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선 ‘국빈대우’, 국내에선 ‘재계 왕따?’

이명박 대통령의 방미 때 동행한 경제사절단의 규모가 논란이 되고 있다. 과거에 비해 이번 방미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다섯 번째 국빈 초청으로 의례적 대화에 그친 과거 양국 정상회담과는 다른 격상된 방문임에도 동행하는 경제수장들의 수는 현저히 줄었다. 특히 이번 방미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미국 의회 비준이 사실상 마무리 된 상황이라 재계총수들에게는 미국과 교류할 수 있는 더 좋은 기회임에도 불참선언을 한 총수들이 많다는 점에서 의아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대부분의 총수들은 개인사보다는 회사일로 이 대통령과 함께하는 방미 일정에서 빠졌다는 입장이지만,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관계자는 적다. 오히려 이 대통령에 대한 ‘재계불신설’과 ‘이 대통령 왕따설’이 주목받고 있는 실정이다. 그 내막을 알아본다.
이 대통령의 방미 일정에 함께하는 경제사절단의 역할은 정부의 ‘비즈니스 외교’가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이 대통령의 방미에선 재계서열 10대 기업중 유일하게 구본무 LG그룹 회장만 동석해 재계가 이 대통령의 체면치레만 겨우 했다는 날카로운 시선을 피할 수 없게 됐다.
함께 동행한 또 다른 경제수장 중 허창수 GS그룹 회장은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으로 참석한 것이고,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도 한미재계위원회 위원장 자격으로 참가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건희 회장도 지난달부터 미국 방문을 통해 현지 경제인을 만나다가 14일 귀국했다. 이 회장은 이날 김포공항에서 기자들을 만나 향후 경영구상을 묻는 질문에 "특별히 구상이라는 것보다 지금같이 해서는 안되겠다"며 "더 정신 차리고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앞을 보고 뛰어야겠다. 앞을 보고 뛰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또한 이번 이 대통령의 방미 일정 시 디트로이트 지역 방문에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불참을 두고서도 말들이 많다.
디트로이트는 미국 자동차 산업의 메카이기 때문에 재계는 물론 정치권에서도 당연히 정 회장의 동행을 염두에 두었었다. 그러나 정 회장은 돌연 불참을 선언했다.
현대차그룹에 따르면 정 회장은 당초 12일 김포공항을 통해 출국할 예정이었으나 급히 일정을 변경했다. 16일 네이선 딜 미국 조지아주 주지사가 방한할 예정이어서 대통령 방미 사절단 참가 계획을 변경했다는 것.
현대차 관계자는 “지난 6월 정 회장이 미국 출장을 갔을 당시 딜 주지사를 만나 방한해달라고 요청을 한 적이 있다”며 “딜 주지사의 방한이 정 회장의 초청으로 이뤄진 것”이라고 말했다.
정 회장은 딜 주지사를 만나 기아차 조지아 공장에 대한 지원 뿐 아니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발효를 앞두고 미국 정치권의 협조를 당부할 것으로 전해졌다.
딜 주지사는 공화당 출신의 5선 의원으로 현지에서는 상당한 영향력을 갖춘 정치인으로, 17일 서울 현대차 양재동 사옥에서 정 회장을 만나고 현대·기아차 남양연구소와 현대제철 당진사업장을 잇달아 돌아본 후 19일 출국할 예정이다.
최태원 SK회장도 불참했다. SK관계자는 “이번 경제사절단에서 SK는 IT분야 전문가가 따라가길 바랐다”며 “방미에 동행한 김신배 부회장은 SK C&C와 SK텔레콤 등 IT부문 수장을 오래 역임한 바 있어 적임자로 판단했다”고 전했다. 최 회장은 개인 업무가 있어 불참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
금융권 인사 중 유일하게 어윤대 회장만 참석
금융권 인사들도 대거 불참했다. ‘MB의 친구’로 일컬어지던 4대 금융지주 중에선 유일하게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만이 동행했다. 이팔성 우리금융지주 회장은 영국, 스페인 등을 돌며 기업설명회(IR)에 여념이 없고, 김승유 하나금융지주 회장은 론스타 재상고 문제 등 외환은행 인수권이 목전에 있어 수행이 어렵다는 입장을 보였다. 강만수 산은금융지주 회장도 개인 업무 때문에 사절단에 참석치 못했다.
KB금융지주의 한 관계자는 “어 회장은 지주 회장 중 유일한 글로벌 금융전문가이며 최근 이사로 선임된 세계은행협회(IIF) 회의 등에 참석하기 위해 이번 사절단에 참석한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 사절단보다 축소 왜?
이 대통령의 이번 방미가 오바마 미국대통령과 함께 공식 환영식, 단독 및 확대 정상회담, 국빈 만찬, 디트로이트 동행 방문 등 장시간을 함께하는 등 국빈대우를 받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그 논란이 더욱 커지고 있다.
이번 방문에 퇴임이 예정돼 있는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을 비롯해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 등 과천 경제부처 수장들이 대거 참석한 것을 보아도 그 위상을 알 수 있다.
양대 경제부처 수장들이 출장길에 동행하는 일도 극히 이례적이어서, 그만큼 이번 MB의 방미가 갖는 의미가 남다르다는 것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또한 미국 의회가 이번 MB순방 기간 내에 한·미 자유무역협정 비준절차를 마무리 지을 가능성이 커 세계 최대의 시장을 열어젖힌다는 역사적 의미를 갖고 있어 재계총수들의 불참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는 과거 대통령과 경제사절단이 함께 우리나라 공항을 통해 출국하던 모습과도 사뭇 다른 모습이다.
지난 2009년 6월 방미 때보다도 작은 규모여서 그 논란은 끝이 없다. 당시 재계 총수로는 조석래 전경련 회장,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박용현 두산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 류진 풍산 회장 등이 공식 수행했다.
4대 그룹인 삼성, 현대차, LG, SK는 최고위급 임원을 현지로 파견했다. 삼성그룹은 당시 최지성 삼성전자 사장, LG그룹은 당시 남용 LG전자 부회장, SK그룹은 당시 최재원 SK㈜ 부회장을 이 대통령 미국 방문에 맞춰 현지로 보냈었다.
한편 이번 이 대통령의 방미 때 동행한 재계사절단에는 류진 풍산 회장, 이윤우 삼성전자 부회장, 김신배 SK부회장 등도 함께했다.
[이범희 기자] skycros@dailypot.co.kr
이범희 기자 skycros@dailypot.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