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쩐의 전쟁’ 시작됐다 [2]
‘소버린 쇼크’가 이달 초 전 세계 금융시장을 습격했다. 미국의 초저금리 정책으로 인해 달러 가치가 급격히 떨어지는 가운데, 다른 주요 국가들의 통화가치는 상대적으로 크게 상승하고 있다. 일본의 엔-달러 환율은 지난 11일 도쿄 외환시장에서 장중 한때 달러당 76.4엔까지 떨어졌다. 중국 위안-달러 환율도 달러당 6.3991위안을 기록해 최근 들어 가장 큰 폭으로 상승했다. 독특한 권위를 자랑하는 스위스 프랑도 장중 한때 달러당 0.7068프랑까지 떨어지는 등 주요국 통화들이 초강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에 반해 달러와 더불어 외환시장에서 양대 산맥을 이루던 유로는 유럽 재정위기가 확산됨에 따라 독일 등 일부 재정위기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국가들을 중심으로 ‘유로화 무용론’이 대두되고 있다. 사실상 미국은 그들이 가장 잘하는 것 중 하나인, 기축통화 지위를 이용해 달러를 향후 2년간 마음껏 찍어내겠다고 선언함으로써 전 세계에 환율전쟁을 선전포고한 셈이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미국변수에 영향을 많이 받는 경제 구조로 인해 달러 캐리에 의한 대규모 외화가 빠른 속도로 유입되면서 외환위기의 불씨를 당기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지는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현재의 초저금리를 향후 2년 간 유지하겠다고 결정을 내리자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새로운 환율전쟁의 위험을 각오했다”고 평가하며 “이제 세계는 환율전쟁이 발발하기에 위험스러울 정도로 좋은 여건이 조성됐다”고 보도했다.
달러와 유로가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약세를 보이자, 통화절상이란 폭탄이 고스란히 일본 엔과 스위스 프랑에 전해졌다. 이에 일본과 스위스는 발빠르게 그들만의 작은 환율전쟁에 돌입했다.
이는 미국이 2013년 중반까지 제로금리를 유지하겠다고 발표한 데 따른 반작용이다. 초저금리를 계속 유지하면 미국 내 자금은 금리가 보다 높은 신흥국이나 안전자산을 찾아서 이동한다. 따라서 해당국 통화는 강세를 보이게 된다. 게다가 유럽 재정위기는 투자자들이 달러를 유로화로 바꾸는 것도 꺼려해 이를 더욱 부추기게 될 것이다.
일본의 경우 지난해 환율전쟁에서 대수롭지 않게 대응하다가 사상 최대의 엔고로 인해 국가경제가 휘청거릴 정도의 직격탄을 받은 경험이 있어서인지, 이번에는 지난 4일 사상 최대 수준인 4조6000억 엔을 외환시장에 쏟아 부어 ‘엔 매도-달러 매수’의 개입을 시도했다.
스위스는 이에 앞선 3일 금리를 제로 수준으로 낮춰 유동성을 공급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럼에도 통화절상이 계속되자 11일에는 스위스중앙은행 통화정책위원 2명이 잇달아 “어떤 조치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며 “환율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일시적인 조치를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외환시장은 일국의 통화 가치를 떨어뜨리면 상대적으로 다른 나라의 통화 가치는 올라갈 수밖에 없는 제로섬 게임의 영역이다. 세계 경기침체가 우려되는 가운데 지금은 어떤 국가도 통화 절상을 용인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은 초저금리 기간을 확정함으로써 사실상의 약 달러화를 선언했고, 유럽중앙은행(ECB)은 재정위기가 심화되고 있음에도 계속적인 국채 매입 프로그램을 유지해 유로화 약세를 유도하고 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일본과 스위스가 비록 영향은 미미했지만 환율전쟁의 포성을 울린 지난 4일 “폭탄 돌리기가 다시 시작됐다”며 “노래가 멈추기 전에 빨리 다른 국가로 폭탄을 넘겨야 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핵심은 중국, 통화절상 용인할 것인가
이에 따라 중국의 움직임이 최대의 관심사다. FRB가 2년간 금리 동결을 선언한 이후에도 중국은 조용하다. 그래서인지 위안화는 지난 12일 달러당 6.3972위안으로 6년 1개월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 지난 주에 위안화가 달러 대비 0.74% 절상되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중국이 위안화 절상을 용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 논거로서 중국이 환율전쟁에 맞서 과감히 위안화 절하로 전략을 바꾸지 않는다 해도 글로벌 경제 전망이 더 불확실해지면 2008년과 같이 초강수로 달러 페그제를 재도입할 수 있다고 예상한다.
그러나 중국이 달러 페그제를 고려하지 않고 곧바로 위안화 절하로 급선회하는 움직임을 보인다면 미국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미국은 위안화 저평가 운운하며 위안화 절상을 강요하는 등 중국을 다각도로 압박할 가능성이 높다. 만약 이런 시나리오가 현실화되면, 환율전쟁은 세계대전으로 확대되는 것이다.
이미 역사는 1920년대 말과 1930년대에 어느 국가의 통화를 금 태환으로 고정시키며, 환율은 어떻게 할지에 대해 각국이 자국 이기주의에 빠져 치열한 전쟁을 치뤘던 것을 기억한다.
결국 1929~1932년의 대공황은 각국이 보호 무역주의를 도입하면서 악화됐다는 게 정설이다. 그 후 세계 각국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아 대공황의 교훈을 되새겨 이례적인 공조체계를 구축해 위기를 극복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국가의 재정위기와 이로 인한 경기침체가 예상되는 새로운 위기에 직면했다. 이에 따라 세계 각국은 겉으로는 공조하는 척하지만, 안으로는 자국 이기주의의 극대화라는 유혹을 느낄 수밖에 없다.
지난주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과 유럽의 재정위기 확산이 우려되자, 글로벌 주식시장이 패닉에 빠진 것에 반해 외환시장은 의외로 마치 폭풍전야의 고요함인 듯 평온을 유지하고 있다. 통화절상이란 폭탄 돌리기에서 최후의 승자는 누가 될 것인가. 전 세계가 연루된 사상 최대 환율전쟁의 서막이 시작되고 있다.
[이진우 기자]voreolee@dailypot.co.kr
이진우 기자 voreolee@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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