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관계자들에 따르면 인사참모부는 신라의 최고 귀족 계층인 ‘성골’에 비유된다. 일단 인사참모부에 몸담고 있다고 하면 그것은 정해진 수순에 따라 곧 별을 달게 되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이번 사건에서 군 검찰이 육본 인사참모부에 대해 압수수색을 단행한 것을 두고 ‘창군이래 처음’이라고 강조하는 데는 그만큼 인사참모부가 오랜 시간 동안 폐쇄적인 절대 권력 기구였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기무사의 한 고위 관계자는 “육본 인사참모부는 군 수뇌부의 가장 핵심권력기관이다”라며 “인사참모부는 하나회 이상의 결속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군 검찰과 같은 형식적인 기관이 인사참모부를 수사하는 것은 역부족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군 검찰이 인사참모부를 한번 수사한 것으로 그간의 관행에 쐐기를 박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할 수 없다.사실 군은 상명하복의 철저한 계급사회이기 때문에 진급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군복을 벗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인사는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명해 주는 것이기 때문에 계급사회에서는 누구나 인사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다. 따라서 군 내부에서는 누구나 인사참모부의 눈밖에 나지 않으려 몸을 사리는 게 현실이다. 이에 대해 10년 간 군법무관으로 복무한 김경환 변호사는 “군 수뇌부가 인사참모부를 통해 장성들에게 어떤 지시를 내릴 경우 이를 거의 필사적으로 수행하려 한다. 또 어떤 사안에 따를 것을 종용할 경우에도 이를 거부할 장성은 아마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노 대통령이 일각에서 나도는 말대로 군 수뇌부의 개혁을 추진하기 위해 움직인 것이라면 인사참모부와 일전을 치르는 것은 어찌 보면 정해진 수순인지도 모른다”고 분석했다. 핵심 부서에 타격을 줌으로써 군 수뇌부의 기선을 제압한다는 것이다.사실 육군 수뇌부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육·해·공군 3군중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육군 내에서 가장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것으로 알려진 곳이 바로 인사참모부다.
만약 일부의 해석대로 노 대통령이 군 개혁 플랜을 본격적으로 가동하자 군 수뇌부에서 이에 대한 반발 기류를 형성했다면 전군의 사기와 기강을 좌지우지하는 인사참모부가 그 반발세력의 핵심이 된다. 따라서 노 대통령이 군 수뇌부에 대한 개혁을 구상하는데 있어 인사참모부는 최대의 걸림돌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군 검찰 소속이었다는 또 다른 법조인은 이번 인사비리수사에 대해 “인사참모부를 장기적으로 수사한다면 몰라도 일시적인 수사로는 아무것도 나오는 것이 없을 것”이라며 “인사참모부는 엘리트의식의 자부심에서 비롯된 내부 결속력이 매우 강하기 때문에 수사를 한다 하더라도 누군가 한 사람이 십자가를 지고 가려 할 것이다. 다시 말해 꼬리 자르기로 끝낸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내부고발을 해서 수사가 들어올 경우 비리를 자백하고 평생 배신자라는 꼬리표를 달고 매장 당한 채 살겠는가 아니면 희생으로 비밀을 끝까지 지켜 명예와 함께 나중에 이에 대한 보상을 받겠는가. 대답은 뻔하다. 그렇기 때문에 인사참모부를 수사해 비리를 들추어낸다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한편 군 검찰이 군 수뇌부의 인사비리혐의를 수사하는 데 있어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군 검찰은 군사법원법 하의 지휘권에 복속돼 있기 때문에 구속, 기소, 재판 결과 모두 해당 부대 사단장 이상의 장군들이 다 지휘 감독한다. 지휘권 복속은 수사권한의 제한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전군검찰이었다는 한 인사는 “이번 사건으로 군 검찰이 힘을 얻는 듯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군 검찰의 위치는 다시 한계를 지닌 그 자리로 돌아 갈 것이다. 일부에서는 군 검찰이 독립해 보려고 이번 기회를 빌려 쇼를 한다는 말도 하더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제2의 하나회’ 100여개 될것”
육사출신 김모씨 “육군 사조직이 제일 활성화”“종교·취미생활 살펴보면 인맥 파악 가장 쉬워”투서에는 이번 장군진급 인사가 ‘뇌물과 향응제공, 마누라의 식모살이 결과였다’고 성토하고 있다. 투서는 또 ‘올해 진급심사의 결과는 인사 3인방의 철저한 사리사욕으로 그들의 하수인만 챙겨 진급의 신뢰를 완전히 무너뜨렸다’고 밝히고 있다. 이는 이번 인사비리 의혹이 ‘금품’이 오갔을 가능성과 함께 인맥을 바탕으로 한 ‘사조직’이 존재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암시하고 있다. 이번 사건이 ‘제 2의 하나회’ 사건이라 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재 영내에서 장성이나 장교들의 사조직 결성은 금지돼 있다.
