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의 움직임
북한의 핵실험이 몰고 온 파장으로 재계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우선 개성공단 사업이 난항을 겪고 있는데다 환율과 주가, 금리 변동에 따른 피해에 대처하기 위해 정부 관련 부처와 기업들은 대응책 마련에 분주하다. 북한 핵실험이 몰고 온 경제적 충격에 따른 재계의 반응과 기업들의 움직임을 취재했다.
개성공단 후속분양 ‘아리송’
북한의 핵실험 파장은 개성공단 사업 등 남북 경제협력 사업에 불투명성을 높이고 있다. 지난 10월 9일 북한이 핵실험을 단행한 이후 개성공단 사업에 관한 모든 부분에 제동이 걸렸다. 현재 개성공단에는 1차 시범단지 15개, 본단지 5만여 평에 24개 기업 등 총 39개 기업이 진출해 있다. 이후 본 단지 60만 평에 300여 개의 기업을 대상으로 추가 입주신청을 받을 예정이었으나, 7월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연기된 데 이어 이번 핵실험으로 인해 후속 분양시기마저 불투명한 상황이다. 더구나 입주신청을 했던 기업들이 계속 입주포기 의사를 보이고 있어 설령 사업이 진행된다 하더라도 입주신청 부진은 불가피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이 개성공단 사업을 중단하지 않겠다는 의지에는 변함이 없다.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과 대북사업에 관련한 기업인들은 이미 개성공단을 비롯한 금강산 관광 사업 등 남북경협 사업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힌바 있다. UN을 포함한 대·내외적인 대북제재 정책이 예상되지만, 민간사업 차원에서 유지하는 것만이 경제적 이익과 남북관계 개선에 기여한다는 주장이다.
개성공단에 진출한 중소기업들에 대한 관리와 지원에 대해서도 활발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이미 개성공단에 진출했거나 진출이 예정된 기업들이 사업차질에 따른 불안감을 겪고 있다는 점은 개성공단 사업진행에 있어 또 다른 어려움이다. 이를 위해 지난 10월 10일 중소기업청은 기존에 운영되어 오던 ‘재해 중소기업 중앙대책위원회’를 ‘중소기업 지원 중앙대책위원회’로 전환하여 북핵 리스크가 완전 종결될 때까지 운영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중기청은 북한의 핵실험과 관련한 중소기업의 동향과 애로사항을 조사하고 이에 대한 지원대책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또 투자자금에 대한 손실 발생에 따른 손실보조제도의 활용도 홍보하고 있다.
금강산 관광사업 유지에 대한 기업의 의지 역시 강하다.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 대사의 ‘금강산 관광객 인질 발언’ 등은 불안감을 가중시켜 관광객 예약률이 급격히 하락하는 양상을 만들었다.
윤만준 현대아산 사장은 관광객이 단 한명만 있어도 끝까지 밀고 가겠다는 태도다. 금강산 관광 사업은 북한 측에서도 계속 진행하기를 원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관광객 취소율이 시간이 지나면서 안정을 나타내고 있다는 점도 관광사업 유지에 관한 입장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속으론 ‘분주’, 겉으론 ‘차분’
북핵 리스크가 몰고 올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대기업들의 움직임 역시 분주하다. 삼성그룹은 전략기획실, 삼성경제연구소와 계열사 등이 합동으로 경기변화를 면밀히 관찰하면서 대안마련에 나섰다. 북핵의 여파가 미치는 전자산업을 비롯한 금융, 자동차 등의 모든 내·외수 산업 동향을 파악하고 체크하며 신속 정밀하게 대응한다는 계획.
하지만 삼성은 대기업으로서의 ‘진중함’을 지키자는 분위기다. 이 같은 이유는 단순히 대기업의 ‘체면’만을 고려하는 것은 아니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주변 정세에 따른 북핵 리스크의 변동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시간이 필요하다. 모든 부서들이 유기적으로 사태파악에 최선을 다함으로써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다”고 전했다.
한때 큰 폭으로 떨어졌던 주가나 오름세를 보였던 원·달러 환율도 차츰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또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사업 중단 위기에 직면한 현대그룹은 북핵 상황에 대처하는 각오가 비장하다. 현대그룹은 핵실험 직후부터 개성공단 사업을 유지한다는 입장이다. 계열사 현대아산은 금강산 사업에 기업의 사활이 달려있다고 판단, 윤만준 사장이 직접 관광객을 환송하러 나오는 등 관광객 취소율 증가와 같은 사태악화 방지에 노력하고 있다.
SK그룹은 삼성그룹과 마찬가지다. 사태파악과 대응책 마련에 고민하면서도 신중함을 유지하고 있다. SK그룹 관계자는 “그룹과 계열사 내에서 북핵 상황에 주도적으로 관계되는 부서를 중심으로 서로 협동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며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북핵사태에 가장 민감한 항공업계도 신중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대한항공은 북한영공을 경유하는 항공편에 대해서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이는 경쟁사인 아시아나항공이 북한영공 통과 일부 항공편에 대해 우회조치를 내린 것과는 다소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 대한항공 측은 “건설교통부가 별도의 지침을 내리지 않고 있고, 사태의 심각성 역시 북한의 미사일 발사 때보다는 작다고 판단하고 있어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현상필 dj0927@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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