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락의 실체 탐구 ‘봉한학설’
기가 흐르는 통로에 대한 연구는 북한이 가장 선도적이었다. 북한 김봉한 박사 연구팀은 경혈 자리에서 ‘봉한소체’라 명명된 지름 0.5~1.0mm 크기의 작은 덩어리 형태의 조직을 발견했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봉한관은 피부조직에서 혈관 벽을 따라 내부 장기까지 퍼져있는데, 놀랍게도 혈관 속으로도 봉한관이 연결돼 있다고 한다. 봉한학설에 의하면 세포분열은 전체적으로 산알 순환과정의 일부분에 불과할 뿐이다.
봉한학설은 중국, 러시아, 일본 등에 소개돼 대대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를 확인한 연구팀은 없다. 실험이 어려운 이유는 김봉한 박사가 경락을 찾은 단초가 염색법인데 염색재료와 방법을 밝히지 않고 결과만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1965년 마지막 논문이 나온 후 북한 내에서 갑자기 연구가 중단됐고, 그 후 봉한학설은 재현되지 않았다.
물론 경락에 대한 해부학적 실체를 찾기 위한 노력은 여러 차례 있었다. 1980년대 프랑스의 니보 예나 독일의 하이네의 연구에 따르면 경혈은 종 모양으로 신경과 혈관 다발이 그 속에 존재하고 결합조직들이 이를 둘러싸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고 이 연구들이 경혈과 경락의 실체를 완전히 규명한 것은 아니다. 이들이 찾아낸 조직이 경락이라는 증거는 없다. 다만 해부학적으로 경혈이라 알려진 위치에서 특별한 형태의 조직을 찾았다는 점에서 그 실체일 가능성을 보여줄 뿐이다.
이 외에도 중국 등 곳곳 에서 경혈의 해부학적 실체를 찾으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아직 뚜렷한 결과를 발표한 곳은 없다.
이런 가운데 최근 한국의 과학자들이 주목받고 있다. 서울대 물리학부 한의학물리연구실에서는 경락의 해부학적 실체를 확인하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그 결과 경락의 해부학적 실체 가능성에 대한 실마리가 될 만한 연구 성과를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대는 1997년부터 물리학적 관점으로 경혈/경락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전자기적 특성을 분석하는 연구를 해오다가 1999년부터 봉한 학설 재확인 실험에 착수했다고 한다.
초창기에는 김봉한 박사가 봉한관을 추적 할 때 사용한 염색약 대신 일본 과학자들이 사용한 메틸렌블루 염색을 이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직접 봉한관을 찾으려 해부를 해보기도 했지만 성공적이지 못했다고 한다.
연구를 주도하고 있는 소광섭 교수는 2001년 독일 국제생물물리연구소에서 개최한 학회에 참가해 과학사학자인 마르코 비숍이 갖고 있던 김봉한 박사의 영어 논문을 접했다.
이후 소 교수는 비숍 박사의 도움으로 논문을 입수, 봉한학설 재확인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소 교수팀은 혈액을 포도당으로 대체하는 과정에서 약간의 혈전(혈관안에서 피가 엉겨 굳은 덩어리)이 봉한관에 엉겨 붙음으로써 가늘었던 봉한관이 굵어지며 긴 줄로 드러나는 것을 확인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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