하지만 군 관계자들에 따르면 군 당국의 사조직 규제에도 불구하고 임관출신, 지연, 학연, 근무연고 등을 중심으로 한 ‘비인가 서클’이 여전히 군 내부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육사 출신으로 8년간 군 생활을 하다 현재는 사업가로 변신한 R사 대표 김모(51)씨는 군 내 사조직 여부에 대해 “당연히 있다. 그건 없을 수가 없다”며 자신 있게 말했다. 그 이유에 대해 김씨는 “없다 없다 하면서도 있는 게 군 사조직”이라며 “생각해봐라. 육사처럼 학연으로 끈끈하게 연결된 곳이 몇 군데나 되겠나. 민간 대학의 동문, 동창들과는 개념이 다르다. 또 졸업 후 보직을 받고 뿔뿔이 흩어져도 모두들 계속 군대라는 테두리 안에 몸담고 있기 때문에 관계는 시간이 지날수록 밀착된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어 “최근에는 군 당국에서 사조직 결성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무슨 회 무슨 회 하는 식으로 정식 명칭을 붙여 조직을 만들지는 않아도 보이지 않는 그룹을 형성해 움직이고 있다”고 전했다.김씨에 따르면 이런 식으로 생긴 보이지 않는 그룹들은 서로 내부의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 인맥을 형성, ‘밀어주고 당겨주는’ 식의 활동을 은연중에 펼치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이런 조직들은 내가 알기로 100여개 정도 될 것이다. 특히 육군은 사조직이 제일 활성화되어 있는 집단이다”라고 전했다.
그는 이어 “유형별로는 육사, 3사, 학군, 갑종 등 임관 출신별 모임이 가장 많고, 같은 부대에 근무했던 사람들끼리 결성한 모임이나 특정병과 모임 그리고 지연, 학연, 혈연 모임 등이 있다”고 말했다. R.O.T.C 출신이라는 또 다른 김모(34)씨는 “사조직에 대한 단속이 이루어지고는 있지만 고위 간부들이 ‘친목도모’를 위해 영외에서 만나는 것을 누가 뭐라 그러겠나”면서 “요즘은 꾀가 늘어서 영내에서 서로 특별히 친한 기색을 잘 드러내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김씨는 또 “군대도 사회나 마찬가지다. 그들이 끼리끼리 뭉치는 가장 큰 이유는 진급을 위한 인맥형성 때문이다”라며 “사회서도 줄선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지금은 군도 마찬가지다”라고 말했다.이어 김씨는 “군 검찰이 군 수뇌부의 인맥을 파악하려면 골프나 등산 등과 같은 취미생활을 같이 하는 사람들을 파악하면 대충 인맥 라인이 나올 것”이라면서 “특히 종교활동을 같이 하는 측근도 유심히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김씨에 따르면 군 수뇌부의 라인은 대부분 부대 내에서 취미나 종교를 같이 하는 이들일 가능성이 크다. 한편 인사참모부는 과거 하나회가 존재하던 시절과 인사 시스템이 다르기 때문에 부정이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군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는 조작이 가능하다는 것이다.전 군 법무관이었던 한 인사는 “인사심사위원 자체가 상부에 의해 결정되는데, 외부 입김이 작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이 인사는 이어 “심사위원은 이미 정해진 결정에 도장만 찍는 형식적인 존재다. 이는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윤지환 jjd@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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