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가슴 두 번 울린 저축은행

[이지영 기자]= 저축은행들이 도덕적 해이의 끝을 보여줬다. 영업정지 전날 마감시간 이후에 상당량의 예금을 VIP 고객 및 임원진 가족들에게 인출해 준 것이다. 부산저축은행, 대전저축은행 등 7개 은행이 약 1000억 원의 돈을 특정 고객에게 인출해줬다. 저축은행들의 이 같은 이율배반적인 태도에 고객들은 “VIP고객 돈만 돈이냐! 내 돈 내놔라!”며 분노하고 나섰다. 뒤늦게 검찰이 수사에 착수했지만, 예금주들의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예금 사전인출 사태로 저축은행에 대한 예금자들의 불신이 극에 달하고 있다.
특히 이들 저축은행 행장들이 17조 원이나 되는 공공자금을 받으면서도 방만한 경영을 일삼고, 부적절한 행동으로 구속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음에도 이 같은 일이 발생, 민심에 악영향을 끼쳤다.
저축은행 사태는 예고된 인재
지난달 26일 검찰에 따르면 영업정지 전날 부산저축은행, 대전저축은행, 부산2저축은행, 중앙부산저축은행, 전주저축은행, 보해저축은행, 도민저축은행 등이 총 3588건, 1077억 원을 일부 특정 고객에게 인출해줬다.
이날 검찰은 금융당국으로부터 예금 인출자 명단과 인출액 등 관련 자료를 넘겨받아 조사한 데 이어 이날 인출액 규모가 큰 부산저축은행그룹 직원 10명과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관계자들을 불러 조사했다.
검찰은 “영업정지 직전 예금인출 과정에서 불법행위가 있었는지 경위를 파악한 뒤 관련자들을 색출해 민·형사상 책임을 추궁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어 “불법행위가 확인되는 즉시 적극적인 형사 처벌을 검토하는 한편 합동수사에 참가하고 있는 예금보험공사 등을 통해 민사적 책임까지 묻겠다”고 덧붙였다.
김옥주(50·여)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달 26일 성명을 갖고 “저축은행 사태는 정부의 정책실패와 관리감독 부실이 부른 인재(人災)다”라며 “일부 저축은행 임직원들이 친인척의 예금과 지역 유력인사들의 예금을 사전인출한 정황이 드러나고 있는 가운데 앞으로 투쟁수위를 더욱 높여나가겠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이어 “저축은행 영업정지 직후인 2월 18일부터 25일까지 부산저축은행 화명지점에 나와 있던 예금보험공사 직원들에게 돈을 미리 빼간 사실을 얘기했고, 관할 경찰서에도 112신고를 통해 CCTV 자료확보 등을 요청했으나 개인 신상문제이고 일반 영업점이라는 이유를 들어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며 “이 부분은 지금이라도 의지만 있으면 충분히 확인할 수 있는 부분으로 검찰이 수사과정에서 명명백백하게 밝혀야 할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정치권의 성토도 이어졌다. 자유선진당은 다음날 27일 “저축은행 부정인출 의혹과 관련해 한점의 거짓도 없어야 한다”며 “관계된 금융당국자들을 처벌하라”고 촉구했다.
우제창 박병석 박선숙 신건 이성남 조영택 홍재형 민주당 의원, 임영호 자유선진당 의원, 김정 미래희망연대 의원, 유원일 창조한국당 의원 등은 공동 성명을 갖고 “사법당국은 저축은행 대주주와 경영진의 책임뿐만 아니라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금융당국의 직무유기에 대해서 강도 높은 수사를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진보신당은 성명을 통해 “저축은행은 빈축은행이 됐고 금감원은 눈감원이 됐다”며 “검찰과 경찰은 세간에 제기되고 있는 사전 정보 유출 의혹, 금융당국의 방조 의혹 등을 철저히 조사해야 할 것이다. 관련자들에 대한 엄중한 형사처벌과 함께 다시는 이와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재발 방지 대책을 철저히 세워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명박 대통령도 이번 사태를 조속히 해결할 것을 촉구했다. 이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철저히 조사하고 엄격히 대응하라”며 “국민권익위원회가 총괄적으로 비리척결을 챙겨 달라”고 지시했다.
예금 인출해준 임직원 ‘형사처벌 어려워’
한편 일각에서는 “공무원이 아닌 저축은행 임직원들은 예금 사전인출에 관여한 사실이 확인돼도 법적 근거가 마땅찮아 형사 처벌이 쉽지 않을 것”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예금자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임의로 예금을 인출했다면 금융실명제법 위반이다. 하지만 이 같은 경우엔 금융당국에서 과태료를 부과하는 정도의 제재만 가능하다. 경위를 떠나 예금자가 자신의 돈을 찾아가게 한 것을 은행의 손해로 간주하는 데도 무리가 있어 업무상 배임죄를 적용해도 무죄가 될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검찰 관계자는 “처벌하기 쉽지 않은 부분도 있다”며 “불법행위 유무를 먼저 살펴보고 형사 처벌 방안을 다각도로 신중하게 검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sky1377@dailypot.co.kr
이지영 기자 sky1377@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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