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피라미드와 제3의 눈
피라미드 문명이 이집트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지구상에 산재한 고대 문명의 흔적은 중남미의 마야, 잉카 뿐만 아니라 우리민족에서도 그 흔적이 발견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고구려의 장군총이다. 고구려는 장군총을 비롯하여 수많은 피라미드를 만들었고, 지금은 중국 땅이 되어버린 지린(吉林)성 지안시에는 그 흔적들이 남아있으며, 멀리 남미의 피라미드와 형태적으로 매우 유사한 특성을 갖고 있다.
그런데 고구려는 왜 피라미드를 만들었을까? 피라미드의 역할이 단순한 무덤이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이집트의 피라미드도 왕의 무덤으로 건축된 것이라고 보기엔 의문이 많다. 피라미드가 왕의 무덤이라고 추정할만한 것은 빈 석관 외에는 아무 것도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구려의 피라미드도 그 상부에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신전(神殿)이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고구려 고분군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장군총 정상의 돌덩이에 작은 구멍이 일정한 간격으로 패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난간을 꽂는 주공(柱孔)으로 보았다. 건물의 기초석이 일정한 간격으로 남아 있는 것도 확인함으로써 피라미드 정상에 모양은 알 수 없지만 뚜렷한 건축물이 세워져 있었음을 밝혀냈다.
이형구 교수(문화재 전문위원)는 “일제시대에 장군총의 맨 위층인 제7층의 사방 변두리에서는 난간 구멍과 함께 많은 양의 기와와 벽돌이 발견되었다.
현지를 탐방하면서 피라미드 위에 원래는 어떤 목조 건축물이 세워졌던 것으로 보았다. 이와 같은 건축물을 세우는 사당과 같은 성격의 건축물을 향당(享堂)이라 한다”고 밝힌다.
이형구 교수에 따르면 청나라 때(건륭 31년) 곡부현지(曲阜縣志)에 동이 민족의 시조라고 하는 소호금천씨(少昊金天氏)의 피라미드형 능묘 위에 향당 건축과 같은 건축물이 묘사되어 있다고 한다. 삼국사기 김유신전에도 ‘신라 사람들이 스스로 소호금천씨의 후손이라고 일컬었다’는 기록으로 볼 때 피라미드는 동이족의 고유한 흔적일 수 있다.
향당은 제사를 지내는 종교적인 시설로서 고대 동이민족 사이에서 유행하던 묘제(墓制)의 하나다. 고구려 태왕릉(광개토대왕릉)도 계단형으로 묘 정상에는 향당류의 건축물이 있었다.
이 같은 피라미드는 동이족의 활동 영역과 일치하고 있다. 이는 우연의 일치가 아닌 필연적 역사 사실이다.
우리 동이민족은 오래전부터 선도를 수련해왔고, 그 피가 지금도 흐르고 있다. 현대문명으로 오염되어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조금만 수련하면 민족 내부에 흐르는 도도한 에너지를 이끌어낼 수 있다. 이런 엄청난 에너지는 개인의 성공과 건강은 물론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활용되어질 필요가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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