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 국회 통과 앞둔 제약사는 ‘죽을 맛’

미 의회에서 FTA 비준안이 통과 돼 이제 남은 것은 우리나라 국회에서 FTA 비준안을 처리하는 일만 남았다. 여당과 정부에서는 FTA를 통해 국익 창출을 할 수 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지만 농업, 제약산업 등은 결코 웃을 수만은 없어 이에 해당하는 기업들은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을 준비하고 있다. 특히 제약산업의 경우 대부분의 특허가 글로벌제약사들이 가지고 있어, 제네릭(복제의약품) 매출 비중이 높은 국내 제약사들의 경우 매출 감소는 물론 심지어는 글로벌제약사에 예속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정부는 해외에 진출하는 국내 제약사들에게 최대 1000억 원까지 지원해준다고 하지만 이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기업들은 상위권 업체들만이 가능하기 때문에 중소제약사들은 존폐를 논하며 국회에서 FTA 비준안이 처리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정부는 내년부터 약가인하를 추진하며 동일 성분 약의 가격을 동일하게 적용한다. 얼듯 들으면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 부분에서부터 국내제약사들의 고민은 커진다.
동일 성분 약의 동일가격이란 오리지널 의약품과 제네릭의 가격을 동일하게 적용한다는 뜻.
일반적으로 오리지널과 복제품이 있다면 당연히 오리지널을 선택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듯 내년부터는 글로벌제약사들의 오리지널 의약품을 처방하는 의사와 병원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그동안 일부 제약사들은 자사 제품의 처방을 위해 의사 또는 병원에 리베이트를 제공해 의약품을 판매했다.
하지만 정부가 대대적이며 지속적인 리베이트 근절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며 이런 관행마저도 시장에서 많이 사라졌다. 리베이트를 준 제약사와 받은 의사 또는 병원 모두를 처벌하는 ‘쌍벌제’가 도입되면서 자연스럽게 리베이트가 줄어들었다.
어느 의사와 병원이 처벌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리베이트를 받겠는가. 결국 제네릭 위주로 매출을 일으켰던 국내제약사들은 이제 약가인하로 인한 매출 감소와 함께 오리지널 선택에 따른 여파로 또 한 번 매출 감소를 걱정해야 할 판이다.
매출이 줄어들 것이 분명한 국내제약사의 경우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다.
국내제약사, 타사 제품 판매로 살길 도모
첫 번째는 신약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하는 것이다.
신약개발을 할 경우 높은 가격을 받고 판매가 가능하며 지속적인 높은 매출이 예상된다.
하지만 신약개발은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몇 년에서 몇 십 년이 걸릴 수 있다. 게다가 천문학적인 개발비용이 소요되고 성공한다는 보장도 확실하지 않기 때문에 자금력이 든든한 몇몇 제약사를 제외하고는 지속적인 비용을 투자하기는 어렵다.
‘숨만 쉬고 개발만 하면 신약개발 할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그대로 적용된다.
신약개발 이외에 또 다른 생존법은 바로 영업다각화를 통해 매출을 확보하는 방법이다. 쉽게 말해 다른 제약사의 의약품에 대한 독점 판매권을 확보하면 된다.
특히 글로벌제약사의 오리지널 제품은 당장 지금부터 매출 상승이 기대된다. 따라서 이런 제품의 독점 판매권을 확보한다면 일단은 안정적인 수익을 확보할 수 있다.
국내제약사들은 이를 통해 먹거리를 확보하고 여기서 발생한 이익을 R&D에 투자하는 방법을 택할 수 있다.
현재도 동아제약은 GSK의 폴리덴트 정을 비롯한 4개 의약품에 대한 약국 판매를 책임지고 있으며, 녹십자는 LG생명과학의 성장호르몬제제인 유트로핀, 한국아스트라제네카의 아타칸 등을 판매하고 있다.
자사 제품이 아닌 타사 제품을 판매한다는 것에 자존심이 상할 수 있지만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볼 수 있다.
