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르포] 서민 울리는 가계대출 일시 중단 사태
[현장르포] 서민 울리는 가계대출 일시 중단 사태
  • 김나영 기자
  • 입력 2011-08-22 15:39
  • 승인 2011.08.22 15:39
  • 호수 903
  • 25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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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들 “지금은 돈 못 빌려줘” 서민들 “당장 눈앞이 캄캄해”
세상에 굳이 빚을 내서 살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살다보니 빚을 져야 할 상황이 온 것 뿐이다. 이들 대부분은 필요한 자금을 어떻게든 마련해 보려는 서민들이다. 이런 서민들을 금융당국과 시중은행들이 짓누르고 있다. 금융당국은 서민들이 빚을 지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도록 경제적으로 보다 나은 환경을 조성하는 의무가 있는 기관이지, 이미 나빠진 경제환경에서도 빚을 얻지 못하도록 시중은행들을 조장해 원천적으로 대출을 봉쇄하는 기관이 아니다. 시중은행들 역시 서민을 위해야 함은 마찬가지다. 하지만 서민들의 시중은행 대출길이 난데없이 막혀 버렸다. 가계대출이 1000조 원을 바라보는 상황에서 금융당국이 시중은행들에게 가계대출 증가율을 제한하는 권고를 내렸고, 은행들은 월별 권고 수치에 근접하자 아예 신규 대출을 중단하거나 심사를 대폭 강화해 서민들의 고개를 떨구게 한 것이다. 그 현황을 들여다본다.

일부 은행들이 서민들의 가계대출을 일시 중단한 것으로 알려져 커다란 파장이 일고 있다.

권혁세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19일 14개 보험회사 최고경영자 조찬간담회를 마친 후 “은행들이 가계대출을 중단해서는 안 된다”며 “내부적으로 월별 기준을 만들어 대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앞서 금융위원회(위원장 김석동) 금융정책국은 가계부채 종합대책과 관련, 시중은행의 여신담당 부행장들을 소집해 “가계대출 증가율이 경제성장률보다 높은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가계대출 증가율을 명목 GDP 증가율 수준인 연간 7%대 수준에서 관리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

이와 같은 금융당국의 압력에 은행들은 가계대출 월별 증가율을 연간 명목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인 7%를 12개월로 나눈 0.6% 가량으로 설정했고, 일부 은행들은 이달 들어 가계대출 증가율이 0.6%에 근접하자 더 이상 증가하지 않도록 신규 대출을 중단해 버리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난 것이다.

실제로 기자가 같은 날 한 시중은행의 지점에 대출을 문의했으나, 대부담당자는 “주택담보대출은 이달 말까지 아예 중단된 상태”라며 “개인신용대출도 공무원이 아니라면 매우 어렵다”고 답변했다. “갑자기 왜 이렇게 대출이 힘들어졌나”라고 묻자 “본점에서 지령이 내려와 한시적으로 제한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같은 은행 지점장에게 문의한 결과, 지점장은 “가계대출과 관련한 정부의 규제가 심한 관계로 현재 기업이 아닌 개인의 대출을 억제하고 있다”며 “불가피한 대출의 경우 본부에서 개별 승인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예전에는 이런 종류의 대출 시 일일이 본부 승인을 받을 필요가 없지 않았느냐”라고 묻자 “그렇다”며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라고 답변했다.

현재 농협과 신한은행의 경우 일부 신규 대출을 중단했고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의 경우에는 대출 심사를 대폭 강화한 것으로 조사됐다. 농협의 가계대출 규모는 17일 기준으로 증가율이 0.84%에 달하며, 신한은행의 경우에는 0.57%로 0.6%에 거의 이르는 수치며, 우리은행은 0.52%, 하나은행은 0.46%다.

농협 관계자는 “일반생활자금과 관련한 대출이 중단된 상태지만 실수요자에게는 대출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본점에서 각 지점으로 대출 중단 공문을 보냈다고 하는데 사실인가”라고 묻자 “공문을 보내거나 지시한 적은 없으며 다만 대출과 관련한 안내를 했을 뿐”이라고 의혹을 부인했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일부 주택담보대출과 신용대출을 제한하고 있다”며 “주택담보대출의 경우 만기 일시 상환 및 거치식 분할 상환 등이 제한되며 신용대출의 경우 직장인 신용대출 등이 제한되고 있다”고 말했다. “다음 달 말에도 월별 권고 수치를 초과하면 또다시 대출이 중단되나”라고 묻자 “그건 저희도 아직 모르겠다”며 답변을 유보했다.

향후 시중은행이 정부의 권고 증가율에 맞추기 위해 매달 가계대출을 일시 중단하는 사태가 반복된다면 어떻게 될까. 서민들은 급전 마련을 위해 신용도가 높음에도 제1금융권인 시중은행에서 대출을 받지 못하고 보다 불리한 조건의 제2, 제3금융권에서 울며 겨자 먹기로 대출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이번 사태는 시장에 경각심을 일깨워준다는 측면에서는 의미가 있지만 만약 되풀이된다면 신용경색은 물론 사채 등 고금리로 인한 후폭풍이 예상된다”고 경고했다.

[김나영 기자] nykim@dailypot.co.kr



김나영 기자 nykim@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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