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국 품에 안긴’그들, 후회한다
‘공화국 품에 안긴’그들, 후회한다
  • 이현진 북한문제전문가 
  • 입력 2005-02-17 09:00
  • 승인 2005.02.17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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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 첫날인 지난 2월 8일 북한의 조선중앙텔레비전에 주한미군 병기대대의 검사과장으로 일하던 김기호(60세)씨가 등장했다. 평양 고려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나선 김씨는 자신이 자진 월북했다고 밝히며 “인생 황혼기에 모든 것을 버리고 단신으로 이북에 오게 된 것은 결코 사사로운 감정이나 일시적 충동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아내가 딸과 함께 서울에서 교사생활을 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김씨는 자신의 월북 동기가 주한미군부대에서 함께 근무하던 미국 군인들과의 갈등 때문이라고 밝혔다.김씨 사건에 우리 정보 당국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무엇보다 북한이 김씨의 입북을 받아들인 배경이 관심이다.

북한은 지난 2000년 6·15 남북 공동선언 이후 자진입북 의사를 밝히는 사람에 대해서도 입북을 허용하지 않아왔다. 중국에서 두만강을 건너 북한군 초소에까지 가 입북의사를 밝힌 한 노동자는 중국 공안당국에 넘겨져 한국으로 강제 송환됐다.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처벌까지 받았다.그러던 북한이 김기호씨에 대해서는 왜 입북을 허용하고 텔레비전 기자회견까지 내세운 것일까. 당국은 일단 김씨가 지난 1984년부터 20년간 미 8군 군속신분으로 근무해왔다는 점에서 북한이 주한미군 관련 주요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또 반미감정을 촉발하는 대남·대미 비난에도 써먹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을 수도 있다.김씨 사례와 함께 최근 들어 북한이 월북자들에 대한 선전을 부쩍 강화하는 것도 눈에 띈다.

북한은 지난 10일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 표무원 강사에게 80세 생일상을 내렸다고 보도했다. 표씨는 1949년 자신이 대대장으로 있던 부대원을 데리고 집단 월북한 충격적인 사건의 주인공이다. 과거 권위주의 시대 같았다면 그 이름을 거론하는 것조차 불온시 될 만큼 월북자들의 삶은 베일에 싸여있었다.월북자들의 삶은 북한의 대표적인 대남 선전잡지인 ‘등대’에 등장한다. 납북 어부에 대해서는 가정형편으로 배움의 한을 다 풀지 못하고 어부생활을 하다 월북한 한 청년이 북한에서 대학을 다니며 사회주의의 우월성을 만끽하고 있다는 식의 전형적인 선전이 이뤄진다.이들의 모습을 담은 컬러사진은 대개 북에서 결혼해 낳은 아이들이 피아노를 치거나 노래를 부르는 광경을 담고있고 어색한 웃음이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탈북 귀순자들은 이같은 상황이 대부분 연출된 것이라는 사실을 증언하고 있다.

그 실상을 들여다보면 북한체제에 대한 부적응에다 억류에 가까운 감시체제의 사슬서 벗어나지 못하고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란 것이다. 요란한 환대와 극진한 대우약속도 잠시뿐 별 소용가치가 없다고 판단되면 가혹한 자기비판과 세뇌교육이 강요된다는 전언이다.결국 장기적으로 선전가치가 있는 몇몇 인사를 제외하고 대부분은 고통스런 나날을 보내고 있다는 말이다. 한국에서 부도를 내고 도망치거나 범죄를 저지르고 도피성 월북을 하게된 경우는 파렴치범이나 비도덕적인 사람으로 취급돼 북한관계당국이나 이웃들로부터도 외면당한다는 것이다.‘등대’처럼 남측을 겨냥한 선전잡지 외에도 중앙·평양방송이나 노동신문 같은 관영매체에도 월북자는 체제선전의 소도구로 종종 등장한다. 북한은 월북사건이 발생하면 비교적 신속하게 방송을 통해 이 사실을 주민들에게 알린다. 내용은 간략하지만 ‘공화국에 안기려는 꿈을 이룬데 대해 감격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선전문구는 빠짐없이 포함된다.

