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은 대한민국 상하이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뜻깊은 날이었다. 그리고 그 하루 전인 4월 10일은 대한민국에서 의정(議政)이 시작된 지 100주년이 되는 날로 더욱 뜻깊은 날이었다.
의정이 시작된 4월 10일을 보다 더 뜻깊은 날이었다고 강조하는 이유는 우리나라가 근대국가로 발전해 나가는 과정에 있어 의정의 시작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즉, 의정이 시작되면서 대한민국의 헌정질서가 만들어졌는데, 100년 전 우리 선조들은 임시정부를 수립하기에 앞서 근대국가로 나아가는 절차적 과정으로서의 의회정치를 생략하지 않고 정부수립의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면서 근대국가로 나아갔던 것이다.
1919년 4월 10일 상하이에 모인 독립 운동가들은 현재의 입법부에 해당하는 임시의정원을 소집하고, 임시의정원의 초대 의장으로 이동녕 선생을 선출하여 대한민국 헌정의 밑그림을 그리게 된다. 하룻밤 새 임시의정원의 대표들은 헌법을 만들었으며, 정부형태를 정하고, 초대 총리로 이승만을 선출하는 등의 절차를 거쳐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을 선포하게 된다. 우리 헌정의 시작이었다.
100년 전에 완성된 우리의 헌정질서는 나라를 빼앗긴 상황에서도 입법권과 행정권, 사법권을 분리하여 상호 견제와 감시가 가능하도록 삼권분립의 원칙을 명확히 했던 것이다. 전제군주와의 결별이었고, 왕국과의 결별을 택한 것은 우리 선조들의 근대국가에 대한 기본적 생각을 반영한 결과였다.
이러한 삼권분립의 원칙은 우리가 독립을 이룬 뒤에도 헌법상의 중요 가치로 지켜져 왔다. 그러나 이승만 독재, 박정희·전두환의 군사독재 시대를 겪으면서 입법부와 사법부가 대통령의 시녀 논란을 겪는 등 헌정질서가 왜곡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 과정에서 국가재건최고회의나 국가보위입법회의 등과 같은 유사 입법부의 탄생을 지켜보기도 했다.
민주시민의 힘으로 만들어진 87년 체제 이후의 헌정질서 하에서는 절차적 민주주의가 완성되면서 민주정치가 꽃필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모든 헌정이 민주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이 그러했으며, 사법거래와 같이 사법부가 스스로 대통령 권력에 예속되는 상황도 발생했다.
또한 현대국가를 행정국가라면서 행정부의 비대화를 당연시하는 움직임도 있었으며, 이러한 움직임은 필연적으로 입법부의 기능부전을 동반하였다. 대통령중심제 정부구조를 택하고 있지만 입법부의 국회의원을 장관자리에 앉혀 대통령을 보좌하는 스태프 정도로 인식하게 하는 등 임시의정원에서부터 시작된 삼권분립의 원칙은 100년이 지나는 과정에서 많이 훼손되었다.
이에 대한민국 의정 100년, 헌정 100년을 맞이하여 삼권분립의 헌정질서에 입각한 바람직한 입법부와 행정부와 사법부의 모습을 다시 정립할 시기가 되었다.
유감스럽게도 우리 의정사는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한 부당한 권력에 의해 해체를 당한 적이 있으며, 그러한 권력은 헌정마저 중단시켰었다. 이러한 역사는 지난 100년으로 족하다. 이제 우리 의정사, 그리고 우리 헌정사의 새로운 100년을 준비해야 한다.
87년 체제가 한 세대를 지나 그 생명력을 다한 지금, 100년 전 우리 임시의정원이 구상했던 새로운 나라의 청사진을 적어도 내년에 선출되는 21대 국회에서는 완성해야 한다. 새로운 100년의 구상이 임시의정원처럼 하룻밤 새 만들어질 수는 없다. 제헌에 버금가는 헌법 개정 이제 진정으로 시작할 때이다. <이경립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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