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서울 | 이도영 기자] 가수 승리가 쏘아올린 작은 공 이른바 ‘버닝썬 사태’가 대한민국을 뒤집어 놓았다. 개인의 일탈로만 여겨졌던 사건 초기와 달리 마약, 성접대에 이어 탈세까지 각종 범죄가 쉴 틈 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마치 예견이라도 했듯이 이 사태가 일어나기 3년 전 6개월간 강남 유흥주점과 클럽 일대를 잠입 취재한 경험을 바탕으로 소설 ‘메이드 인 강남’을 쓴 작가가 있다. 일요서울이 주원규 작가를 만나 직접 경험한 이야기를 들었다.
“콜카 휴대폰, 하루마다 사용한 통화기록·위치기록 지워져 있어”
소설 ‘메이드 인 강남’은 화려한 강남에서 비열하고 무정한 존재로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작품에서는 대형 호텔에서 술과 약에 취한 남녀들이 뒤섞여 사망한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법망을 피할 수 있게 판을 새로 만드는 이른바 ‘설계자’라 불리는 변호사, 사람들이 다수 사망한 정보를 아무런 감정 없이 전달해주는 정보원, 돈 냄새를 맡고 사건에 끼어든 형사 등 오로지 돈과 권력에 의해 형성된 유착관계를 거리낌 없이 보여준다. 이 소설은 작가가 6개월 간 강남 클럽가의 주류배달원, 수리기사, 콜카(클럽에서 호텔 등 이른바 2차 장소로 데려다주는 차량) 기사 등으로 일하며 직접 경험한 일을 소설로 풀어냈다. 하지만 작가는 이런 충격적인 내용을 담은 소설 ‘메이드 인 강남’이 현실을 따라가지 못한다고 말한다. 일요서울은 지난 28일 서울 중구의 한 사무실에서 그를 만나 6개월간의 잠입취재에서 경험한 이야기를 들었다.
-어떤 계기로 강남에 가게 됐나.
▲예전부터 가출 청소년들과 소년원에서 아이들 글쓰기나 검정고시 (시험공부를) 지원하는 일을 했다. 그 친구들이 알게 모르게 연락이 두절됐다. 한 명과 연락이 닿았는데 “클럽에서 일을 해보니 돈을 많이 번다. 연락하지 마라”라고 했다.
상식적으로 (클럽은) 남녀가 만나서 유흥을 즐기는 곳이지 무슨 돈을 번다는 건지 (의심스러워) 그쪽 문화의 실체가 무엇인지, 왜 아이들이 유혹을 당하는지 (궁금해 잠입) 취재했다. 강한 동기는 없었는데 (원래부터) 알고 있던 가출 청소년들이 그곳에서 나올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의지가 생겼다.
-6개월간 잠입취재를 했다. 어떤 클럽을 갔고 무엇을 했나.
▲취재 기간은 2016년 3월부터 9월까지 6개월 정도다. 사실 3년 전에는 버닝썬이 출범하기 전이었고 새로운 강남 클럽들이 많이 만들어지던 시기였다. 그 당시 유흥업소나 유흥클럽으로 등록돼 있던 곳이 21곳이었고, 무허가 클럽과 연계돼 있는 2차 클럽이 35곳이었다. 북부를 제외한 강남을 전반적으로 돌아다녔다.
가장 기본적으로 했던 일이 주류배달원이라고 흔히 술 배달 알바다. 전기기사 자격증이 있어 낮시간에는 클럽의 설비들을 보수하고 고쳐주는 일을 했다. 밤에는 콜카(클럽에서 나와 2차 장소로 옮겨주는 차량) 일을 했다.
콜카는 클럽 안에 네트워킹이 돼 있었다. 클럽끼리 서로 연계돼 있는 것처럼 A클럽 손님을 C클럽 손님과 태워 옮겨라 등의 명령을 받았다. 콜카 일을 시작하면 내 핸드폰은 압수당하고 클럽에서 사용하는 핸드폰으로 위치를 전달 받아 손님을 이동시켰다. (클럽 핸드폰은) 매일 그날의 통화기록, 위치기록이 다 지워졌다. 주로 텔레그램을 사용했다.
-주로 명령을 내린 사람은.
▲MD들을 관리하는 실장과 이사가 클럽 관계자들인데 실제로 명령을 내리는 건 실장 중 실행 실장이다
일반MD들은 나이트클럽처럼 남성과 여성을 이른바 ‘부킹(즉석만남)’ 해주고 수수료를 받는다. 마음이 맞으면 흔히 표현하는 원나잇을 하려 MD에게 장소를 알아봐 달라고 부탁하는 경우가 있다.
