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카가 삼촌에 방아쇠 당겼다?
조카가 삼촌에 방아쇠 당겼다?
  • 이현진 북한문제전문가 
  • 입력 2004-12-03 09:00
  • 승인 2004.12.03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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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이 심상치 않다. 고위 인사의 망명설과 신병이상설이 잇따르더니 급기야 지난 11월25일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 피격설까지 흘러 나왔다. 서울의 증권가에서 퍼져나간 설이었지만, 중국 외교부의 대변인이 직접 나서 ‘이상 없음’을 언급해야 할 정도로 파장은 컸다. 평소 때 단순설로 제기돼 자연스레 사그라지던 김정일 이상설과 다른 형국이다. 북한의 권력 핵심부에서는 정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난무하는 각종 ‘설’ 가운데 어느 것이 사실에 부합하는 것이고 어느 것이 낭설인가. 이런 진실 거짓 게임이 서울의 정보소식통들 사이에 한창이다. 워싱턴과 도쿄의 대북 관측통들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김정일 피격설은 그의 매제인 장성택 전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의 숙청과 맞닿아 있다. 피격설의 요체가 바로 장성택의 아들이 김정일을 지근거리에서 쏘았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장성택은 김정일 위원장의 여동생인 김경희 노동당 경공업부장의 남편이다. 장성택은 김일성 주석(94년7월 사망)으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받은 인물로 알려져 있다. 김일성종합대학과 모스크바 유학 경력을 가진 장성택은 머리 회전이 빠르고 조직장악력이 뛰어나 ‘장 부장’으로 불리며 실세로 군림했다. 한때 김정일의 후계자란 관측까지 나돌 정도였다.무엇보다 김정일 위원장의 친동생의 남편이란 점이 든든한 배경으로 작용했다. 김일성 주석은 자기 딸 김경희가 장성택에게 반해버리자 정성택을 지방의 대학으로 내쫓았다고 한다. 그렇지만 김경희가 직접 차를 몰고 쫓아다니자 결혼을 승낙했다. 그런데 수 년 전부터 장성택·김경희 사이에 불화설이 나돌았다. 이때부터 김경희가 알코올 중독에 걸렸다는 소문이 서방 정보망에 포착됐다. 또 얼마 전에는 김경희가 프랑스의 한 병원에서 중병으로 치료를 받았다는 설과 함께 교통사고를 당해 중태에 빠졌다는 흉흉한 소문이 꼬리를 이었다.

이런 가운데 11월24일 국회 정보위에서는 국가정보원이 장성택이 숙청됐다는 취지의 보고를 한 것으로 한 정보위원에 의해 전해졌다. 장성택의 측근이던 북한내 실력자들이 줄줄이 전면에서 사라지기도 했다. 70년대부터 청년조직인 ‘김일성 사회주의 청년동맹 ’ 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장성택과 친분이 두터웠던 지재룡 당 국제부 부부장이 3월 이후 공석에 나타나지 않았으며, 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인 최춘황도 김일성고급당학교로 좌천된 것으로 정부 당국자들은 밝히고 있다. 장성택이 천거했던 인민보안상(경찰청장) 최용수가 임명된 지 1년여 만인 지난 7월 이례적으로 해임된 것이 장성택 라인에 대한 숙청을 뒷받침하는 단서가 됐다. 또 북한 경제관리 세대교체의 대표적인 예로 꼽혔던 이광근 무역상과 박명철 체육위원장 등 장과 가까운 인물들이 줄줄이 해임됐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핵심측근들 사이에서 무언가 심상치 않은 조짐이 나타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는 단초들이다.

지난 6월 프랑스에서 숨진 김정일의 처 고영희 사건도 북한 권력내부의 은밀한 속내를 드러낸 사례다. 암으로 투병 중이던 고영희가 프랑스에 병치료를 하러 갔다 곧 현지에서 숨졌고, 시신이 담긴 관을 북한으로 반입하는 과정에서 서방 정보기관에 의해 이런 내용이 포착됐다. 고영희 사망은 김정일 후계체제와 관련한 관심을 촉발시켰다. 김정일과 성혜림 사이에 난 맏아들 정남이 후계구도에서 멀어졌다는 우리 정부 고위당국자의 발언도 이에 맞춰 나왔다. 김정일과 고영희 사이에 태어난 김정철이 후계자로 부상했다는 것이다. 이번 북한체제 이상설에 불씨를 본격적으로 당긴 것은 11월 중순 이타르 타스 통신의 중국 베이징발 보도였다. 평양 주재 서방외교관이 기자와의 통화에서 “김일성 초상화와 나란히 걸렸던 김정일의 초상이 제거되고 있다”고 밝힌 것이다.

