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 고정현 기자] 이번 4.3 재보선은 총선을 1년 앞두고 영남권 민심을 드러냈다. 표면적으로는 무승부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한국당 쪽으로 무게추가 기운다. 득표율을 분석하면 불과 10개월 전 6.13 지방선거와는 판이하게 돌변한 민심을 확인할 수 있다. 텃밭에서 궤멸적인 성적표를 받았던 한국당이 불과 10개월 만에 전열 정비에 성공하고 반격 채비를 갖춘 것이다. 동시에 보수의 핵심 지지 기반인 통영·고성 사수에 성공하면서 새 지도부가 당내 도전에는 직면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대로라면 내년 총선 전 정계개편은 불가피할 것으로 관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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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선거에서는 PK지역 민심, 문재인 정권에 대한 민심, 내년 총선에서 나타날 민심 등을 충분히 읽을 수 있었다. 먼저 504표 차이로 승부가 갈린 경남 창원 성산은 작년 6·13 경남지사 선거에선 민주당 김경수 후보에게 몰표를 안긴 지역이다.
PK 민심, 한국당 자살골에도
상전벽해(桑田碧海)
김 후보가 61.3% 득표율을 기록했고 한국당 김태호 후보는 33.84%에 그쳤다. 창원시장 선거의 경우 격차가 더 컸다. 민주당 허성무 후보가 54.81%로 한국당 조진래 후보(23.9%)를 2배 이상 앞섰다. 2016년 총선에선 진보 단일 후보로 나선 정의당 노회찬 후보와 새누리당 강기윤 후보의 득표율이 각각 51.5%와 40.21%였다. 노 후보가 1만3561표 차이로 여유 있게 이겼다.
하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강기윤 후보가 범여권 단일 후보인 정의당 여영국 후보에 맞서 0.54%p 차 박빙 승부를 벌인 것이다. 여권은 영남에서 진보 성향 유권자가 가장 많은 창원 성산에서 단일화를 하고도 신승한 것에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만약 민주당이 창원·성산 지역에서 정의당과 단일화하지 않고 독자출마했다면 민주당은 물론 정의당까지 패배했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통영·고성 선거 결과는 여권에 더 큰 충격파를 안겼다. 물론 통영·고성은 경남에서도 보수 성향이 강한 지역이다. 그럼에도 작년 지방선거에선 민주당 후보가 통영시장과 고성군수를 싹쓸이했다. 통영에선 강석주 후보가 1.3%p, 고성에선 백두현 후보가 12.6%p 차이로 이겼다.
하지만 이번엔 통영·고성 민심이 과거로 ‘원위치’됐다. 한국당 정점식 후보는 인구가 적은 고성 출신이면서도 23.5%p 차로 압승했다. 한국당이 ‘축구 경기장 응원 논란’, ‘노회찬 발언 논란’ 등 선거 막판 자살골까지 넣은 상황이었기에 충격은 더욱 컸다.
민주당 한 중진 의원은 “지난 총선 승리의 핵심은 PK 약진이었는데 당시 우리를 지지했던 PK 민심이 신기루처럼 사라진 셈”이라고 했다. 청와대 역시 ‘인사 참사’와 김의겸 전 대변인의 ‘부동산 투기 논란’ 등이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제기되는 만큼 향후 국정 운영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다.
반면 황교안 대표는 이번 재보선으로 정치신인이라는 꼬리표를 뗌과 동시에 대권 주자로서 입지를 다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황 대표 리더십의 첫 시험대나 마찬가지였던 이번 선거에서 ‘황교안 키즈’로 불린 정점식 후보를 통영·고성에서 당선시킴으로써 정치적 입지를 탄탄히 할 모멘텀을 마련했다는 분석이다.
정치신인이었던 정 후보가 한국당 공천을 거머쥔 데 이어 여의도 입성까지 성공한 데에는 선거운동에 ‘올인’한 황 대표의 후광 효과가 컸다는 데 대해 당내에선 이론이 없다.
아울러 창원·성산에만 후보를 낸 바른미래당이 3.57% 득표율에 그쳐 보수 정당 사이의 경쟁구도는 확연히 한국당으로 무게중심이 쏠렸음을 보여줬다. 총선이 가까워질수록 바른미래당은 영남권을 중심으로 원심력이 커질 것으로 관측된다. 보수 정계개편이 발생하면 한국당과 민주당의 일대일 구도로 총선이 치러질 수도 있다는 관측이다.
당장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는 선거 패배의 책임론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손학규 대표가 창원·성산에 올인하며 이재환 후보를 적극 지원했으나, 개표 결과는 완패였다. 이재환 바른미래당 후보는 심지어 3,540표를 얻은 손석형 민중당 후보에게도 밀리는 3,334표로 4위에 그쳤다.
손학규 대표는 이번 창원·성산 선거 완패가 치명타가 될 수 있다. 원외 대표의 태생적인 한계와 선거 완패로 당내 입지가 좁아질 것으로 보인다.
‘친황계 1호’ 정점식 입성...
당내 계파 구도 ‘지각변동’
한편 내년 4월 총선에서의 ‘황교안식 공천’에도 귀추가 주목된다. 당장 ‘보수의 심장’ TK 의원들이 ‘공천 물갈이’ 대상에 오를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관측이다.
이번 보궐선거에서 한국당은 창원·성산에는 당선 가능성을 최대한 반영했고 통영·고성에는 공천개혁을 단행했다. 진보 성향이 강한 창원·성산의 경우 터줏대감인 강기윤 전 의원을 일찌감치 공천해 득표활동에 집중하도록 배려했다.
통영·고성은 비록 통영 인구의 절반도 안 되는 고성 출신이란 약점에도 불구하고 대검 공안부장 출신인 정점식 후보가 경선 관문을 통과하자 거당적 차원에서 지원했다.
정 후보는 애초 오랫동안 지역에서 활동해 온 당내 경쟁 후보에 비해 열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했지만 승리했다. 이에 따라 황 대표가 TK에서도 기반이 탄탄한 지역을 중심으로 새 인물을 집중적으로 투입해 변화 효과를 극대화해나갈 것으로 예측된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동구을과 북구을, 수성갑 등 한국당 약세지역에는 인지도 높은 현역 의원을 공천하되 그 외의 강세지역에는 대대적인 ‘물갈이 공천’이 이뤄질 공산이 크다”라며 “다만 TK 내에서도 ‘친황’으로 떠오른 곽상도·정종섭·추경호·김재원·최교일 의원은 이번 공천에서 살아남지 않겠냐는 의견도 나온다”고 말했다.
황 대표가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전국 253개 선거구 당협위원장 일괄 사퇴 후 당무감사 추진을 검토하고 있는 것도 ‘공천 물갈이’를 위한 포석으로 비친다.
다만 김병준 비상대책위원회가 공개 오디션까지 진행하며 당협위원장을 교체한 지 두 달밖에 안 된 시점이라 논란이 예상된다. 현 지도부가 홍준표 전 대표와 김병준 비상대책위 체제를 거치며 이뤄진 당협위원장 교체 결과물을 인정하지 않고, 황 대표 독주 체제를 만들기 위해 급작스레 당협위원장 교체 카드를 꺼내려는 것이라는 불만이다.
고정현 기자 jh0704@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