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에너지절약 정책 공수표 날렸다

[이진우 기자] 전 세계적으로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저탄소 녹색성장 정책 등이 확대되고 있다. 녹색성장에 부응하기 위해선 신재생에너지 개발 못지않게 에너지절약 정책도 매우 중요하다. 온실가스를 감축하는 차원에서 에너지절약은 오히려 신재생에너지 개발보다 더욱 빠르고 확실한 효과를 가져 올 수 있다. 왜냐하면 신재생에너지는 기술력과 상당 기간의 시설투자를 통해 얻어지기 때문이다. 에너지절약을 불·석유·원자력·신재생에너지에 이어 ‘제5의 에너지’로 부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럼에도 정부의 에너지절약 정책은 역주행하고 있다. 에너지절약에 앞장서야 할 정부가 고유가 시대가 지속됨에도 불구하고 공수표만 날리고 있는 상황을 [일요서울]이 알아봤다.
정부는 2005년 공공기관의 에너지절약과 경차 및 하이브리드(이하, 경차 등) 차량의 보급 확대를 위해 공공기관이 보유한 업무용승용차 중 경차 등의 차량을 50% 이상 보유하도록 공공기관 에너지이용합리화 추진지침(국무총리 지시 2005-5호)을 개정한 바 있다.
이 지침에 따르면 각 공공기관은 2005년에는 경차 등을 50% 이상 보유토록 되어있다. 이후 지침은 2007년에는 연간 구입률이 50% 이상이 되도록 우선 구매하는 것으로 완화됐으며, 2008년에는 연간 구입률이 50% 이상 우선 구매하되, 단 차량 대수가 2대 이하인 기관 및 승합용, 화물용, 순찰용, 특수용 등의 차량을 구매하는 경우는 제외시킴으로써 더욱 완화됐다.
또한 지침은 공공기관 에너지절약과 이용효율 향상에 솔선수범함으로써 국가예산 절감 및 범국민적 에너지절약 의식의 확산 등을 목적으로 한다고 밝혔다.
40개 중앙행정기관이 유일호 국회 기획재정위원(한나라당·서울 송파을)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말 기준, 경차 등은 모두 1390대로 전체 업무용승용차 1만270대의 13.5%이며, 순찰 및 의전용 차량 4763대를 제외하더라도 경차 등의 보유율은 25.2%로 2005년도 목표보유율 50%에는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다.
보유비율 25.2%만 놓고 보면, 정부의 에너지이용합리화 추진지침의 목적달성은 요원하기만 하다. 더구나 국무총리실은 업무용승용차 11대 중 경차 등의 차량이 2대에 불과해 에너지 절약을 공공기관부터 솔선수범하겠다는 본래 지침의 의미를 무색하게 하고 있다.
특히 40개 중앙행정기관에서 업무용승용차 중 경차 등 보유비율이 10% 미만인 기관은 국토해양부, 산림청 등 14개 기관으로 나타났다. 전혀 보유하고 있지 않은 기관도 통일부와 문화재청, 통계청 등 7개 기관에 달했다. 반면, 경차 등의 차량을 50% 이상 보유한 기관은 4개에 불과했다.
이에 대해 유일호 의원은 “온 국민이 고유가로 고통 받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스스로 하겠다고 나선 에너지합리화 지침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정부 정책의 신뢰성을 떨어뜨리는 큰 문제”라고 지적하고 “정부가 이미 시행하고 있는 것인 만큼 하루 빨리 모든 부처가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세제 지원 축소로 업계 존망 위협
한편 정부가 저탄소 녹색성장의 일환으로 추진했던 에너지절약전문기업(ESCO)을 지원하고 육성을 장려하기 위한 세제 지원을 대폭 축소했다. 이에 ESCO 등록 기업들이 반발하고 있다.
지난 18일 에너지관리공단과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2008년에 저탄소 녹색성장을 새로운 국가 비전으로 채택한 후 저탄소 녹색성장 기본법을 제정했고, 에너지절약 정책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조세특혜제한법을 개정했다. 고효율 냉난방시설이나 발광다이오드(LED) 조명 등 ESCO 업체의 에너지 절감 설비를 설치한 법인 또는 개인에게 투자금액의 20%를 소득세나 법인세에서 공제해줬다.
그러나 정부는 올 들어 소득세·법인세 공제 범위를 당초의 절반인 10% 수준으로 대폭 축소했다. 이로 인해 ESCO 업체들은 납품 및 설비계약이 취소되는 등 존립마저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세제 혜택이 사라지면서 에너지 절약시설 설치를 추진하던 업체들이 ESCO 기업 제품 구매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사례들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효율 보일러 설비업체 D사는 “지난해 말 모 업체와 난방시설 교체 사업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최근 이 업체가 자금 문제 등을 이유로 계약 취소를 요청해 현재 재협상을 진행하고 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또 LED 램프 생산기업인 S사는 “지난해 초 ESCO 등록을 마치고 에너지절감 분야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3개월 동안 계약체결 건수가 하나도 없었다”며 “에너지절약 시설에 대한 사업축소까지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성남시에 위치한 K전기 관계자는 “올해 삭감된 10%라는 규모가 적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만약 사업규모가 100억 원 단위라면 무려 10억 원의 적지 않은 세제 혜택을 보게 되는 것”이라며 “세제 지원이 축소돼 에너지절약시설 설치를 고려하던 사업자들이 등을 돌리게 되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에너지관리공단 관계자는 “에너지절약시설 설치사업에 대한 세제 혜택이 줄어든 것은 세제의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는 민원이 수차례 제기됐기 때문”이라며 “민간과 정부차원의 저리융자 등 제도적 장치를 통해 ESCO 업체를 지속 지원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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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우 기자 voreolee@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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