사실 여부로 언론과 관련국 대북 정보망이 총가동되고 있는 가운데 초상화 제거설을 둘러싸고 체제이상설이 급속하게 퍼져 나갔다. 김정일 위원장이 권력에서 쫓겨났다거나 우상화 움직임에 대한 중단과 함께 격하운동이 벌어지고 있다는 관측까지 나왔다.여기에 북한방송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군부대 방문 소식을 전하면서 ‘경애하는 지도자’란 표현을 빼버렸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가 나오면서 사태는 겉잡을 수 없이 흘러갔다. 북한체제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 것이란 전문가들의 견해가 제기되기 시작한 것도 이런 시점이다.하지만 초상제거는 김정일 위원장의 지시에 의해 철저히 통제된 상황에서 벌어지고 있음이 곧 밝혀졌다. 외국인이 많이 찾는 대외적인 공공시설에서 자신의 초상을 철거함으로써 서방세계에 북한의 이미지를 개선해 보려는 노력의 일환이란 것이다.

사망한 김일성은 그렇다치고 살아있는 김정일을 초상과 동상으로 떠받드는 행위가 외국인들에게 이상하게 비쳐질 수 있다는 점에서다. 또 주민들에게는 수령(김일성)에 대한 효심 때문에 초상을 내리는 것이란 설명도 곁들여졌다. 과거 조총련 등에 대해 김 위원장이 “수령님과 함께 내 사진을 나란히 거는 것은 어색하다”고 철거를 지시한 적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지시는 그 이후에도 수차례 있었지만 북한 관리들이나 주민들이 누구도 먼저 나서 초상을 제거할 엄두를 내지 못해 이행되지 않았다고 한다. 일반주민들이 이용하는 시설이나 공장·기업소, 가정에서는 여전히 김일성과 김정일의 초상화가 함께 걸려있음이 확인되기도 했다. 외국 공관이나 외국인의 안내를 맡은 사람들 사이에 김정일 배지를 착용하지 않는 움직임이 포착됐지만 이 또한 마찬가지 맥락으로 이해됐다.

김정일 위원장에게 ‘경애하는’이란 표현을 붙이지 않았다는 보도도 오보로 판명됐다. 일본 라디오 프레스가 ‘위대한 영도자’란 표현이 사라졌다가 다시 쓰이고 있다며 신중하게 보도한 내용을 한 외신이 잘못 번역해 타전했고, 한국 언론이 이를 확인도 않고 그대로 받는 바람에 생긴 해프닝이다. 결국 초상제거나 북한방송의 표현 자구 같은 문제는 북한체제 이상설과 아무런 연관이 없다는 게 정부 당국의 판단이다.이런 사태에 대해 북한 전문가들은 “미 대선 이후 북한이 북핵 6자회담이나 남북대화에 언제 어떻게 나올까 하는 점에 너무 촉각을 곤두세우다 벌어진 일”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너무 민감하게 북한을 바라보다 아주 미세한 움직임을 과도하게 해석해 체제이상설 같은 쪽으로 연결시켰다는 지적이다.

미국의 북한전문가들도 “김정일 초상화 제거 등 최근 북한에서 나타나는 이상징후에 대해 잘못된 관측이 난무하고 있다”면서 “섣부르게 북한 정권의 교체라든지 하는 식의 결론에 들어가서는 안된다”고 경고하고 나섰다.하지만 김정일 초상건 자체를 그냥 넘기기에는 석연치 않은 대목이 적지 않다. 무엇보다 김정일 위원장이 왜 하필 이 시점에서 자기 초상을 내리도록 했느냐 하는 점이다. 또 그동안 그런 지시에 따르지 않던 관리와 주민들이 이를 이행하고 나섰느냐 하는 것이다. 특히 초상화 철거 문제는 논외로 치더라도 북한 권력의 핵심부에서 줄기차게 흘러나오는 이상징후들이 심상치 않다는 분석이다. 철저하게 통제된 수령 절대주의의 사회에서 김정일 위원장이나 권력 깊숙한 곳의 이야기가 외부에 떠돌고 있다는 것 자체가 북한체제에 중대한 변화가 몰아닥치고 있음을 예고하는 것이란 분석도 갈수록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현진 북한문제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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