흔적이 남지 않는 호텔이라는 것을 많이 들었다. 그 호텔들은 일명 ‘덤핑’이라고 투숙기록을 남지 않게 한다. 또한 CCTV가 먹통인 장소 같은 정보망들을 일반MD들이 알고 있어서 그런 장소들로 옮겨 주기도 했다. 내가 문제 삼았던 것은 (알고 있던) 가출청소년들을 클럽에서 봤었는데 그들이 조직적으로 성매매를 했다. 그런 경우에는 지정 장소들이 있다. 호텔과 모텔이 클럽과 정보공유가 돼 있다.
-여성들이 외부에서 클럽으로 투입된 것인가.
▲속칭 포주MD가 있다. 소위 인력 조달이란 이유로 단란주점이나 가라오케 등 (이쪽) 생리를 잘 알고 있는 이들이 클럽 안으로 들어와 (성매매를) 주선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성매매 허브 역할이다. 가출 청소년들이 그곳에 흡수된 경우도 있었다.
(MD들이) 일반 클럽 고객 남성들에게 윤락여성이라는 것을 감춘 채 성매매를 알선한 경우도 있었다. 이것을 약점 잡거나 협박해 웃돈을 챙기는 경우를 봤다. (여성들을) 어느 정도 조직적으로 조달받는다는 것을 남성들이 알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클럽 안의 목적성이 성매수를 목적으로 만나게 되는 경우가 더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강남클럽은 소설과 뉴스에 나온 모습 그대로였나.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은 소설의 상상력을 훨씬 넘어선다. 소설에서 이야기를 사용했던 것은 살인사건이 현실과 달랐던 점이고 나머지 부분들은 현실이 더 강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속칭 ‘물뽕(GHB)’ 같은 경우에 일상이라고 표현한다면 과할 수 있겠지만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었다. 특히 화장실 혹은 클럽이 개조한 비상구에서 ‘물뽕’ 같은 것을 흡입하거나 조금 더 나아가 대마초나 마리화나 등을 하는 것은 심심치 않게 목격했다. 심한 경우 필로폰이나 케타민 등도 있었다.
룸살롱이나 단란주점과는 다르게 클럽 안에서 마약(유통)의 흐름이 보다 더 자연스러웠다. 룸살롱이나 단란주점은 단속이 심한 편이기 때문에 마약 등에서 자유롭지 못한데 클럽 안에는 이런 것들이 자연스러웠다. 여기에 성매수와 특별한 이벤트라고 그들이 부르는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기형적 성행위를 강요한다든지 변태적 성행위를 강요하는 것들이 문제의 온상이다.
-기억에 남는 인물과 에피소드가 있나.
성폭행 미수가 기억에 남는다. 클럽에서 나도 많이 봤던 단골고객으로 알고 있다. 그들 안에서는 VIP 혹은 VVIP라는 표현이 있었는데 당일에 돈을 많이 쓰지 않으면 VIP고 특별한 이벤트를 한다면 VVIP라고 불렀다.
VIP고객이 일반 여성 고객에게 접근해 ‘물뽕’을 주입시켰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여성이 정신을 잃으려 할 때 성폭행을 시도했는데 여성이 정신을 차렸다. 저항하니까 강하게 폭행했던 기억이 있다.
당시 경찰의 신고가 있었는데 경찰이 클럽 앞에서 클럽 관계자의 말을 듣고 돌아갔다. 처음에는 가드가 막아 “이곳은 사유 장소니까 들어올 수 없습니다”라고 했다. 그 다음에는 실장급이 왔고 마지막으로 이사급이 왔다. 그 과정에서 경찰이 클럽 안으로 들어오는 것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후일에 클럽 관계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경찰이 조서나 신고를 처리하는 방식이 클럽 안은 주취자들이 몰려 있고 매우 혼란스러운 곳이기 때문에 크고 작은 헤프닝들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해 피해자 진술도 의심하는 것이다. 술에 취한 사람이 정신이 없어 자기가 혼자 움직이다가 부딪힌걸 수도 있지 않느냐는 방식으로 신고를 처리한 것들이, 일부 경찰이 유착 의혹에 노출됐을 것이라는 합리적 의심이 들었다.
-클럽의 MD나 포주MD들의 수입을 알고 있나.
▲3년 전에 일반MD가 최고로 수입을 많이 낼 때 한 달에 1000만 원에서 2000만 원 정도로 알고 있다. 그런데 포주MD라고 하는 성매매에다가 특별한 이벤트, 마약까지 하는 3종 세트를 집어넣는 사람들은 수수료 수입이 일반MD들과 비교해 5~6배 차이가 발생한다는 것을 일반MD들이 소문으로 계속 듣게 되고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그런 검은 유혹에 계속 노출된다는 생각을 했다.
