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며칠 전 앞날이 창창한 여류 시나리오 작가가 그야말로 끼니조차 해결하지 못할 정도의 경제적 곤궁함 속을 헤매다가 홀로 차디찬 방 안에서 절명했다는 소식이 있었다. 이 소식은 인터넷을 떠들썩하게 하고 트위터에서도 자주 거론되고 있다. 고인의 절명을 안타까워하는 심정과 함께 그 해결방안을 촉구하는 사뭇 비장한 반응도 눈에 띈다.
정치권에서는 보편이니 선별이니 하는 수식어를 앞세운 이른바 복지논쟁이 한창이다. 인구와 국민소득 수준에서 세계 7대 강국에 속하고 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동시에 성공시킨 대한민국의 역량에 비추어 볼 때 복지논쟁은 사실 다소 늦은 감이 있다고 할 것이다.
1인당 GDP 2만 불 이상, 1조 달러의 무역규모, 세계 12위의 경제규모, 선진국클럽이라고 일컬어지는 OECD의 회원국이자 G20의 당당한 일원이라는 휘황찬란한 타이틀 뒤편에는 엄청나게 낮은 출산율, 지나치게 높은 가계 부채비율, 지극히 낮은 어린이와 청소년 삶 만족도, 교통사고 사망률 1위, 10만 명당 자살률 1위 등의 어두운 모습이 도사리고 있음을 발견한다.
어느 길로 갈 것인가? 어떤 삶을 살 것인가?
개인이든 조직이든 갈등의 국면 혹은 중요한 결단의 순간을 앞에 했을 때 항상 초심을 떠올리며 근본에 충실한 결정을 내려야만 장기적으로 발전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그런 면에서 정치권의 복지논쟁 또한 어떤 나라에서 살고 싶은가 혹은 어떤 모습의 대한민국을 후손에게 물려 줄 것인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을 가슴에 담고 논의한다면 보다 훌륭한 계획을 수립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충실한 기본과 초심을 잃지 않는 마음가짐 역시 주식투자에 있어서도 대단히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워렌버핏의 가치투자라는 것도 사실 따지고 보면 기본에 충실한 투자패턴에 다름 아니다. 유행이나 풍문에 휩쓸리지 않고 기업 혹은 종목의 진정한 가치를 찾는 투자야말로 최종적으로 시장에서 승리하는 투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장하준 박사는 그의 최근 저서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에서 인터넷보다 세탁기가 세상을 더 많이 바꿨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는 당대의 기술적 진보와 성취를 과거의 그것보다 더 출중한 것으로 여기게 되는 우리들의 착시현상을 지적한 것인데, 이는 주식시장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투자자라면 누구나 10여 년 전의 벤처광풍을 기억할 것이다. 벤처 깃발만 들어 올리면 투자자들이 줄을 서고 이후의 세상은 모두 손끝에서 마우스 클릭만으로 돌아갈 것만 같았다. 막강한 정보력과 자금력을 보유한 삼성그룹조차도 e-삼성이라는 회사를 만들어 뛰어들 정도였으니 당시 그 광풍의 기세가 얼마나 등등했을지는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으리라.
하지만 광풍이 지나가고 난 뒤 문득 정신 차리고 돌아본 현실은 처참했다. 테헤란밸리에 자리를 잡고 사뭇 거들먹거리며 코스닥에 상장된 벤처기업 중 현재까지 원래의 비즈니스 모델을 유지하며 굳건하게 살아남은 기업은 몇 개나 될까.
혹은 중견기업을 넘어 대기업으로 성장한 기업은 얼마나 될까? 아쉽게도 그들 중 일부를 제외한 대다수는 이름도 없이 스러졌거나 굴뚝산업이라며 스스로 조롱하던 그 전통 제조업의 IT 하청업체가 되어 근근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형편이다. 삼성그룹 역시 e-삼성을 조용히 기존의 사업부문에 흡수시키는 것으로 스스로의 실패를 정리하였고 대박의 꿈을 좇아 광풍에 몸을 맡겼던 수많은 투자자들도 광풍이 지나간 뒤의 상처로 지독한 겨울을 겪어내야만 했다. 이 모두는 과도한 욕심으로 초심을 망각하고 근본을 폄훼했기에 벌어진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한쪽으로 과도하게 쏠리지 않는 균형을 이룬 상태를 일컬어 선현들은 중용이라고 했거니와 투자를 하는 행위도, 세상을 살아가는 이치도 이와 흡사한 듯하다.
HMC투자증권 성북지점 신동호 지점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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