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재의원
대가 약속 있었을까
이번 사건에서 가장 주목 받고 있는 사람은 열린우리당의 이광재 의원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정권 실세로 통하는 이유로 이 의원의 주변에는 이 의원이 원하든 원치 않든 늘 사람들이 몰린다. 이번 사건도 의혹의 핵심에 있는 전대월 전 KCO 대표가 동향(강원도 평창)이자 고교 선·후배 사이였던 이 의원과의 친분을 이용하면서부터 권력형 비리의혹으로 불거지기 시작했다. 이 의원은 전 전 대표에게 러시아 유전 개발 사업과 관련, 유전 전문가인 허문석(현 KCO 대표)씨를 소개해줬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 의원이 단순히 허씨를 소개해 준 선에서 끝났을까 하는 부분에 의문을 제시하고 있다.
평소 이 의원이 에너지 문제에 관심이 많았고, 지난 3월에는 러시아 하원 자원위원장과 로스네프티사 간부 등과 만나 작년 9월 한·러 정상회담에서 논의된 에너지·자원 협력후속방안을 논의하는 등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 왔기 때문. 이런 시선을 의식한 듯 이 의원도 자신을 둘러싼 각종 의혹들에 대해 적극적인 해명작업에 나서고 있다. 이 의원이 7일, 공개한 녹취록에 따르면 이번 사건은 ‘그들’끼리의 이권다툼을 벌인 것으로 이 의원과 무관함을 강조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조사가 시작되면 이 의원을 상대로 정치권의 외압이 있었는지, 사업 착수를 전후해 정·관계에 금품로비가 있었는지에 대한 조사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허문석 KCO 대표
단순 정치권 연결 브로커 역할 맡았나 미국 국적의 지질학 박사인 허씨는 석유개발 분야에 대해서는 자타가 공인하는 전문가이다. 허씨는 인도네시아의 마두라 유전개발 당시(박계월씨가 추진했던 코데코에너지)에도 개발책임을 맡아 현장을 진두지휘한 경력이 있다. 허씨가 러시아 유전 개발 사업에 나서게 된 것은 이 의원을 통해 전대월 전 대표를 소개받으면서부터다. 허씨는 지난 8월 17일 러시아 유전개발 사업 투자를 위해 철도청과 민간사업자 등이 합작해 설립한 KCO의 대표다. 허씨의 지분율은 5%로, 전 전 대표가 42%, 한국철도진흥 교통재단이 35%, 쿡에너지의 권광진 대표가 18%를 갖고 있었다.그러나 허씨가 이번 사업에 철도공사를 끌어 들이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과 이광재 의원 등 정치권과의 인맥이 넓다는 이유 등을 들어 허씨의 지분 5%는 리베이트 성격이 강하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허씨는 작년 7~9월 이광재 의원이 주도하는 여당 ‘신의정연구센터(의정연)’의 에너지정책 간담회에 세차례 자문역으로 참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허씨는 또 이광재 의원의 현 후원회장인 이기명씨 등 실세들과 교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대월 하이앤드 사장
이광재 의원을 물고 늘어지는 이유는
이번 사건이 단순 사기사건인지, 권력형 비리 사건인지를 가늠하는데 결정적인 키를 쥐고 있는 인물은 전대월씨다. 검찰의 수사도 이 부분에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전씨는 13대 국회의원을 지낸 박재규(당시 통일민주당)의원의 비서관을 지냈다. 그는 평소 동향이란 점을 앞세워 이 의원과의 친분을 과시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전씨는 KCO의 지분 42%를 가지고 있는 대주주였지만 지난해 9월 16일 자신과 권광진(18%)씨의 출자지분을 원금의 20배인 120억원에 철도교통진흥재단에 넘겼다. 이 과정에서 철도교통진흥재단이 공사 내 정책결정 최고 기관인 ‘정책심의위원회’ 심의조차 거치지 않고 전씨의 지분을 인수받은 경위와 그 과정에서 리베이트가 오갔는지에 대한 의혹이 일고 있다.
전씨는 이광재 의원의 이름을 제일 먼저 언론에 공개한 인물이기도 하다. 또 각종 언론과 여러차례에 걸친 인터뷰에서 자신의 무고함을 강조하기 위해 이 의원에게 허문석 박사를 소개받아 유전개발 사업에 참여하게 됐다는 취지의 발언을 해 왔다. 때문에 지난 7일 경기도 분당경찰서가 지난해 우리은행으로부터 25억원을 빌린 뒤 이를 갚지 않고 부도를 낸 혐의로 전씨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 받아 검거에 나선 배경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그동안 사건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던 분당경찰서가 갑자기 전씨에 대해 긴급체포를 서두르는 것은 언론과의 접촉이 잦은 전씨의 입을 막겠다는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김세호 건교부 차관
러 유전 사업 사전에 몰랐나.
