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장의 전사는 이 시대의 영웅으로 추모되기에 손색이 없다. 그는 중학교 1년을 마치고 미국으로 건너가 천신만고 끝에 대학을 졸업한 뒤 신학 대학원에 입학했다. 거기서 그는 학생신분으로 이 핑계 저 핑계 대가면서 미국에 머물며 군입대를 미룰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는 모국으로 돌아와 자진 군에 입대했다. 그리고 그는 제대를 9개월 앞두고 아프가니스탄 파견을 자원했다. 가족들이 탈리반의 테러로 위험하다고 만류했지만, 그는 “이왕 군대생활하는데 영어를 잘 하는 내가 통역으로 나라를 돕고싶다”며 사지로 떠났다.
그런 그가 아프가니스탄 바그람 미군기지 정문앞에서 2월27일 자살 폭탄테러로 전사했다. 그의 영결식은 온 국민들이 애도하는 가운데 국방장관을 비롯, 정·관계 인사들이 참석해 엄숙히 거행되었다.
그러나 필자는 저 모습을 지켜보며 5년전 서해에서 북한 공산군과 교전하다 전사한 6명의 영웅들에 대한 정부의 의도적인 홀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2002년 6월29일 서해 연평 해역을 순찰중이던 우리 해군함정 참수리 357호는 북방한계선을 침입해들어온 북한 함정에 기습공격 당했다. 졸지에 6명이 전사하고 18명이 부상했다.
그때 참수리호의 장병들은 죽음 앞에서도 적에 맞서 몸이 적의 포탄에 갈가갈기 찢겨질 때까지 싸우다 전사했다. 권지형 상병은 왼손이 잘려나간채 오른손만으로 M60을 발사하며 적군에 항전했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는 조국을 지키다 전사한 서해 영웅들의 위업을 축소하기에만 급급했다. 김정권은 이 영웅들의 영결식을 국방장관도 참석지 못하게 한 채 간소하게 치렀다. 거기에 분노한 여론이 그렇게 홀대할 수 있느냐고 항의하자, 김정권은 거짓말로 해명했다. 장례위원장이 해군참모총장이므로 그의 상관인 국방장관은 참석하지 않는 것이 관례라고 둘러댔다.
하지만 1996년 9월 김영삼 정권 시절, 야전군사령부장으로 치러진 전사자 영결식에는 국무총리와 국방장관이 참석했다. 잠수함을 타고 동해로 침투한 북한 공산군과의 교전에서 전사한 영웅들에 대한 영결식이었다.
그와는 달리 김대중 정권이 서해 영웅들의 영결식을 축소했던 저의는 다른데 있다. 영결식을 통해 끓어오를 수 있는 국민들의 반북감정 폭발을 억제하기 위한데 있었다.
뿐만 아니라 노무현 정권은 김대중 정권과 마찬가지로 서해교전 영웅들의 유가족들이 시민참여의 2주기 추모제 거행을 제의했으나 그것도 거부했다. 노정권의 외면으로 유가족들의 현지 바다 위령제도 3년이 지나서야 겨우 가능했다. 어느 유가족은 “내 자식에게 총부리를 들이댄 적을 적이라고 부르지 못하는 것이 요즘 한국”이라고 분노했다.
그의 말대로 좌파정권은 적을 적이라 부르지 않고 도리어 민주투사로 영웅화하기도 했다. 빨치산 출신 둘을 민주화에 기여한 ‘민주투사’로 상을 주었다는데서 그렇다.
서해 교전 영웅들에 대한 좌파정권의 냉대를 떠올리며 영웅도 시대를 잘 타고나야 대접받는다는 것을 확인한다. 하지만 서해의 영웅들은 언젠가 좌파 정권이 물러나고 올바른 정부가 들어서게 된다면 뒤늦게나마 제대로 영웅 대접을 받을 날이 오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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