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번 밝혀진 대형병원의 ‘슈퍼 갑’ 노릇
또 한 번 밝혀진 대형병원의 ‘슈퍼 갑’ 노릇
  • 전수영 기자
  • 입력 2011-10-17 13:47
  • 승인 2011.10.17 13:47
  • 호수 911
  • 46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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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값 제때 안 주는 대형병원 수두룩
의약품 도매상들에게 상급종합병원은 이른바 ‘슈퍼 갑’임이 또 한 번 확인됐다. 국정감사에서 13개 국공립병원과 36개 종합병원이 도매상에게 의약품 구매대금 지급을 미루는 방식으로 부당이익을 챙겼다는 지적이 일었다. 일반적으로 제품 구매대금은 짧으면 1개월 늦어도 3개월 안에 지급하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이들 병원은 6개월~8개월가량 대금지급을 미뤘다. 결국 그 부담을 안는 것은 당연히 의약품 도매상들일 수밖에 없다. 이렇게 대형병원들이 대금을 미뤄 지급하는 것도 일종의 리베이트로 볼 수 있다는 지적도 있어 관계당국이 국정감사에서 나타난 이런 문제점에 대해 어떤 대책을 마련할지가 주목된다. 특히 약가인하를 놓고 깊어질 대로 깊어진 의약품 도매상과 보건당국 간의 갈등의 골이 이번 문제로 더욱 깊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양승조 민주당 의원은 지난 7일 진행된 국정감사에서 “13개 국공립병원과 36개 상급종합병원의 의약품 대금지급 기일을 분석한 결과 평균 7개월이 걸린다”고 밝혔다.

이들 병원의 연간 약제비 규모는 1조8000억 원으로, 병원들이 대금지급 지연을 통해 얻은 부당이익은 예금은행 평균 저축성 수신금리를 적용할 경우 무려 282억 원에 달한다는 게 양 의원의 주장이다.

양 의원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를 들어 국내 전체 약품비는 12조7천 억이며, 이중 의료기관 내부에서 사용되는 약품비는 약 4조 원임을 감안하면 대금지연을 통해 얻은 이익은 650여억 원에 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양 의원이 주장하는 282억 원은 올 상반기 사위 10개 제약사의 연구개발비 1650억 원의 20%에 가까운 금액이며 의료기관 내부 사용 약품비를 기준으로 하면 약 40%까지 그 규모가 커진다.

대형병원들은 도매상들로부터 의약품을 공급받은 후 건강보험공단에 보험의약품에 대한 보험급여를 청구해 약값을 받고 일정기간 보유했다가 도매상에 의약품 대금을 지급한다. 건강보험공단이 약제비에 대한 보험급여를 지급하는 기간이 보통 1~2개월인 점을 감안할 때 국공립병원 및 대형병원들은 5개월가량 약제비 지급을 미룬 것이다.

이에 대해 의약품도매협회 관계자는 “우리는 제약사에 보통 2개월 안에 의약품 대금을 지급한다. 그런데 대형병원에서는 대급지급을 지연하면서 5개월 정도의 금융비용을 내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대금지급 기간 평균 7개월 ‘슈퍼 갑’ 지위 여전

이명박 정부는 집권 초기부터 ‘상생’과 ‘동반성장’을 역설해 왔다. 힘 있는 대기업만이 살 것이 아니라 협력관계에 있는 모든 회사들이 잘 살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자는 취지에서다.

이에 대기업들은 앞 다퉈 협력사와의 동반성장을 위한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대금지급을 어음에서 현금으로 지급한다든지 한 발 더 나가 대금을 지급기일 전에 지급하는 등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또한 동반성장기금을 자체적으로 만들어 긴급자금이 필요한 협력사에게는 저리로 대출을 해주는 시스템을 도입하기도 했다.

특히 대금지급 기일이 길었던 건설업의 경우에도 대금지급을 기일을 현실화시키고 이와 함께 어음이 아닌 현금으로 대금지급을 하는 등의 노력을 보여 전반적으로 위기에 몰렸던 중소 시공사의 숨통을 틔워 주었다.

