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스키어로서 지난 수십년 동안 편답해 본 유럽, 미국, 카나다, 일본, 호주, 뉴질랜드 등의 이름난 스키장들은 평창 보다 고도에서 몇배 높고 몇십배 방대한 것들이며 설질(雪質)도 크게 앞선다. 그 만큼 그들은 올림픽 유치를 위해 평창 보다 자연조건에서 크게 유리하다.
용평의 가장 높은 스키 피스트(Piste: 설차로 다져놓은 스키 코스)의 정상은 고작 해발 1450m 밖에 안된다. 그러나 유럽과 미주의 웬만한 피스트들은 3800-2200m에서 시작된다. 용평은 산이 높지 못해 동계 올림픽 경기의 꽃이라 하는 활강 피스트 조차 없다. 정선에 겨우 건설중이다. 올림픽 크로스 컨트리 경기 코스 자연조건도 변변치 않다.
그러나 제1차 동계올림픽을 개최한 프랑스 샤모니의 경우 해발 4804m의 몽블랑 정상 아래로 용평 규모의 몇배되는 스키장들이 8∼9개나 뻗어 있다. 동계올림픽을 개최한 일본 나가노 스키장만 해도 해발 2900m 높이의 큰 산을 배경으로 피스트는 2300m 고도에서 시작되며 평창 보다 훨신 다양하다. 2003년 유치경쟁에서 평창을 제치고 개최권을 따낸 캐나다 밴쿠버의 휘슬러·블랙콤도 해발 2100m에서 출발하며 200여개의 피스트들이 개설돼 광대하다. 물론 적설량도 많다.
용평은 낮고 작은 산에 30여 피스트들로 그치며 적설량도 그들에 미치지 못한다. 서울 관악산과 남산 차이 같다.
소치의 경우 필자는 아직 현장에서 스키해 본적이 없어 평창과 비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뉴스시간에 잠깐 본 소치의 피스트들은 다양하며 광대하고 용평 보다 훨신 큰 것 같다. 코카서스 산맥의 웅장함 그대로이다.
평창이 올림픽 유치에 두 번이나 거듭 실패한 주요 이유들중 하나는 비할데 없이 낮고 작은 스키장 규모와 적설량 등 자연조건에 연유한 것으로 짐작된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들의 절반은 유럽인들이다. 그들은 스키를 잘 안다. 그들이 규모와 자연조건에서 앞선 후보지에 표를 던질건 당연하다. 용평의 거듭된 패배는 ‘국력의 차이’에서가 아니라 산의 규모, 피스트의 다양성, 적설량 등 자연조건의 열악성에 연유한 것으로 추측된다.
한국 스키 선수와 스키 애호가들은 일본, 미주, 유럽 등지로 비싼 돈 들여 떠난다. 한국의 스키 조건들이 얼마나 열악한가를 반영한다.
평창이 확실한 올림픽 유치를 위해서는 일본, 미국, 유럽의 큰 산들을 평창으로 떠와야 한다. 하지만 산을 옮길 수 없다는데서 유치위는 그 쪽 수준으로 평창 스키장들의 피스트들을 획기적으로 늘렸어야 했고, 다양화 했어야 옳다.
그러나 유치위는 IOC 실사단 환영행사와 프레젠테이션(유치 설명)만 잘하고 표 관리에 나서면 다 되는 걸로 착각했다. 마치 동계올림픽 유치도 하계올림픽처럼 땅과 돈만 갖고 있으면 따낼 수 있는 걸로 오판했다.
이제 평창은 3수 도전에 앞서 피스트 증설과 다양화에 적극 나서야 한다. 스키장측도 돈되는 콘도 증축만이 아니고 돈먹는 피스트 확대에도 투자해야 한다. 그것이 한국 스키장의 취약점을 보완하는 길이고, 먼 훗날 동계올림픽 유치에 성공할 수 있는 기반 조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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