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전략적 실수’가 위기 불렀다
[이진우 기자]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사면초가의 위기에서 돌파구를 찾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구글이 지난 15일(현지시간) 모토로라모빌리티를 125억 달러(한화 약 13조5000억 원)에 인수한다는 사실이 전해지자 전 세계 IT업계가 술렁이고 있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이미 구글에 앞서 모토로라 인수제안을 받았으나, 사업 분야가 겹치고 기술적으로 특별한 매력이 없다는 이유로 거절한 바 있다. 이로 인해 일각에선 삼성전자가 지금의 위기를 불러온 것이나 다름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업계에서는 그동안 위기 때마다 정면 돌파를 택해 이를 타개해 온 이 회장의 행보에 관심이 쏠려 있다.위기1 구글의 모토로라 인수
이 회장은 지난 16일 최지성 삼성전자 부회장으로부터 구글의 모토로라 인수 및 애플과의 특허침해 소송 진행 상황에 대해 보고받는 자리에서 “바다 운영체제를 띄우라”고 지시했다. 그는 이어 “관련 업체 인수를 통해서라도 소프트웨어 경쟁력을 높이라”고 거듭 주문했다.
현재 구글은 스마트폰 운영체제인 안드로이드를 애플의 경쟁그룹인 한국의 삼성전자 LG전자 팬택, 대만의 HTC, 일본과 스웨덴 합작회사인 소니에릭손, 모토로라 등에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그런데 구글이 모토로라를 인수하면서 스마트폰을 직접 제조한다면, 운영체제 기반이 약한 한국기업들에는 위협요인이 될 소지가 다분하다.
위기2 애플의 파상적 공세
구글의 모토로라 인수로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사업이 먹구름을 드리운 데 이어 삼성전자 부품 분야의 최대 거래처인 애플이 일본과 대만 업체로 눈을 돌리고 있다.
지난 19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애플은 일본 샤프와 제휴를 통해 10억 달러(약 1조700억 원)를 LCD 패널 생산라인에 투자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애플은 삼성전자와 LG디스플레이로부터 아이폰과 아이패드용 패널을 공급받아 왔으나 최근 들어서는 일본 기업 쪽으로 공급처를 돌리려는 시도로 분석된다.
삼성 관계자는 “최근 애플은 삼성 부품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고 판단해 공급처를 다변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삼성전자는 독보적인 부품 경쟁력을 토대로 애플 등의 세트업체와의 협상에서 주도권을 가져왔다. 그러나 애플이 일본, 대만기업들을 대상으로 공급처 다변화를 시도한다면, 가뜩이나 불황과 가격하락으로 고전하고 있는 삼성전자의 시장지배력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위기3 반도체 가격 하락
대만의 시장조사 기관 D램 익스체인지에 따르면 D램 가격이 급락세를 이어가고 있으며, 낸드플래시 가격도 역대 최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고 밝혔다. 따라서 반도체 생산 업체들의 매출이 크게 감소하고 수익성 저하가 심각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위기4 경기침체 우려
지난 18일 모간스탠리는 분석보고서에서 올해 세계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4.2%에서 3.9%로 하향 조정했으며, 세계 경기침체 가능성이 커졌다고 지적했다. 이로 인해 IT 수요가 전 세계적으로 감소할 것이라는 시장전망도 나오고 있다.
위기탈출 해법은
이 회장은 과거에도 위기가 있을 때 마다 특유의 정면 돌파를 통해 이를 극복하고 회사를 성장시켜 왔다.
올해 4월 초에 경영에 복귀하면서는 매일 서초동 사옥으로 출근하며 경영전반을 챙겨온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6월 초에는 삼성테크윈 비리 사건이 터지자, 이 회장은 “삼성의 자랑이던 깨끗한 조직문화가 훼손됐다. 부정을 뿌리 뽑아야 한다”고 질책하고 “각 계열사에 대한 감사가 소홀한 것 아니냐”며 감사조직 쇄신을 주문했다.
이 회장은 지난달 29일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에서 열린 ‘2011년도 선진제품 비교 전시회’에서 삼성 사장단에게 소프트웨어 및 S급 인재, 특허 확보의 중요성을 역설하며 “5년, 10년 후를 위해 지금 당장 확보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최근에는 구글의 모토로라 인수소식이 전해지자 자체 운영체제인 바다를 활성화하고 소프트웨어 관련 회사를 M&A해서라도 경쟁력을 강화하라고 지시했다.
삼성 관계자는 “이 회장이 평소에 인재경영, 소프트웨어 경영을 중시해 왔으며 삼성은 이 같은 원천경쟁력에 근거해 성장한 것”이라며 “경기침체가 우려되지만 향후에도 더욱 다양한 노력들을 병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한구 수원대학교 경제·금융학과 교수는 “삼성이 모토로라를 인수할 수 있었음에도 그 기회를 놓친 것은 ‘전략적 실수’라고 할 수 있다”고 지적하면서 “하지만 오랫동안 연구해 온 바에 의하면 삼성은 대단한 기업이다. 현재 위기는 분명하나 이를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업계 한 관계자도 “만약 삼성이 모토로라를 인수했다면 구글과의 관계 및 애플과의 경쟁에서 충분한 시너지 효과가 있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회장이 현 위기를 맞아 이를 어떻게 타개해 나갈 지 그 리더쉽에 귀추가 주목된다.
voreolee@dailypot.co.kr
이진우 기자 voreolee@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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