을 비롯, 부적절한 사람들이 끼여있었다는데서 더욱 충격적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총리의 거취문제에 대해 아프리카 순방 후 생각해보자고 미뤘다. 그가 10여일 후 귀국해 이총리를 해임할는지, 아니면 폭발했던 국민들의 격분이 그 때 쯤 가라앉게 되면 없었던 것으로 슬며시 넘어갈는지 알 수 없다.특히 노대통령의 이총리에 대한 신임이 두텁다는데서 해임하리라 예단키는 어렵다. 노대통령이 언젠가 이총리가 ‘갈등과 이해관계를 통합 조정하는 감각’이 빠르고, 자신과는 ‘천생연분’이며, 그가 있어 “나는 참 행복하다”고 자랑한 바도 있었다는데서 더욱 그렇다. 이총리는 갈등을 조정하는게 아니라 거꾸로 격화시켰다. 그는 표독스런 표정과 말, 신경질적 응수, 독기서린 반격, 안하무인적 태도, 오만불손 등으로 눈살을 찌푸기게 했다그는 총리로 취임한지 3개월만에 기자들과의 저녁 간담회에서 비판 신문들에 대해 살기를 드러냈다. 그는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에 대해 “더 이상 까불지 말라” “조선·동아는 내 손아귀 안에서 논다”고 퍼부었다. 대한민국의 총리가 아니라 불량배 두목이 부하들에게 객기를 드러내 보이려 내뱉은 말과 같았다.그는 한나라당에 대해서도 표독스럽게 응수했다. 그는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역사는 퇴보한다”고 저주했다. 그에 대해 한나라당이 국회 질의를 통해 따지자, 그는 사과 대신 앙칼지게 맞섰다. 그는 “한나라당은 지하실에서 차떼기 하고 고속도로에서 수백억원을 받은 당이다”라고 되받아쳤던 것이다. 그는 총리로서 행정부와 야당간의 조정자 역할을 포기하고 집권당을 위한 돌격대로 나선 듯 싶다. 그는 총리가 된 뒤에도 운동권 시절의 앙칼진 반항 습성을 벗어던지지 못하고 있다. 3·1절의 부적절한 골프 해프닝 후에도 이총리의 신경질적 반응은 여전했다. 그는 3월3일 전남 지역 인사들과의 간담회에서 한 대학교 총장에게도 면박을 주었다. 그 대학 총장이 한의과 대학 신설을 건의하려고 하자, 이총리는 “그런 얘기는 하지 마시라”며 “(내가) 곡성 얘기를 하려고 온 것이지 전남대 얘기를 하러 온 것이 아니다”며 핀잔을 주었다. 사람들 앞에서 노학자의 뺨을 친거나 다름없고, 오만불손한 태도가 아닐 수 없다.이총리는 대한민국 총리의 품격을 운동권 학생 수준으로 끌어내렸다. 그는 총리의 위상을 더 떨어뜨리고 국민들의 분노와 혈압을 더 치솟게 하기 전에 총리 자리에서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 인간 이해찬이 스스로 자초한 ‘극성즉패’의 귀결이다.노대통령도 이총리에 대해 ‘갈등 조정 감각이 빠르다’느니, ‘천생연분’ 이라며 그를 싸고돌아서는 안된다. 그렇게 하면 노대통령도, ‘역시 그 총리에 그 대통령’ 이라는 원성을 뒤집어 쓰게 된다. 노대통령 자신은 이총리가 곁에 있어 ‘참 행복’할지 몰라도, 국민들은 매우 불행할 수밖에 없음을 직시해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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