유전개발에 문외한인 철도공사가 이번 사업에 뛰어들기까지 가장 큰 역할을 한 사람은 왕영용 사업본부장이다. 실무자 선에서는 러시아 석유개발 사업의 경위 및 과정, 정치권과의 연계여부 등을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한나라당 고위 관계자는 기자간담회에서 “철도공사 왕영용 사업개발본부장이 회의석상에서 ‘이광재 의원이 이 건을 밀고 있으니 힘껏 소신대로 추진하면 된다’고 말했다는 정황 증거를 갖고 있다”며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왕 본부장은 지난 8일 석유개발과 관련, 러시아측과 협상을 마치고 돌아오는 입국장에서 사업 추진과정의 의혹에 대해 “해외유전사업 부문이 사업성이 있고 경영 개선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해 참여하게 됐다. 정치권의 외압이나 결탁은 없었다”고 정치권과의 연계 의혹을 부인했다. 왕 본부장은 또 이번 사업에 대해 “철도공사와 무관한 사업이었기 때문에 (철도청장에게) 보고하지 않았다”며 세간에 일고 있는 김세호 건교부 차관의 연관설에 대해 부인하면서도 지분인수 계약을 성사하려고 대출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철도재단 이사장 위임장을 위조한 것에 대해서는 “그런 세부적인 것은 내가 한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왕영용 사업본부장
무리한 사업 왜 끌고 갔나러시아 유전개발 사업은 철도교통진흥재단 고유의 사업으로, 신광순 철도청 차장(현 철도공사 사장)의 주도하에 이뤄진 사업이었으며 계약 당시 건교부로 자리를 옮겨 사전에 그 사실을 인지하지 않았다는 것이 김 차관의 주장이다. 그러나 철도청의 청장으로 있을 당시 사업이 진행 되었고, 공무원의 생리상 최고 책임자인 청장에게 어떠한 보고도 하지 않은 채 사업을 추진했다는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는 여론이다. 철도청의 고위관계자는 “건교부 차관으로 임명되기 전에 이미 사업이 진행되고 있었는데 계약 당시 자리에 없었다고 면죄부가 가능한가”라며 “사업의 구체적인 내용까지는 몰랐다 하더라도 전반적인 내용은 보고를 받은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왕 본부장도 당초 감사원의 조사에서 철도청 고위층에 보고를 했다고 시인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감사원 관계자는 “왕 본부장이 처음에는 철도청 고위층에 보고를 안 했다고 진술했다가는 다 보고했다고 말하는 등 몇 차례 진술을 번복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조사 말미에는 ‘보고했다’는 쪽으로 진술이 모아졌다고 그는 전했다. 왕 본부장은 8일 귀국하면서 ‘보고하지 않았다’고 다시 말을 뒤집었다.
검찰 수사 이렇게 간다 사채업자를 찾아라이번 사건은 검찰로 넘어가는 수순을 밟으면서 사실상 감사원 조사는 마무리단계에 있다. 그러면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었을 때 어떤 새로운 내용이 드러날 것인가. 현재 정치권과 철도공사 주변에서는 이번 사건이 어디까지 불똥이 튈 것인지 예의주시하고 있다.그중 가장 촉각이 곤두 선 부분은 관련자의 범위가 확대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부분이다. 현재까지는 이광재 의원 등 주요 관련자 5~8인선에 머물고 있지만 사안의 성격상 또다른 제3의 인물이 등장할 개연성도 매우 높다. 새로운 권력실세나 정치권 인사가 드러날 가능성과 관련 부처나 금융기관 고위층 인사가 연루된 흔적이 드러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검찰의 속성상 감사원 조사수준에서 이 사건을 마무리짓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도 이같은 예상을 가능케 하고 있다.
실제로 이번 사건에 연루된 핵심인사들의 주변에 대한 조사가 거의 없었고, 철도공사 내부의 결재라인상 인물들에 대한 조사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감사원의 경우 계좌추적권이 없다는 점도 금품수수 등에 대한 새로운 비리를 밝혀내는 데 한계가 있어 검찰 수사결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튈 가능성을 높여주는 대목이다. 벌써부터 이번 사건을 둘러싸고 C씨, K씨 등 실력자들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대목은 눈여겨 볼 만하다.특히 주목되는 부분은 이번 사건이 일개 석유사업자와 공사간에 이루어진 단순 사건이냐는 점이다. 사건의 전개방향이 정치권으로 비화되면서 야당 등에 이번 사건과 관련된 각종 투서나 제보가 쏟아지는 점도 앞으로 이 사건의 확대를 예고하고 있다.또하나 주목할 만한 점은 이번 사건이 어떻게 드러나게 되었느냐는 부분이다. 감사원이 이번 사건에 대해 철도공사를 감사하게 된 과정도 이번 사건의 실마리를 푸는 주요한 단서 중 하나로 보인다.
감사원측은 감사를 시작하게 된 배경에 대해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으나 항간에는 두가지 소문이 나돌고 있다.첫째는 전대월씨에게 자금을 대준 사채업자가 돈을 돌려받기 위해 청와대에 투서를 하게 됐고, 청와대가 이를 감사원에 넘겨 감사가 착수되었다는 것이고, 둘째는 철도공사 내부에서 이같은 사실을 감사원에 투서해 감사가 시작되었다는 얘기다. 현재까지는 첫 번째 소문이 설득력을 얻고 있지만 청와대측은 사채업자의 투서설은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 어쨌든 이들 두가지 얘기중 진실을 밝힌다면 이번 사건의 전모를 모두 파악하는 지름길이 된다는 점만은 분명하다.또다른 의문은 감사원의 감사내용이 어떻게 초기단계에서 외부로 흘러나와 언론에 보도되었느냐는 부분이다. 감사원의 특성상 내용 자체가 외부로 나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감사원의 조사내용에 불만을 품은 인사가 특정언론사에 사실을 제보했고, 이 의원 등 권력실세들의 연관 사실도 흘린 것이라는 분석을 하고 있다.
이혜숙 softpen@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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