글로벌제약사, 국내제약사 옥죄기 나서
한EU FTA가 이미 통과됐고 한미 FTA 통과가 가시권에 접어들면서 글로벌제약사들의 국내제약사들의 옥죄기가 본격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항암치료 뒤 구토가 발생하는 것을 막는 ‘조프란’의 특허권을 갖고 있는 글로벌제약사인 GSK는 이에 대한 제네릭을 생산하고 있는 동아제약에 제품의 시장철수를 조건으로 신약에 대한 국내 독점 판매권을 주겠다는 제의를 했다.
동아제약이 시장에서 판매하고 있는 ‘온다론’은 조프란의 제네릭으로 조프란 가격의 90%에 판매되고 있다.
GSK는 동아제약에 특허권을 문제 삼아 분쟁을 일으켰고 담합을 통해 동아제약에 경제적 이익을 제공하며 온다론의 시장철수를 요구한 것이다.
이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는 시정명령과 함께 GSK에 30억4900만 원, 동아제약에 21억2400만 원 등 총 51억7300만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하지만 공정위의 이런 단속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이런 일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시장에서 오리지널에 비해 상대적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일부 제네릭은 향후 오리지널과 가격이 동일하게 적용되어도 의사와 병원의 처방이 계속될 수 있다. 이를 우려한 글로벌기업들이 시장 철수에 대한 조건으로 경제적 이익을 제공할 경우 중소제약사들로서는 거부하기 어려운 유혹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종국에 가서 국내제약사들이 글로벌제약사에 예속돼 글로벌기업의 제품만을 판매하는 판매상으로 전락할 수 있으며, 글로벌제약사들이 이를 통해 중소제약사를 휘두를 수 있게 된다는 위험요소를 안고 있다.
결국 우리나라의 제약산업 전체가 흔들릴 위기로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국내제약사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도 있어
한미 FTA가 발효되면 제약산업으로 볼 때 수입은 10년간 연평균 1923만 달러 증가하는 반면 수출은 연평균 332만 달러에 그쳐 연간 1591억 달러의 불균형이 발생할 것으로 정부는 전망하고 있다.
결국 일부 산업은 한미 FTA를 통해 막대한 이익을 창출해 글로벌 기업으로 확고한 위치를 점유할 수 있지만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책임지는 제약산업의 경우 막대한 손해를 떠안게 돼 극히 일부의 대형제약사만 살아남아 악전고투를 벌여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정부는 해외에 진출하는 국내제약사들에 각종 혜택을 제공하고 R&D 비용도 지원해주는 방안을 마련했다. 정부가 제약산업의 위기를 느끼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런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곳은 한정이 돼 있어 이 또한 중소제약사가 혜택을 누리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존재한다.
그렇다고 해서 전적으로 정부 탓으로만 돌리기에는 국내제약사들의 목소리가 국민들에게 전적으로 타당하게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국내제약사들 또한 알아야만 한다.
많은 국민들은 가끔씩 터지는 리베이트 사건을 보며 기득권층인 의사와 대형병원들이 또 다른 특혜를 받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논문 몇 줄 번역하고 몇 백만 원을 받고 해외에서 열리는 세미나나 학술발표회에 참가하는 비용을 제약사들이 제공했다는 보도를 볼 때마다 국민들은 허탈한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다.
제약사들은 리베이트 비용은 약가를 높이는 요인이 아니며 제약사의 이익에서 지출되는 것이라고 항변하고 있지만 이 부분은 다른 산업과 비교해 봤을 때 그들의 말이 신뢰성을 갖기에는 부족함이 있다.
국내제약사들도 리베이트라는 관행을 깨고 그 부분을 오히려 신약개발에 투입해 좀 더 빠른 시간 안에 성과를 내는 것이 자신들뿐만 아니라 국민들에게도 이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내년부터 시행될 약가인하로 인해 제약업계는 3조 원의 피해를 입게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으며 한미 FTA에 따라 매출은 갈수록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한 정부의 합리적인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최악의 경우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글로벌제약사에 맡겨야만 하는 사태마저 초래할 수 있어 정부는 조속한 대책과 함께 국내 제약산업의 육성을 위한 다각적인 지원책을 마련해야만 한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전수영 기자] jun6182@ilyoseoul.co.kr
전수영 기자 jun6182@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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