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 저축은행, 국민혈세로 언제까지 연명하나

[김나영 기자] 2008년 9월 미국발 글로벌 금융 위기의 이유 중 하나는 기업에 대한 정부의 금융 감독 실패다. 리먼브라더스 파산이라는 심각한 상황이 닥치기 전에 금융당국에서 비리를 규제하고 불법 로비를 적발할 수 있는 강력한 법적제도가 구축 되었다면 금융위기를 비켜갈 수도 있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부실저축은행 파문이 발생하기 전에 잘못된 문제를 파악했다면 저축은행 줄도산이라는 역풍을 피할 수 있었을 터. 오히려 우리나라는 국민혈세인 공적자금을 투입해 그 화를 키웠다는 불신을 돋웠다. 때문에 공적자금 사용처에 대한 논란이 가중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국민혈세인 공적자금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형상이 되고 말았다.
금융위원회(위원장 김석동)는 부실 저축은행에 대해 공적자금을 통한 부실 PF(Project Finan cing) 대출채권 매입과 국제회계기준(IFRS, International Financial Reporting Standards) 적용 5년 유예를 제시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 6월 14일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최근 저축은행 사태와 관련, 부실 저축은행에 대해 신속한 구조조정을 추진할 것을 밝혔다.
그는 저축은행 경쟁력 강화 방안으로 “89개 저축은행의 469개 PF사업장에 대해서 현재 전수조사를 실시 중이고, 구조조정기금을 등을 활용해서 6월 중에 부실 PF대출채권을 매입할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하여 공적자금관리위원회(공자위)에서는 자산관리공사(캠코)에 매각할 부실 PF대출채권의 규모와 가격을 결정하고, 캠코는 국회 동의를 얻어 조성된 3조5000억 원의 구조조정기금을 활용해 이를 매입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공적자금(?)’
그렇다면 공적자금을 통한 부실 PF대출채권 매입과 국제회계기준(IFRS) 적용 5년 유예는 어떤 의미일까. 원래대로라면 부실 저축은행들은 시장 논리에 따라 1차적으로 실사를 통한 퇴출 절차를 밟아 국민경제에 끼치는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
하지만 부실 저축은행들이 한꺼번에 퇴출되면 우량 저축은행에서도 대량 예금인출과 같은 뱅크런 사태가 생길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금융권에는 또다시 유동성 부족으로 인한 자금경색 현상이 심화되기 때문에 이를 고려한 금융당국에서는 자구책으로 공적자금 투입과 IFRS 적용 유예라는 카드를 꺼낸 것. 하지만 이와 같은 저축은행의 위기와 정부의 구제는 매번 반복되어 왔다.
지난해 7월 3차 매각에서는 61개 저축은행이 참여해 3조8000억 원 규모의 부동산 PF사업장을 매각했다.
정부는 공적자금 2조8000억 원을 들여 이를 매입했다. 올해 6월 4차 매각은 40여 개 저축은행, 1조 9000억 원 대의 규모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계속된 정부의 지원이 이어지자 저축은행들은 법망을 피한 특수목적회사(SPC, Special Purpose Company) 설립과 무분별한 PF대출로 방만한 경영을 일삼아 이익을 취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특히 부산저축은행의 경우 대주주와 경영진의 명의를 차용하는 방식으로 120개에 이르는 SPC를 세웠다.
이 SPC들은 부산저축은행그룹에 사업계획서를 제출하고 대출금으로는 건설, 부동산, 선박, 리스와 같은 고위험 고수익(High Risk, High Return) 사업군에 손을 댔다.
이렇게 서민들의 피땀 어린 예금을 마음대로 유용 가능한 쌈짓돈으로 전락시킨 금액은 무려 4조5942억 원이다. 여기에 경영진과 임원진 및 VIP고객의 막판 예금인출도 한몫했다.
검찰에 따르면 부산저축은행은 영업정지 이전에 해당은행 직원 본인과 친인척들, 일부 고액 예금자들의 예금을 미리 부당 인출했고 이 규모는 1조1410억 원이며 유죄로 확인된 것은 85억 원에 달한다.
저축은행중앙회 역시 이러한 사태의 심각성에 대해 할 말을 잃었다.
김정국 저축은행중앙회 홍보실 과장은 작금의 부실 저축은행 사태에 대해 “개별 저축은행은 별도의 체계로 운영되기 때문에 중앙회라 하더라도 이들을 모니터링 하는 것은 사실상 거의 불가능하다”면서 “감시 기능을 가진 금융당국이 아닌 이상 개별 저축은행들의 일을 막을 수도 없고 관여할 수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예전에는 대국민 광고나 홍보도 꾸준히 진행했지만 지금은 수습이 불가능한 상태여서 그저 지켜만 보는 상황이다”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결국 금융당국의 허술한 감시망을 피해 불법 SPC설립 및 부실 PF대출로 저축은행들이 위기를 키워 온 것이다.
게다가 2011년 7월부터 모든 상장기업에 의무적으로 적용되는 국제회계기준(IFRS)을 저축은행에만 5년의 유예 기간을 줄 것이라는 금융위의 발표는 더욱 논란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한국회계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있는 김지홍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국제회계기준(IFRS)은 전 세계가 하나의 회계기준을 갖자는 취지에서 비롯되었다”면서 “다른 예외 조항을 두는 것도 아니고 일제히 적용하기로 한 기준 자체를 저축은행만 5년 유예한다는 것은 심각한 형평성 논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은행이라는 이름에는 일반 상장기업보다도 엄격한 감독이 수반되는 법인데 계속해서 봐주기 식으로 대응하면 결국 예금주와 일반 주주 피해를 엄청나게 양산해 낼 것”이라고 지적했다.
언제까지나 국민의 혈세를 끝이 보이지 않는 구제에 쏟아 부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전문가들이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위기를 넘기기에 급급한 고식지계(姑息之計)가 아닌, 근본적인 대응책을 강구하는 발본색원(拔本塞源)의 자세가 필요한 때다.
nykim@dailypot.co.kr
김나영 기자 nykim@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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