노동신문에는 꽃다발을 든 자그마한 사진과 함께 월북소식이 소개된다. 월북동기나 신원이 파악되면 북한은 내외신 기자회견을 통해 월북사실을 선전한다. 또 평양시민 환영대회 같은 대규모 군중집회를 통해 북한주민들에게 체제우월성을 선전하는 기회로 활용한다.이외에도 과거 월북해 살고 있는 사람들을 소개하는 일도 잦다. 주로 김일성과 김정일이 월북자들을 출신성분이나 과거경력을 문제 삼지 않고 우대해주었다는 내용이다.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 맴버들은 이런 선전활동에 단골손님이다. 이 단체는 조국전선이나 조평통과 마찬가지로 북한의 대남정책을 선전하기 위한 노동당의 외곽단체다. 그러나 주로 월북자들을 회원으로 하고 있다는 특성을 갖고 있다.이 조직의 서기국장을 맡고 있는 강태무는 육군 8연대 2대대장으로 근무하던 지난 48년 5월 월북해 북한군 사단장과 여단장, 군사정치학교 소장, 최고인민회의 대의원까지 지낸 인물이다.

북한은 해방이후부터 6·25를 거치면서 월북한 주요인사들을 내세워 선전공세를 취하기도 한다. 주로 사망한 유력인사의 부고기사를 내보내면서 그가 월북인사임을 공개한다.1996년 11월 사망한 북한 사학계의 원로인 사회과학원장 김석형도 해방후 월북한 인물이다. 48년 7월 월북한 홍기문은 남북제정당사회단체 연석회의 참석후 평양에 잔류한 부친 홍명희로부터 그해 5월 연락을 받고 가족들과 함께 평양에 들어갔으며 김일성대학 교수, 사회과학원 원장, 최고인민회의 부의장 등을 지내다 92년 7월 사망했다.96년 9월 사망한 최고인민회의 부의장이자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공동의장인 여연구도 몽양 여운형의 차녀로 46년 월북했다. 화학섬유인 비날론의 개발자로 널리 알려진 화학자인 이승기는 6·25때 월북, 61년부터 국가과학원 함흥분원원장으로 일해오다 사망했다.사망한 인민배우 김선영이나 시나리오 작가 김승구를 비롯해 예술계에도 적지않은 원로인사들이 월북인사로 분류된다.

‘고향초’ ‘알뜰한 당신’ ‘선창’으로 알려진 월북작사가 조명암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북한은 이들이 김일성과 김정일의 배려로 자신의 해당분야에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으며 수령과 당에 충성했다고 추켜세우고 있다.뒤늦게 납북자들을 자진월북자로 둔갑시켜 내세우기도 한다. 지난 69년 12월 11일 북한으로 피랍됐던 대한항공(KAL) 소속 YS-11기의 부조종사 최석만씨가 평양방송에 출연함으로써 그의 생존 사실이 확인된게 대표적 사례다.월북한 미군들도 체제선전에 이용되고 있다. 지난 65년 휴전선 근무중 월북한 미군사병 찰스 젠킨스(당시 24세 )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일본인 아내를 맞았던 그는 북일간 교섭을 통해 북한을 떠나온 뒤 “동물같은 대우를 받으며 살았다”고 폭로해 북한의 월북자 선전내용이 허구였음을 드러냈다.

이외에도 탈영 등으로 월북한 몇몇 미군들은 북한영화 ‘이름없는 영웅들’에서 미군역할을 맡는 등 적절한 용도로 활용되고 있는 것으로 귀순자들은 전하고 있다.북한이 최근들어 월북 희망자를 선별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체제위기가 심화되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다. 과거처럼 극한의 상황에 처한 남한 사람을 받아들일 경우 그 부담이 만만치 않다는 판단이 선 것이다. 자본주의 생활에 익숙한 사람 하나가 북한체제에 껄끄럽게 느껴질 정도로 북한이 민감한 상황이란 얘기다. 남북관계가 좀 더 진전상황을 맞게 되면 그동안 쉬쉬하면서 잊혀졌던 월북자 문제도 서서히 베일을 벗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현진 북한문제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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