-MD는 클럽의 직원이었고 포주MD는 다수였나.
▲계약직 혹은 클럽 안에서 자기 활동영역을 가지고 활동하는 개인 사업자 느낌을 받았다.
포주MD는 다수였다. (클럽) 안에서 밥그릇 싸움으로 인해 실제로 살인미수 같은 사건도 있었다. 강남 남부 쪽에 위치한 가라오케에서 사건이 일어났는데 단순 가라오케의 직원들 사이에서의 다툼으로 마무리됐지만 내가 기억하는 바로는 근처 클럽 안에서의 성매매 알선 지분을 가지고 싸운 것이다.
룸살롱과 클럽의 술값 차이가 컸다. 룸살롱 주대는 200만 원, 500만 원 이런 식이었는데 클럽에서는 기본 1000만 원부터 옵션에 따른 경매가 붙듯이 (올라갔다.)
옵션에 대해 부정할 수 없다. 콜카 일을 했을 때 스페셜한 술값을 지급한 고객이 2차장소로 옮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패턴이었다. 아예 술값에 (성매수) 비용이 포함돼 있었다.
포주MD들이 가라오케나 룸살롱에서 (클럽으로) 넘어와 인프라가 있었다. 인프라가 가속화된 것이 가출 청소년들의 유입이었다. 미성년 친구들이 신고를 할 수도 없었다. 왜냐하면 이 친구들은 주민등록증을 위조했으므로 공문서 위조였다.
가출 청소년들이 부모의 도움을 받지 못하거나 오히려 친부로부터 성폭행 때문에 나온 친구들이 있었다. 그래서 신고해도 보호해 주지 못할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어 가출 청소년들을 마음껏 유린했던 것 같다. 제일 악랄하다고 생각한 것은 가출 청소년들을 포주MD가 ‘청결한 애들’이라고 표현한다. ‘청결’이란 뜻 안에는 ‘뒤처리가 깔끔하다’는 표현이 있기 때문에 악랄함을 느꼈다.
-6개월 동안의 강남을 색으로 표현하자면.
▲가장 밝은 검은색 같은 느낌을 받았다. (저녁) 8시부터 새벽 6시까지 너무나 밝았다. 그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해선 지금도 트라우마가 있을 정도다. 건전한 유흥문화일 수도 있으니 클럽이라는 문화가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돈과 권력 안에서 자신들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배금주의(돈을 삶의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겨 모든 것을 돈과 연관시켜 생각하는 것)가 낳은 참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에 나온 민규라는 ‘설계자’, 윤이라는 ‘정보팔이’ 등은 실존인물인가.
▲실제로 존재했고 만나도 봤다. 성매수 남성들이 이벤트를 하는 과정에 크고 작은 잡음이 일어날 수 있다. (예를 들어) 일반 고객을 성폭행 하려다가 신고가 들어간다든지, 마약하는 현장이 단속되는 일들이 발생할 때 경찰의 초동조사 차원에서 자료·증거·진술을 법의 사각지대를 이용해 조작함으로써 불기소처분이나 혹은 기소유예정도를 받아내 줄 수 있게 처리해 주는 변호사들을 봤다.
명함을 받았지만 명함(에 나온 로펌을) 검색해보면 없는 로펌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까 대포 명함이었다. 처음에는 변호사가 아니라 브로커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실제 일하는 곳(로펌)에서 목격한 경험도 있었고 심지어는 방송에 패널로 나온 변호사를 목격한 적도 있었다.
단란주점, 안마방, 룸살롱과 가출 청소년들의 연락 조달책이라고 할 수 있는 보도방까지 그들의 생태계가 견고하게 있었다. 견고한 생태계 안에서 정보원들의 역할은 강남에서 활약이 두드러졌다고 알고 있다.
-직접 잠입 취재하고 소설도 썼는데 앞으로 ‘강남’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취재도 하고 소설도 썼지만 아직 그곳에 남아 있는 가출 청소년들이 많기 때문에 돌려세우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이 있다. 모든 기성세대가 가져야 될 고민이 강남에 묻어 있다고 생각한다. 강남이라는 장소는 사회를 선도하는 역할을 하지만 우리들에게 가장 비참한 비극을 안겨줄 수 있는 위험성 있는 장소라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 모두 사회에서 제도적·정서적으로 고민 해봐야 될 숙제 같은 곳이라고 생각한다.
이도영 기자 ldy5047@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