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의 눈을 활용한 문명
마야의 파칼왕 머리는 한반도 남부 가야에서 고대 귀족여인들이 했던 두개골변형 풍습인 편두를 그대로 닮고 있다. 우연의 일치인지, 아니면 동일한 민족임을 증명하는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묘한 일치점을 발견할 수 있다. 파칼왕의 두개골은 납작하게 눌려진 편두를 하고 있는데, 우리 가야의 편두와 일치한다. 마야의 편두는 보편적인 현상이었다. 그들의 벽화나 인물 조각상은 너나없이 이마가 납작하게 눌려 있다. 전시실에 전시된 편두 두개골은 부산대 박물관에 전시된 것과 똑 같다.
우리 역사에도 편두에 대한 기록들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삼국지 동이(東夷)열전에는 ‘아이가 태어나면 곧 돌로 머리를 눌러두어 평평한 머리를 만들고자 했다. 그래서 지금의 진한 사람들은 모두 편두이다(兒生, 便以石厭其頭, 欲其遍 , 今辰韓人皆遍頭)’라고 기록되어 있다.
최치원이 지은 지증대사비문에는 ‘편두는 신라 왕(잇금)의 존귀함이었고, 말은 범음(산스크리트어)을 차용해 썼다…마땅히 군자의 고향(遍頭, 居昧錦之尊, 語襲梵音, 彈舌足多羅之字…宜君子之鄕也)’이라고 했다.
신라 말의 대석학인 최치원(崔致遠)이 지증대사비(智證大師碑)에 새겨놓은 이 글에 따르면 신라왕이 편두에다가 이상한 말을 사용했다는 것이 예사롭지 않은 대목이다. 이 비는 현재 경상북도 문경 봉암사에 아직도 고스란히 간직돼 있다.
문제는 그들이 왜 편두를 했을까하는 것이다. 편두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었다. 고대 마야인들이나 가야의 귀족층은 모두 이러한 의식을 거친 끝에 귀족사회의 일원으로 편입됐다.
마야학자인 마이클 코 교수는 마야인들은 심령능력 개발에 심혈을 기울였고, 그들 스스로도 예기치 않았던 심령 능력을 개발했다는 증거가 나타났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마야의 군주는 바이(vay)라고 하는 별개의 자아 또는 분신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 분신은 꿈을 통해 접촉하는 동물(재규어로부터 생쥐까지 무엇이든)의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또 “마야 도시들의 일정한 건물에는 마야 왕들이 환상의 탐구를 위한 특별한 침실이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원주민처럼 그들도 미래를 예지하고 현재를 이해하는데 꿈을 활용했다는 것이다.
지구의 서로 반대되는 지역에서 동일한 문화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그것은 그들과 우리가 같은 민족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신라의 옛 임금들이나 마야의 귀족층이 머리를 납작하게 만든 까닭은 무엇일까? 마야인들의 편두에 대한 비밀을 푸는 실마리는 영적인 능력에 있는 것은 아닐까?
편두는 일찍부터 영적인 능력을 키우기 위한 행위였다는 것을 추정해볼 수 있다. 편두행태는 이마 안쪽에 있는 제3의 눈을 개발하려는 의식이었을 것이다. 조상의 영혼을 모시는 제사를 집전하고 하늘의 움직임을 살피기 위해서는 제3의 눈이 발달해야 함은 당연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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