하지만 이런 사회적 분위기는 아랑곳하지 않고 대형병원들은 지금까지의 관행을 버릴 생각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이런 대금지급 지연 때문에 도매상의 경우 자금회전이 좋지 못해 많은 압박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병원 측에 대금지급과 관련해 입을 열지 못하며 속앓이를 하고 있다. 아무리 입찰을 통해 의약품을 납품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병원 눈 밖에 나 좋을 것은 없다는 생각이 기저에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의약품도매협회 관계자는 “공급자가 대응을 못하고 있는 것은 공급자의 입장이 나약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라며 “실제로 도매상들이 자금에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런 부담 때문에 공급가를 높인다면 (보험)급여 약일 경우 고스란히 국민들의 부담으로 작용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13개 국공립병원의 경우 평균 6개월, 36개 상급종합병원은 평균 8개월 정도 지난 후에 대금을 지급하고 있지만 길게는 21개월 후에 지급하는 곳도 있어 국공립병원 및 대형병원들이 ‘슈퍼 갑’의 지위를 악용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이런 지적에 대해 한양대학병원 관계자는 “우리 병원이 대금지급이 늦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병원 사정에 따라 대금을 빨리 지급할 때도 있고 늦게 지급할 때도 있다”고 해명했다.


대부분 계약서상 대금지급일 지정 않아

문제는 의약품을 공급하는 도매상과 병원들 사이에 체결된 계약서상에는 대금지급 기일마저도 명기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계약서는 기본적으로 제품 납품과 대금지급이 가장 중요한 항목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계약사항을 어겼을 경우 책임 소재를 따져 피해를 입힌 측에서 피해를 본 측에 보상을 하는 것은 상관례의 기본 중 기본이다.

그 금액이 몇 십만 원 또는 몇 백만 원이 아닌 몇 억 원에서 몇 십억 원의 의약품을 매매하는 상황에서 대금지급 기일을 명시하지 않았다는 것은 대형병원들이 우월적 지위에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의약품도매협회 관계자는 “수요와 공급자 중 수요 측인 병원이 우월적 지위가 있기 때문에 도매상들은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한양대학교병원 관계자는 “계약서에 대금지급 기일을 명기하지는 않았지만 사전에 충분히 협의를 했기 때문에 문제는 없을 것으로 알았다. 우리 이외에 다른 병원들도 대부분 대금지급 기일을 명시하지 않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한양대학교병원 관계자의 말처럼 대금지급기일에 대해 병원 측과 도매상의 협의가 있었다고 해도 한쪽의 이익이 더 반영이 됐다면 이는 문제가 될 수 있다. 결국 우월적 지위를 갖은 쪽의 의견이 더욱 많이 반영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현재의 계약관행에 문제가 있음을 알고도 대형병원 측은 그것을 고치려는 노력을 크게 기울이지 않고 있다.

결국 도매상들은 자금회전이 어려워도 대형병원들이 대금을 지급하기 전까지 대금지급에 대해 목소리를 낼 수 없게 된다.

과연 보건복지부는 양 의원이 이 문제를 짚기 전에는 이런 사실을 몰랐던 것일까.

보건복지부 또한 대형병원과 의약품 도매상 간의 비대칭 지위에 대해서는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다만, 건강보험 급여에 해당되는 약과 비급여인 약에 대한 이원화 문제로 의약품 대금지급 기일에 대한 확실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보건복지부, 이제야 대응책 마련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현재 건강보험 급여에 해당되는 약과 비급여 약을 따로 분리해 대책을 검토 중에 있다”며 “하지만 급여 부분에 대해서는 규정을 지을 수 있겠지만, 비급여 부분에 대해서는 자칫 계약당사자들의 권리를 침해할 수 있어 그 부분을 신중하게 검토해야만 한다”고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하지만 보건복지부가 지금까지 건강보험 급여에 해당되는 의약품만이라도 제대로 된 대금지급 방안을 왜 못 만들었냐는 지적에 대해서는 자유로울 수 없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대형병원이 우월적 지위를 남용했다면 도매상들이 약을 공급하지 않는 방법도 있다. 대금회수 기간이 길어도 도매상들은 대부분 공급을 한다”고 말해 문재의식의 부재를 드러냈다.

보건복지부는 도매상들이 일제히 약을 공급하지 않을 경우 그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들이 입을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대금을 제대로 받기 위해서는 극단적인 방법을 동원하라는 식으로 안일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현재까지 나타난 것은 대형병원들이 의약품 도매상에게 우월적 지위를 남용한 것 중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대형병원들이 지금까지 다양한 방법으로 리베이트를 받아왔다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만은 아니다.


대형병원들도 정부가 리베이트 근절과 약가인하를 통해 올바른 의료체계를 잡아가려는 이 때 지금까지의 관행을 버리고 공정한 거래에 나설 필요가 있다는 주장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전수영 기자] jun6182@ilyoseoul.co.kr

전수영 기자 jun6182@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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