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회장 끌고, 이재용 사장 밀다”
“이건희 회장 끌고, 이재용 사장 밀다”
  • 이범희 기자
  • 입력 2011-10-24 16:01
  • 승인 2011.10.24 16:01
  • 호수 912
  • 22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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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탐구] ‘하나의 삼성’ 위기탈출 리더십
‘또 하나의 가족’ 삼성이 ‘하나의 삼성’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그동안 삼성은 아버지 이건희 회장의 진두지휘 아래 움직였다. 아들 이재용 사장은 한 발 물러서서 참관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두 부자의 행보가 달라졌다. 오히려 ‘하나의 삼성’에선 아버지와 아들이 따로 없고, 경영 일선과 이선의 다른 행보도 보이지 않는다. 때문에 세계경영에 있어 무한경쟁시대의 한복판에서 오직 ‘하나의 삼성’만이 있다는 관측이다. 즉 삼성 내 후계구도 문제보다 이 회장-이 사장의 ‘전방위적 리더십’이 주목받고 있는 셈이다. 이에 따라 [일요서울]도 이 회장-이 사장 부자의 전방위적 행보에 대해 알아본다.

아버지 이 회장 - 아들 이 사장의 삼성 내 위상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글로벌 현장에서도 각자의 소임을 다하며 ‘하나의 삼성’이 되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과거 이 회장을 따라만 다니던 이 사장의 모습도 최근 들어서는 보기가 힘들다. 이 회장도 이 사장을 믿고 맡겨주는 모습이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지면서 오히려 훈훈함까지 엿보인다. 최근 들어서는 이 회장과 이 사장이 다른 사업 영역에서 삼성의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등 혼연일체(渾然一體)된 모습도 보인다.

이에 따라 한 인사는 “최근 두 부자의 행보를 보면 70~80년대 아버지가 리어카를 앞에서 끌고, 아들이 뒤에서 밀어주는 듯 한 모습이 회상된다”고 말했다. 이는 두 부자가 각자의 영역에서 최선의 결과를 도출해내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이 회장은 지난 4월 21일부터 서초사옥에 출근하면서 삼성 오너로서의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다. 1987년 회장 취임 이후 거의 회사에 나오지 않고 자택과 승지원에서 경영활동을 하던 모습과는 달리 최근 6개월 동안 매주 두 차례씩 출근하면서 경영현안을 직접 챙기고 있다. 그 결과 6개월 전 출근 당시보다 삼성 내·외부적으로 좋은 변화들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저조했던 1분기 실적이 되살아나고 있고, 애플과의 글로벌 특허전쟁에서 수세에서 벗어나 공세에 나서기 시작했다. 신제품 갤럭시S2는 출시 6개월이 안된 시점에 1000만 대가 넘게 팔렸다. 3분기 글로벌 스마트폰 판매량도 2700만대를 기록하며 1700만대를 기록한 애플을 제쳤다.

또한 이 회장은 글로벌 시장 점검을 위해 해외 현장을 직접 찾기도 했다. 지난달 27일 미국을 방문해 제임스 호튼 코닝사 명예회장을 접견하고, 일본으로 출국해 일본 경제인들을 만났다.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와 건강 치료차 해외를 방문한 적은 있지만, 기업일로 방문한 것은 오랜만이다.

이 사장도 마찬가지다. 이 사장은 애플과의 특허전을 진두지휘하면서 팀 쿡 애플 CEO와의 면담을 통해 최고경영자로서의 새로운 면모를 보였다. 그동안 기자들의 질문에 “회장님께 여쭤보라”며 말을 아껴왔던 모습과는 다른 행보다. 오히려 애플과의 특허 소송전을 계기로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팀 쿡 CEO의 초청을 받아 스티브 잡스의 추도식에도 홀로 참석했다. 이 사장은 지난 16일 출국에 앞서 기자들과의 만남에서도 공격적인 멘트를 날리기도 했다.

이 사장은 이날 “삼성과 애플은 동반자이자 경쟁자”라며 “주요 고객인 애플과 부품공급의 측면에서는 지금까지의 긴밀한 파트너십을 유지하되, 애플이 먼저 걸어온 특허 공격에는 강력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팀 쿡 CEO와 만나고 돌아온 후에도 이 사장은 “2013, 2014년에는 어떻게 더 좋은 부품을 공급할까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고 말하면서도, 일본과 호주에 ‘아이폰4S'에 대한 판매금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했다. 팀 쿡 CEO와의 만남으로 화해 분위기가 조성될 것이라는 예측을 완전히 뒤집은 것이다. 애플과의 관계에서도 “파트너십은 파트너십이고, 비즈니스는 비즈니스”라는 입장을 확실히 했다.

삼성의 한 관계자는 “애플과의 소송전에서 화해를 염두에 두면서 전면전을 선택한 것은 ‘애플이 파트너이기도 하지만 언젠가는 넘어야 할 산’이라는 의중이 깔린 게 사실”이라며 “휴대폰 사업 등에서 남이 넘보지 못할 부동의 위치를 점해야 한다는 강한 뜻이 담겨 있는 듯하다”고 전했다.

비단 이번 애플과의 특허소송이 아니더라도 이 사장은 최근 국내외의 다른 기업 오너, CEO들과 적극적으로 접촉하며 입지를 다지고 있다.

이는 그간 이 사장이 보여줬던 모습과는 다른 행보여서 눈길을 끈다. 이 사장은 상무 재직 시절 새로운 사업을 진행하다 좋지 못한 결과로 언론의 질타를 받았었다. 하지만 올 초 삼성전자 사장으로 취임한 후부터는 삼성전자 일에만 몰두하며, 미래를 설계하는 경영자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재계의 아이콘으로 떠올라

이에 따라 일각에선 “‘세계시장 아이콘’이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에서 이 회장 - 이 사장 부자로 바뀌고 있다”고 말한다. 김 전 회장은 대우 시절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며 세계시장을 누볐다. 김 전 회장을 빗대어 “비행기에서 자고 해외에서 일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었을 정도로 김 전 회장은 국내보다 해외를 챙겼다. 그런 김 전 회장의 모습이 최근 삼성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 회장과 이 사장이 해외에서 발빠른 행보를 보이고, 해외 기업과의 경쟁에서도 우위를 점치고 있다는 것. 게다가 ‘초일류 삼성’이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세계 속 삼성의 입지가 넓어지고 있다.

한 재계 인사는 “삼성이 세계 시장에서 우뚝 선 모습이 자주 보인다”며 “(이와 관련해) 이 회장과 이 사장의 손·발이 잘 맞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회장 - 이 사장 부자에게는 아직 풀어야 할 과제가 많다는 지적도 있다.

글로벌 IT업계의 급변하는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 많은 위상 제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또한 삼성 내부적으로도 ‘순환출자’ 지배구조를 바꾸는 첫 걸음인 삼성카드의 삼성에버랜드 지분 처분 문제 등 현안이 산적해 있다. 이에 따라 이 회장이 끌고, 이 사장이 미는 삼성의 미래가 어떤 형태로 변화될지 재계의 이목이 집중된다.

[이범희 기자] skycros@ilyoseoul.co.kr

이범희 기자 skycro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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